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고통 나눠 살아나다
  • 경북 김천·안성모 기자 (asm@sisaprss.com)
  • 승인 2013.04.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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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폐업 위기 딛고 흑자 행진…공공의료 상생 모델 제시

진주의료원이 폐업 위기에 내몰리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공의료는 정부와 같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로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그 비중이 높은데, 한국의 공공의료 현실은 척박하다. 선진국 중 공공의료 비중이 낮은 일본(26.4%), 미국(24.9%) 등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를 정도로 열악하다. 상당수 지역 의료원이 만성 적자에 허덕이며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진주의료원이 아니더라도 폐업 이야기가 나오는 지역 의료원은 한두 곳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경상북도 서부 지역 한 소도시의 공공의료기관이 주목받고 있다. 1921년 개원해 한 세기 가까이 지역 주민의 건강을 지켜온 김천의료원이 그 주인공이다. 인구 13만여 명의 작은 도시에 위치한 김천의료원은 전국 지방 의료원 가운데 의료 수익으로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 지방 의료원의 경우 민간 병원과 달리 수익을 내는 데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수익만 높은 것이 아니다. 재정적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도 확대해가고 있다.

4월17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김천의료원의 첫인상은 평온함이었다. 환자 몇 명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봄기운을 맛보고 있었다. 그 뒤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잘 정돈된 병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사진 작품을 전시해놓은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일종의 갤러리다. 지방 의료원의 경우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접수 창고에 주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대도시 유명 종합병원처럼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친근함이 느껴졌다.

김천의료원 역시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진주의료원의 현재 상황 못지않게 수렁에서 허덕였다. 1983년 지방공사로 전환한 후 2010년까지 26년 동안 단 한 번도 흑자 경영을 하지 못했다. 누적 적자가 무려 230억원이었다. 2008년 한 해에만 경영 적자가 25억7800만원에 이르렀다. 2009년 들어서는 원장마저 6개월간 공석으로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관리직 직원은 “매각한다느니 민간 위탁을 한다느니 아예 폐업을 한다느니 온갖 이야기가 나돌았다”고 회상했다. 의료원 전체가 황폐했다. 경영자는 직원에게, 직원은 경영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갈등이 이어졌다고 한다. 직원들은 “돈 못 버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적자가 난다고 뭐라 한다”며 불만이 쌓여갔다. 지역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경북도와 도의회에서는 적자투성이인 김천의료원을 골칫덩이로 여겼다.

4월17일 김천의료원 정문 앞에서 환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4년 만에 수익·환자 두배로 늘어

변화의 바람은 2009년 6월 김영일 원장이 취임하면서 불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들어온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직원들과 연수를 떠났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병원에 돈이 없어 김 원장이 사비를 털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고참 간호사는 “들어오자마자 연수를 가자고 해서 ‘의도가 뭘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그런데 연수 중에 직원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또 겸손하게 다가오는 모습에서 조금씩 신뢰가 쌓여갔다”고 말했다.

김 원장과 직원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대책은 ‘고통 분담’이었다. 김 원장부터 급여 50%를 내놓았다. 직원들도 5~15%를 반납했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휴무가 된 토요일에도 병원 문을 열었다. 경영이 개선될 때까지는 무급으로 근무하기로 했다. 통근버스를 없애는 등 지출은 최대한 줄였다. 이미 임금이 17억원이나 체불된 상태에서 내리기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희생이 큰만큼 역할도 커졌다. 식당 운영부터 장비 구입에 이르기까지 병원 운영 전반을 직원들이 참여한 각종 위원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도록 했다. 병원 근로자 대표인 강해연 노사협의회 의장은 “원장이 급여의 절반을 내놨을 때 우리가 그 정도를 못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김 원장에 대한 신뢰가 있던 때도 아니었다. 김 원장은 우리와 소통하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수익을 늘리는 데는 정공법을 택했다. 병원에서 상품은 의료 행위다. 그런 만큼 의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해 우수한 의료인을 초빙하고 진료할 수 있는 과를 늘렸다. 최신 의료 장비를 들여오고 입원실 등을 현대화했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매출액이 2008년 142억원에서 2012년 28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0년 6억원, 2011년 10억원의 흑자를 냈다. 환자 진료 실적도 2008년 18만6212명에서 2012년 33만1360명으로 급증했다. 직원 수도 120명이 늘어났다. 의료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 모든 성과는 직원들의 희생에서 비롯됐다.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이 만년 적자의 악순환을 끊어낸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진주의료원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덩달아 김천의료원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흑자를 내는 지역 의료원’이라는 점이 부각된다. 하지만 김천의료원의 성공 사례를 진주의료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병원에서 흑자를 냈으니 다른 병원도 흑자를 내야 한다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의 가치를 단지 수익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천의료원측도 이 부분을 경계했다. 한 간부 직원은 “진주의료원 분들은 우리에게 한 식구나 마찬가지다. 그분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천의료원은 흑자 경영을 넘어 공공의료의 취지에 맞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병원 문을 열어 건강검진을 하고 있다. 평일에는 일을 하느라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1년 365일 항상 병원 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행복 병원’도 일주일에 두 번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검진버스 1대와 진료버스 1대를 마련했다. 장비가 내장된 차량 가격이 7억원을 넘는다. 베트남 직원이 통역 서비스도 하고 있다. 시골로 갈수록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그중 베트남 출신 여성이 가장 많다고 한다.  

 

ⓒ 시사저널 이종현
만성 적자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었나?

직원들 스스로 고통 분담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건 긴박하다는 상황 인식을 함께 공유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월급까지 반납하는 데 대해 반발이 있었을 것 같다.

직원들과 원장이 생각하는 우리 병원의 나아갈 방향이 일치했다. 누가 시킨다고 반납하겠나. 빚까지 지고 있는 상황에서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직원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 지시에 의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직원들의 순수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주민들이 가장 좋아했다. 예전에는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외면했다. 아파도 갈 데가 못 된다고 여겼다. 주민들의 이용이 적으니까 적자가 난 것이다. 이제는 그 반대가 됐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니까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역 민간 병원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수입만 따지면 비급여 진료비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공공의료는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료라는 것은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아플 때 국가가 나서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민간 병원이 돈이 안 된다고 꺼리는 환자를 공공의료라는 이름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진료 대상이 중산층 이하다. 이런 병원이 없어지면 이분들은 어디로 가나. 그러면 국가 기능의 한 축인 의료가 무너진다.

돈 안 되는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까 재정이 나빠지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경영 성과도 내고 공공의료 사업도 확대하라는데, 말은 쉽지만 현장에서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 주 진료 대상이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인데 이들에게 영업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공공의료기관 본연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저소득층에 대한 무료 의료를 확대한다든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공 프로그램을 활성화한다든지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경영 개선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정부 지원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역 공공병원의 경우 우수한 의료진 확보부터 어렵다.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요즘 병원은 의료 장비의 전쟁이다. 민간 병원이 엄청나게 앞서가고 있는데 공공병원이 따라갈 수 있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원 속에서 경영 성과를 내는 것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좋은 공공의료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겠나.

자체적으로 알아서 운영하는 것은 힘들다는 얘기인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하다. 진료를 제대로 하려면 의료진이 있어야 하고 의료 장비가 있어야 한다. 국가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통해 환경을 만들어놓아야 가난한 사람도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는데 빨리 수습으로 가닥을 잡아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해서 슬기롭게 해결했으면 한다. 내부 문제는 결국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밖에서는 깊이 알지 못한다.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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