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처럼 건물 부서지고 구호 활동도 빵점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4.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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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 2008년 이어 또 지진…정부의 재난 대응 문제 심각

4월20일 아침. 중국 충칭(重慶) 시에 사는 필자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나른한 주말 아침을 맞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8시2분을 가리킨 순간, 갑자기 아파트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동은 무려 20초나 계속됐다. 쓰촨(四川) 성 야안(雅安) 시 루산(蘆山) 현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강도가 얼마나 센지 진앙지에서 무려 500여 ㎞ 떨어진 충칭에서도 지진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진동이 끝난 후 아파트 앞 광장을 바라보니 놀란 중국인들이 공포에 질린 채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이처럼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4년 전인 2008년 5월12일에도 똑같은 일을 혹독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규모 8.0의 초대형 강진으로 사망자 6만9277명, 실종자 1만7923명, 부상자 37만4643명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낸 ‘쓰촨 대지진’의 기억 때문이었다.

2008년 대지진이 발생한 지 불과 5년이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국 정부의 재난 대응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피해자 구조와 이재민 지원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번 쓰촨 성 지진 발생 후 중국 정부는 1만9000명의 인민해방군과 무장 경찰을 동원해 무너진 폐허 속에 고립된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투입된 대다수 군과 경찰 병력은 재난 구조 경험이 없거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제대로 된 구조 장비를 갖추지 못해 원시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건물더미를 들추다 건물이 붕괴돼 고립된 주민이나 구조 인력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전문적인 구조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일반 군·경 병력이 무리하게 작업에 나서면서 생긴 참사였다.

쓰촨 성 지진 구호 작업에 투입된 중국 군인들. 이들은 구조 경험이나 훈련이 미흡한 상태에서 현장에 급파됐다. ⓒ Imagine China 연합
구호품 지급 안 돼 관리 폭행하기도

중국 각지에서 보낸 긴급 구호물자는 이재민에게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지진이 발생한 4월20일부터 수많은 중국인이 사재를 털어 이불과 의류, 천막, 음식, 식수 등을 사서 피해지로 보냈다. 일부 ‘열혈’ 인사는 구호물자를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진앙지인 쓰촨 성 야안 시까지 달려갔다. 그중에는 베이징, 상하이, 광둥 등지에서 이틀 내내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 구호물자는 야안과 루산에 진입하기에도 힘들었다. 공안 당국이 피해지로 들어가는 도로를 봉쇄해 차량 진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도로 곳곳이 파괴된 데다 일부 교량이 붕괴 위험에 빠져 차량이 오갈 경우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야안 입구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는 진입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는 구호 차량 길이가 한때 5~6㎞에 달할 정도였다.

루산으로 전달된 구호품이 이재민에게 제때 전달되지도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제공된 공식 구호물자가 아닌 물품은 지방 정부의 복잡한 검사와 인증을 거쳐야만 분배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 주민들이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다.

일부 지역은 상황이 심각해지며 폭동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현지를 취재한 한 방송국 기자는 “이재민이 구조 지휘 차량을 막고 거세게 항의하거나 심지어 관리들을 때리는 일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오가는 차량을 무작정 세워 동승을 요구한 뒤 물과 식료품이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이재민도 부지기수였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지진을 통해 고질적인 ‘두부공정(豆腐工程)’이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두부공정은 부실시공으로 인해 건축물이 재난·재해를 견디지 못하고 두부처럼 부서지는 중국 건설업계의 악폐다. 각종 비리와 뇌물로 얼룩진 두부공정은 2008년 대지진 참사 때 그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시 수업을 받던 학생들의 피해가 컸는데, 대다수 학교 건물이 두부공정으로 만들어졌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2008년 대지진 때 생수와 음식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이재민들. 구호물자 공급 난맥상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 모종혁 제공
4월21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규모 8의 대지진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시공했다는 야안 박물관이 크게 파괴됐다”며 “공안국 청사도 훼손되고, 2008년 이후 재건축된 학교도 붕괴하는 등 두부공정의 재앙이 되풀이됐다”고 보도했다. 현지 지방 정부는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민간단체나 인권활동가의 구호 활동을 선별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두부공정에 대한 의혹이 가중되면서 뒤늦게 지방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부패 의혹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둬웨이(多維)·보쉰(博迅) 등 인터넷 매체는 “쉬멍자(徐孟加) 야안 시 당서기가 과거 매관매직, 부정 축재, 성추문 등 여러 차례 의혹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판지웨(范繼躍) 루산 현 서기도 피해 현장을 찾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수행하면서, 팔목에 찾던 20만 위안(약 3640만원) 상당의 스위스 명품 시계를 벗어 내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번 지진은 2008년보다는 희생자 수가 훨씬 적다. 4월24일 오후 2시 기준으로 사망자 196명, 실종자 21명, 부상자 1만1470명이다. 4285차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산사태도 끊이지 않고 있다.

4월22일 중국 수리부는 “중형 댐 2곳과 소형 댐 52곳이 손상됐다”고 밝혔다. 소형 댐 중 5곳은 피해 상황이 심각해 하류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수리부는 댐의 이름과 위치, 손상 정도는 밝히지 않은 채 “3000명 이상의 인력이 댐 수리를 위해 파견됐다”고 전했다. 판샤오(范曉) 쓰촨 성 지질광업국 총공정사는 “당장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앞으로 몇 달간 많은 비가 오면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서 충격을 받은 댐에 큰 압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발생 후 중국 최고 지도부는 발 빠른 행보를 보여줬다. 리커창 총리는 지진 발생 후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쓰촨에 내려가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텐트 안에서 손전등을 켜고 대책회의를 열고 아침 식사는 죽과 짠지로 해결했다. 이런 모습에 13억 중국인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전체적인 재난 대처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지진 발생지가 2008년 대지진이 일어났던 쓰촨 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국이 경제력에 걸맞은 재난·재해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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