‘안보 실세’ 김장수 독주 막아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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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국방부장관 인선 놓고 불거진 군부 암투 내막

“김장수 라인에 당했다.”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후보가 자진 사퇴를 선언한 3월22일 오후, 그와 가까운 한 여권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김 전 후보의 낙마 배후에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떠오른 김 실장이 경쟁 상대를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사퇴 압박이 나올 만큼 각종 의혹이 연이어 불거져나온 것도 ‘김장수 라인’의 조직적인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군이 새 정권 출범과 함께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신임 장관 후보가 중도 사퇴하고 이전 정부 장관이 유임된 것은 국방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전 후보가 사퇴를 선언한 그날 청와대는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유임한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첫 수장 인선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부처가 한두 곳이 아니지만, 계급 문화가 조직을 지탱하고 있는 군의 특성을 감안할 때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깜깜이 인사’가 불러온 ‘인사 참사의 결정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군내 세력 간 힘겨루기 결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장수 실장을 정점으로 하는 주류 세력과 김병관 전 후보를 앞세운 비주류 세력이 국방부 수장 자리를 놓고 일대 격전을 치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시사저널>은 이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사실 확인을 위해 군 안팎의 여러 인사들을 다각도로 접촉했다.

군내 권력 구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김장수 실장(육사 27기·광주)과 김병관 전 후보(육사 28기·경남 김해)의 관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년 선후배 사이인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인 2006년 11월에 있은 대장 인사 때의 일이다. 당시 김 실장은 현역 육군참모총장으로는 처음으로 국방부장관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육군참모총장을 장관으로 앉히기 위해서는 일단 예편을 시켜서 5?6개월 시차를 둔 뒤 기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국방부장관 직행은 김 실장이 명실상부한 군 최고 실력자로 등극한 것을 의미했다.

공석이 된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박흥렬 현 청와대 경호실장(육사 28기·부산)이 발탁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박 실장은 당시 육군참모차장을 맡고 있었는데, 계급은 중장이었다. 이와 달리 김 전 후보와 김관진 현 장관(육사 28기·전북 전주)은 각각 1군사령관과 3군사령관으로서 이미 별 네 개를 달고 있었다. 육사 28기 동기 중 이른바 잘나간다는 ‘빅3’ 가운데 박 실장의 진급이 가장 늦었다. 그런 박 실장이 대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참모총장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이 또한 육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월22일 한미연합군사령부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에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후보, 그 옆에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주류’ 김장수 대 ‘비주류’ 김병관 격돌

김 장관도 현역 서열 1위인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을 맡게 되면서 승진 코스를 차곡차곡 밟아나갔다. 문제는 김병관 전 후보의 거취였다. 사실상 동기들에게 밀린 김 전 후보는 결국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육사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을 한 엘리트 장성으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인사였다. 인사권을 쥐고 있던 김 실장에 대해 감정이 좋았을 리 없다. 김 전 후보를 보좌했던 한 예비역 준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1군사령관을 지내고 나면 합참의장이나 참모총장으로 가는 게 기본 코스였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김병관 사령관께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음해를 많이 받고 있다. 일일이 답변하기도 그렇고 모른 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후보가 2008년 3월 전역을 한 후에도 인사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김 전 후보가 천안함 사태 다음 날 골프를 치고, 연평도 포격 다음 날 일본 관광을 간 일이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해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김병관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넘버 원’으로 여겼다. MB(이명박) 정권에서 장관할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자신을 ‘팽’시키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고 봤다. 능력 없는 군인들이 정치권에 줄 대서 자리를 차지했다고 여긴 것이다.”

반면 김장수 실장은 국방부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여야 정권이 바뀌었지만 2008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금배지’를 달았고, 지난해 대선 캠프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로 활동한 그는 일찌감치 청와대에 입성해 안보 분야의 컨트롤타워로서 입지를 굳혔다. 현재 김 실장이 군 출신으로서 박근혜 정권 내 최고 실세 자리에 올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와 가까운 이른바 ‘김장수 라인’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장수 라인’ 요직 곳곳에 배치

김 실장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이끈 국방안보추진단에 가까운 인사들을 끌어모았다. 이들 중에는 이미 정부 고위직에 자리 잡은 인사도 있고, 향후 정부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큰 인사도 적지 않다. 김 실장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는 박흥렬 실장이 대표적이다. 장관급으로 격상한 경호실장 자리에 그가 앉을 수 있었던 데는 김 실장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역 중장인 박창명 병무청장(학군 12기)도 국방안보추진단에서 활동했다. 학군(ROTC) 출신인 그가 병무청장에 오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실장과 함께 대표적인 ‘김장수 라인’으로 통하는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육사 30기·전남 신안)은 김병관 전 후보가 내정되기 전 유력한 국방부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광주제일고를 나와 호남을 대표하는 군 인사로 꼽히는 김 실장은, 목포고를 나온 이 전 부사령관을 각별히 아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국방안보추진단에서 활동한 한민구 전 합참의장(육사 31기·충북 청원)도 향후 있을 개각 때 국방부장관 후보로 물망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의원으로 국방안보추진단에 참여한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육사 31기·강원 철원)은 ‘김장수 라인’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김 실장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있을 때 한 의원은 육군본부(육본) 정보작전부장으로 일했다. 한 의원을 비롯해 당시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맡았던 김진훈 군인공제회 이사장(육사 30기·경북 영주) 등 김 실장을 보좌했던 참모들은 ‘일구회’라는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으로는 박선우 합참 작전본부장(육사 35기·광주)과 황인무 육군참모차장(육사 35기·충북 옥천)이 김 실장과 가까운 인사로 거론된다. 박 본부장은 김 실장의 고향 후배이고, 황 차장은 김 실장이 육군참모총장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들 두 중장은 대장 진급 1, 2순위를 다투고 있다고 한다. 목포고를 나온 모종화 1군단장(육사 36기·전남 영암)도 호남을 대표하는 현역 장성으로 김 실장 인맥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현역 장성 상당수가 직·간접으로 김 실장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김 실장이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낼 때 대령과 준장 정도 위치에 있었던 인사들이 ‘현역 라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들을 ‘김장수 라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군사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 실장은 현역에 있을 때 추종하는 세력이 많지 않았다. 군 내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물론 정치인이 된 이후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특정 세력과 알력 관계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김관진 유임 카드’로 권력 분산 노려

박 대통령이 김병관 전 후보를 ‘깜짝 카드’로 내놓은 것은 결국 김 실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김 전 후보는 친박계 원로 모임인 ‘7인회’ 멤버 중 한 명과 청와대 내 친박계 핵심 인사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안보 분야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김 실장에게 더는 힘이 쏠리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방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온 한 야권 인사의 진단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해온 측근들 입장에서는 김 실장이 정보를 독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김 실장을 자신들 쪽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권력을 분산시켜 견제에 나서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병관 전 후보가 예정대로 장관직에 올랐다면 현재의 군 권력이 어떤 식으로든 재편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른바 ‘김병관 라인’이 김 실장의 견제 세력으로 부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전 후보와 가까운 인사로는 예비역 중장인 장광일 전 국방부 정책실장(육사 31기·경남 거창)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한때 김 전 후보를 보좌하는 국방부 차관을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장 전 실장은 김 전 후보의 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TF)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예비역 준장인 정대현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육사 35기·대구)도 TF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현역을 포함한 수십 명의 인사가 TF에 합류했는데, 김 전 후보가 중도 하차하면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김 전 후보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사퇴했다고 해서 ‘김장수 라인’이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김 실장에 대한 견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관진 장관 유임 카드 역시 김 실장의 권력 분산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과 군 내부의 안정화 등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를 준비해온 한 민주당 인사의 설명이다. “야당에서는 ‘누가 나와도 김병관보다 나을 테니 새 후보를 선정하라’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보냈다. 이미 인사청문회를 30일 넘게 끌었기 때문에 또 그러기는 사실상 힘들다. 웬만하면 곧바로 통과될 것을 알면서도 굳이 김 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새 후보의 경우 ‘김장수 라인’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김 실장과 김 장관의 관계는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개인적으로 대립할 사이는 아니지만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국방 개혁 과제 중에서도 입장 차가 큰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인사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맞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장관이 유임을 받아들이면서 ‘허수아비 장관은 싫다. 연말까지 인사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실장과 김 장관이 ‘밀월 관계’가 아닌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서울) 기용도 김 실장에 대한 견제를 고려한 인사로 분석되고 있다. 김 실장이 육사 2기 후배인 데다가 육군참모총장도 남 원장으로부터 넘겨받았다. 


‘김병관 낙마’ 4대 음모론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후보와 관련한 의혹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정치권에 나돌았다. 김 전 후보의 장관 임명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인데, 대략 네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이성출 배후설’이다. 호남 출신인 이성출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민주당을 통해 김 전 후보를 음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사령관이 군 주류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측에서 장관 후보로 내세우려던 인사라는 점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두 번째는 ‘작전 특기 배후설’이다. 그동안 국방부장관은 대부분 작전 특기에서 나왔는데, 김 전 후보의 경우 전력 특기다. 작전 특기에서 김 전 후보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무사 배후설’이다. 김 전 후보가 2005년 대장으로 진급하기 전 기무사령부에서 그가 회원으로 있던 마음 수련 단체 ‘붓다필드’를 조사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가 의혹으로 제기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산업체 배후설’이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김 전 후보가 장관이 되지 못하도록 방산업체에서 방해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모론’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떠도는 소문 수준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민주당 인사는 “김 전 후보와 관련한 제보의 공통점은 ‘실망했다’거나 ‘속았다’는 것이다. 특정 세력이 정보를 일부러 흘린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작전 특기 배후설은, 군내에 ‘작전이 다 해먹는다’는 반발이 많아 오히려 김 전 후보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방산업체 배후설의 경우 김 전 후보가 무기 수입업체인 유비엠텍에서 일해 장관이 되면 국내 연구·개발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이를 배후설과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국방부장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군 내부에서는 환호와 한숨이 교차한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군 인사는 측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보좌한 상관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진급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4월에 있을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일부 장성들은 일찌감치 롤러코스터를 탔다. 예상치 못했던 장관 후보가 내정된 데다 그 후보가 중도 사퇴해 현 장관이 유임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셈이다.

군 최고 계급인 대장 자리는 총 8개이다. 이 중 서열 1위인 합참의장으로 누가 가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정승조 합참의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후임 인선을 두고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육군사관학교 기수로만 따진다면 정 의장 다음 기수인 33기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유력하다. 나머지 육군 대장은 육사 34기 세 명과 3사 10기 한 명이다.

하지만 인사가 기수 순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조 총장이 김병관 전 후보와 가깝다며 이 부분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후보의 낙마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육사 34기 동기들 중에서는 권오성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 가장 앞선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경우 4월은 건너뛰고 10월에 인사가 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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