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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국 기업들, 착하지 않으면 미래 없다”

세계 석학들이 말하는 ‘굿 컴퍼니’

김진령·노진섭·이석 기자·양창희 인턴기자 ㅣ 승인 2013.06.04(Tue) 15: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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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들이 요즘처럼 비난을 샀던 적도 없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횡포부터 CJ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까지 연이어 갖가지 기업 비리가 쏟아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쁜 기업’의 ‘나쁜 행동’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때에 <시사저널>은 지난 5월28일 ‘2013 굿 컴퍼니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이 “시의적절한 행사”라고 공감했던 것도 요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본지 취재진은 이날 강사로 나왔던 네 명의 석학에게 굿 컴퍼니가 무엇인지 물었다.

   
로리 바시 박사 ⓒ 시사저널 임준선
로리 바시 박사
돈 많이 번다고 좋은 기업 아니다

<굿 컴퍼니>의 공동 저자인 로리 바시(Laurie Bassi) 박사는 인적 자본 분석 컨설팅회사(맥바시&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이면서 미국 조지타운 대학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다. 5월29일 그를 만나 착한 기업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경제 잡지 <포춘>은 매년 1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한다. 바시 박사는 100대 기업을 재평가한다. A부터 F까지 이른바 착한 기업 지수를 매긴다. 물론 A가 가장 좋은 회사다. 예를 들어 지난해 <포춘>의 100대 기업 중 1위를 차지한 유통업체 월마트에 착한 기업 지수 C를 줬다. 100대 기업 순위에서 95위에 오른 타임워너(영화제작사)에 A-(1위)를 매겼다. 월마트는 매출이 크고 직원 급여가 많을지는 몰라도 착한 기업 지수로 따지면 평범한 수준이다. 반면 100대 기업 순위에 턱걸이한 타임워너는 미국에서 가장 착한 기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를 선진국으로 여기던 관행 대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보려는 최근의 시도처럼, 기업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바시 박사는 “착한 고용주, 착한 판매자, 착한 환경 제공자가 착한 기업의 세 가지 조건”이라며 “기업에 대한 직원과 소비자의 평가, 처벌과 벌금형을 받은 기업 자료, 과도한 경영진 보수 내역, 자선 활동 등을 분석해 착한 기업 지수를 매긴다”고 설명했다.

착한 기업 지수에서 A를 받은 기업은 이를 홍보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D 이하를 받은 기업은 실제로는 나쁜 기업이 아니지만 나쁜 기업으로 비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지수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업에 주는 자극이다. D를 받은 회사 경영자가 C나 B 또는 A를 받도록 노력하기를 국제 사회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착한 기업의 전제 조건은 좋은 고용주라고 했다. 좋은 고용주란 직원에게 영감을 주고 인적 자원을 챙기는 경영인을 말한다. 그는 “경영이 어려워지면 고용주는 직원을 버리는데, 해고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손해”라며 “평생직장을 제공해야 직원이 회사에 헌신하고, 이는 곧 인적 자원을 챙기는 것이다. 기업이 오래 유지되는 힘은 인적 자원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직원을 잘 대우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사회 환원에 적극적인 기업도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기업이 이상적이겠지만 재정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바시 박사는 “직원을 보살피는 일이 우선”이라면서 “착한 기업이 되는 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 회사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노하우(knowhow)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좋은 기업이 많이 생기려면 어떤 토양이 필요할까. 그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큰 힘을 가져야 하고, 이사진이 긴 안목으로 경영에 참여해야 하며, 정부가 기업의 행동을 관찰해서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가족 중심의 경영으로 이룬 재벌 기업이 많은 국내 기업 분위기에서 착한 기업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기업이 잘못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사지 않는 등의 힘을 보여줘 대중의 처벌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있다. 그런데 요즘 착한 기업이 화두가 되는 배경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이 대형화한 만큼 세계 사회가 착한 기업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기업을 관리할 수 없으므로 소비자 등 사회 구성원이 착한 기업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과거에는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최고였다면 미래에는 착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 ⓒ 시사저널 임준선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
기업 성공은 구성원 에너지에 달렸다

<사랑받는 기업>의 저자로 글로벌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라젠드라 시소디어(Rajendra Sisodia) 미국 벤틀리 대학 마케팅 교수는 올가을부터 뱁슨칼리지 석좌교수로 일한다. 그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깨어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라는 틀로 굿 컴퍼니의 필요성을 강의했다. 그가 ‘깨어 있는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2007년에 출간된 <사랑받는 기업>을 준비하면서 기업 경영에 대해 다른 시각을 발견했다는 것. 그는 당시 이것을 ‘새로운 자본주의 도입(INC : Institute for New Capitalism)’이라고 불렀고 <사랑받는 기업>의 공동 저자인 존 맥키는 이를 ‘깨어 있는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했던 전통적인 기업 경영 철학보다 훨씬 풍부하고 깊은 철학을 의미한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 철학은 기업 경영이 수익 극대화보다는 더 높은 목표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은 모든 주주를 위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로, 어느 한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바람직한 리더는 ‘권력이 아니라 목표와 서비스를 중시하는 리더’라고 했다. 그런 리더가 높은 수준의 신뢰, 진정성, 투명성, 사랑, 배려에 기반을 둔 조직 문화를 가꾼다면 장기적으로 힘 있고 성공적이며, 많은 종류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리더십은 과거의 리더십과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의 리더십은 회사 주식 가격이 포함된 경제적 가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군대처럼 지휘 통제와 위계질서에 기반을 둔 리더십이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의 리더는 조직의 목표에 봉사하고 주주와 조직원을 포함한 사람을 위해 일한다. 겸손하고 섬기는 리더이다. 이런 리더가 조직 구성원의 목표 의식을 더 효과적으로 높여준다는 것이 입증됐다. 요즘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더 높고 포부가 크다. 그냥 명령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기업의 성공은 구성원이 기꺼이 회사에 제공하려고 하는 재능과 에너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찾았고 컨설팅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한국 기업문화에 대해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성적 위계질서에 휘둘리고 있다. 리더 자리에 여자가 많이 없다. 여성적 가치인 인재 양성, 배려, 헌신 등이 그만큼 없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에는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가 모두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는 생존, 싸움, 열심히 일하기 등 남성적 에너지가 너무 많다. 5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국 기업이 엄청난 성공을 한 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발전이다.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 이제는 여성적 가치 등 다양성을 늘리는 것을 실행해야 할 때다.”

 

   
로사 전 석좌교수 ⓒ 시사저널 임준선
로사 전 석좌교수
내부 평판이 기업 운명 좌우한다

로사 전(Rosa Chun) 박사는 세계적인 명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한국인 최초로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아일랜드의 UCD 마이클 스머핏 경영대학원 글로벌 리더십 석좌교수로 있다. 평판 경영과 브랜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 전문가인 그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좋은 기업이 성공적인 기업일까?(Doing Good is Doing Well?)’라는 주제로 굿 컴퍼니의 가치를 풀어나갔다.

그는 강연에서 좋은 기업이 반드시 재정적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으며, 사회적 책임이 약한 기업이 재정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무조건 좋은 기업이 성공한다는 공식을 막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지를 찾을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먼저 법적 책임을 넘어선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이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1위’(미국 경제 잡지 <포춘> 선정)이지만 “항상 저렇게 반짝거릴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현재의 평판은 과거의 퍼포먼스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잡스 생전에 비축된 평판의 저수지가 고갈되기 전에 진정한 의미의 좋은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1위 자리는 머지않아 경쟁자에게 내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애플의 어마어마한 현금 보유는 웬만한 나라의 GDP(국내총생산)보다 많다. 이는 애플의 중국 하청 공장인 폭스콘의 저임금 노동과 조세 회피처를 이용한 ‘절세’ 때문이라는 논란 속에 미국에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둘째로 로사 전 교수는 편법을 쓰고 약한 자를 착취하면서까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없는 이유로 ‘평판’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 결과 “내부 평판과 외부 평판 중 기업의 내부 평판이 더 높았을 때 미래의 수익이 18% 높았다. 이른바 ‘레퓨테이션 갭’(내부 평판과 외부 평판의 차이)이 ‘doing good is doing well’의 연결 고리”라고 강조했다.

로사 전 교수는 평판 차이가 수익에 영향을 끼치는 예로 최근 물의를 일으킨 남양유업 사례를 들었다. “30%가 넘는 비정규직, 저임금, 강압적인 기업 문화 등 직원의 낮은 내부 평판이 알려지면서 외부 평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세일즈와 시장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Repute and Disrepute>라는 책을 쓰면서 평판 경영에서 ‘shame(수치심)’과 ‘guilt(죄책감)’를 근거로 한 문화적 차이를 분석했다.

한국처럼 ‘shame’ 문화가 지배적일 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데 내가 아닌 남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잘못했을 때 잘못을 고치기보다 대중을 향한 사과를 누가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그는 “한국 사회는 스트레스가 심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늘 남과 비교하고, 골목마다 똑같은 업종의 약국·편의점·빵집이 늘어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선 마케팅을 잘하고 차별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이런 환경이 역으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좋은 기업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기업의 외부보다는 내부 평판 경영에 있음을 그는 강조했다.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 시사저널 이상민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작은 실천이 굿 컴퍼니의 시작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괴짜’다. 본업은 의사이지만 미래학자나 미래 칼럼니스트로 더 유명하다. 퓨처 리서처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1996년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전공이 전혀 다른 의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우리들병원 생명과학연구소를 거쳐 관동의대 명지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기행’이 이어졌다. 병원 서비스의 관점을 의사에서 환자로 옮기면서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 소장은 “지금은 어떤 시대보다 트렌드 변화가 빠르다”며 “역사에서 반추해 미래를 예측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작업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미래학에 대한 개념은 조금 달랐다. 전통적인 미래학은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 시도하다 보니 거시적이다. 먼 미래 얘기를 하다 보니 “So what?”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는 5년의 미래만 본다. 굳이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5년 이내에 어떤 기술로 어떤 것이 가능해지리라는 것만 얘기한다. 그는 이 개념을 ‘미시 미래학’이라고 표현했다. 또 “사회가 변화하려면 아주 작은 레벨로 내려와서 움직이는 액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굿 컴퍼니’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그는 거창한 계획보다 조그만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취지에 공감하고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변하게 돼 있다”면서 “굿 컴퍼니의 구성원이 미래를 창조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추세가 보편화돼 있다.

그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의 일자리 늘리기 캠페인을 예로 들었다. 스타벅스는 현재 미국 전역 매장을 통해 일자리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재단을 통해 500만 달러를 기부한 뒤, 일선 매장에서 소비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개념이다. 스타벅스는 5달러를 기부하면 ‘나눌 수 없음(Indivisible)’이라고 새겨진 손목 밴드를 제공한다. 이 손목 밴드는 우리 사회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게 만든다고 그는 설명했다.

생수나 유제품으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 다논(Danone) 역시 ‘그라민 다논 푸드’라는 자회사를 통해 빈곤 퇴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방글라데시의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유로 요구르트를 만들어 가난한 시골 아이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익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의 다른 시골 지역에 유사한 공장을 만드는 데 투자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장 일대에는 수백 개에 이르는 가축 농장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그는 기자와 만나는 동안 작은 실천을 하는 기업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들 기업은 당장 수익이 없을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사회적인 신뢰를 얻었다. 향후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수익성 제고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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