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낙하산 부대 공기업 점령 나선다
  • 안성모 기자·최혜미 인턴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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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이종현

 

박근혜 정권이 대대적인 낙하산 투하를 준비 중이다. 목표 지점은 ‘신의 직장’ 공기업이다. 전 정권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MB맨’들을 솎아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대신 ‘친박맨’들이 그 자리를 꿰차기 위해 낙하산 끈을 조여매고 있다. <시사저널>은 공기업 임원 인사를 앞두고 권력의 악습인 ‘낙하산 인사’ 실태와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각종 자료와 취재를 통해 역대 정권의 낙하산 인사 리스트를 총정리하는 한편, 빚더미에 신음하는 공기업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소리 소문 없이 밑에서부터 조용히 움직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인사들이 낙하산 끈을 조여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주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언제 뛰어내릴지 그 시점을 노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단 ‘OK’ 사인만 떨어지면 언제든 낙하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어디를 통해야 할지 몰라 다들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음알음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여권 내부 정보에 밝은 다른 인사는 “누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명단이 올라갔고 일부는 검증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선 직후 논공행상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 못 하던 때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박근혜정부도 예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낙하산 부대를 투하할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이 착지할 지점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이다. 현재 정부가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기관은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 공공기관 등을 합쳐 295곳이다. 여기에다 공기업 자회사와 각종 협회 및 단체 등을 포함하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자리는 훨씬 늘어난다. 기관장은 물론 감사와 상임이사 등 고위 임원진까지 확대하면 7000여 명의 인사가 직·간접으로 정부의 영향권에 있다.

이 자리를 모두 낙하산 인사가 차지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 정치권 인사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캠프 합류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경선 캠프라면 100등, 본선 캠프라면 500등 안에는 들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밝혔다. 대선 승리 후 논공행상 행렬에 가담하려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대선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물론 각자 생각하는 순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하나의 낙하산을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살벌할 때가 많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매 정권마다 논란을 불러온 고질병이다. 군사 정권에서는 군 출신 인사들이 대놓고 자리를 독식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정권 실세의 측근들이 득세했다. 이를 두고 비난이 쏟아진 것도 반복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선을 앞두고 ‘부실 인사의 낙하산 임명 근절’을 약속했다. 당선인 시절에는 “낙하산 인사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된다”며 퇴임을 준비 중이던 MB(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잠잠하던 여의도 정가, 정부 출범 후 들썩

실제 대선 직후 여의도 정가에는 한동안 한파가 몰아쳤다. 야권이야 선거에서 졌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선거에서 이긴 여권도 숨죽인 듯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나섰다가 잘못 찍힐 경우 그날로 짐을 싸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인사들 중에는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 박 대통령은 3월11일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여권에서는 이를 공공기관장 인사의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우선 MB 정권에서 임명한 낙하산 인사를 솎아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아직까지 상당수 공공기관에 ‘MB 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17쪽 표 참조).

그렇다고 MB 정권 초기 때처럼 막무가내로 내쫓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무 기관인 정부 부처의 움직임이 바빠진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부처를 통해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빠르면 7월, 늦어도 10월쯤 되면 200개 이상 공공기관의 내부 정리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사정기관을 동원해 전 방위로 압박에 나서는 행태는 이전 정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3월 중순 공공기관에 지난 3년간 이뤄졌던 인·허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해 이를 넘겨받아 현재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몇몇 대형 공기업에서 입수한 내부 제보는 감사원으로 이첩됐고, 사안에 따라 검찰에 바로 넘겨 수사에 착수할 방침으로 안다”고 말했다.

‘MB맨’ 줄줄이 사퇴, 임기 말 낙하산 ‘눈총’

사정기관을 동원한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을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임기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이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줄지어 사표를 내고 있다. 김건호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3월13일),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3월28일), 이지송 전 LH공사 사장(3월28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4월14일), 주강수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4월15일) 등 MB 정권의 대표 주자들이 줄줄이 퇴장했다.

이와 반대로 지난해 말 일부 공공기관에 낙하산이 뒤늦게 내려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감사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공공기관 감사는 흔히 ‘낙하산의 꽃’으로 불린다. 업무 부담은 적은데, 영향력은 큰 자리다. 기관장에 비해 세간의 주목도 덜 받는다.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여권 인사는 “임기 말에 청와대에 남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청와대 내부에서도 연줄이 좋은 사람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역시 사퇴 압박을 받으면 임기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다. 몇 개월짜리 ‘단기 감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낙하산으로 내려앉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기관의 고위직 근무 경력 자체가 향후 일을 도모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낙하산 인사로 인한 폐해가 크다는 점이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천문학적인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MB 정권 때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임기 2년이 보장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1년 미만이면 사실상 아무 일도 못 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어차피 나갈 사람’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그는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할 경우 불협화음이 날 수 있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일을 벌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치꾼 낙하산부터 막아야”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MB 낙하산’ 출신인 한 인사는 “낙하산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기업의 속성 중 하나로 ‘그릇 깨는 게 두려워 설거지를 안 한다’는 비유를 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외부 인사가 들어가 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공기업 경영을 선거에 활용하려는 정치꾼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인사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우려가 제기된다.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강만수 전 회장이 물러난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홍기택 중앙대 교수를 임명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홍 회장은 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창립 멤버다. ‘MB 낙하산’이 떠난 자리에 ‘친박 낙하산’이 대신 내려온 꼴이다. 박근혜정부와 국정 철학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과거 그는 현 정부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금산 분리 반대론자이자 산업은행 민영화 찬성론자였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별 볼일 없는 부처의 장관으로 가는 것보다 힘 있는 공공기관 수장으로 가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우선 까다로운 국회 청문회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연봉이 적거나 활동 여건이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곳도 많다. 유력 인사들까지 나서 낙하산 끈을 붙잡으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격적으로 진행될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인사가 낙하산 인사로 얼룩진 예전 정권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그 끈을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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