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가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다
  • 김덕영│PD·다큐스토리 대표 ()
  • 승인 2013.07.0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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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와 수니파의 뿌리 깊은 갈등…정국은 안갯속

4월20일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정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이번 선거는 현 누리 알 말리키 총리의 지난 임기를 평가하고 향후 이라크 경제 재건 방향을 가늠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법치국가연합’이 이라크의 12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서 선전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치러진 선거와 비교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선전했다는 평가를 들은 법치국가연합은 2009년에 비해 24석이나 줄어든 총 102석을 얻었다. 반면 온건파에 속하는 아마르 알 하킴의 ‘이슬람최고평의회’와 알 사드르가 이끄는 급진파 정당이 각각 13석과 17석씩 의석수를 늘렸다. 두 야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집권당보다 23석이나 많아 내년 총선에서는 새로운 정권연합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 이라크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말리키 정권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4월16일 이라크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그다드 동부 지역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1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 AP연합
수니파의 경고 “말리키 총리에게 죽음을”

어떻게 해서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까. 문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이슬람 두 종파 사이의 오래된 갈등과 대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라크는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소수파인 수니파(22%) 그리고 쿠르드족(18%)이 18개 주정부를 구성해 운영하는 연방제 국가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는 수니파가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면서 다수인 시아파를 억압했다. 정부 요직은 물론이고 군부와 재계에서도 수니파가 득세하면서 기득권을 장악했다. 다수였지만 권력에서 소외됐던 시아파의 잠재된 불만은 깊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사담 후세인의 몰락은 이라크 정치 구조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란으로 망명했던 시아파 종교 지도자들이 귀국하고, 반미를 부르짖는 급진주의 혁명 세력도 토착적인 지역색을 등에 업고 권력을 얻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종파적 성향과 부족주의적인 전통이 뒤엉키면서 말 그대로 이라크는 종파와 분열이라는,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품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2003년 8월 나자프에서 발생한 이맘 알리 사원의 폭탄 테러는 잠재돼 있던 종파적 갈등을 수면 위로 분출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금요 예배를 마친 후 시아파 교도들이 무리지어 사원을 빠져나가는 순간 테러가 발생했다. 온건 노선을 추구하던 이슬람최고평의회 소속 시아파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을 포함해 2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긴 사건이었다. 테러 발생 직후 이라크 경찰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인 19명을 용의자로 검거했다. 당시 경찰은 이들 모두가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종파에 가입된 자들이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치안 공백 상태가 더욱 심화돼 상대편 종교 시설물에 대한 테러와 성직자에 대한 암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엔은 이라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파 분쟁으로 지난 5월에만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전에 가까웠던 지난 2007년 상황으로 이라크 정국이 되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세력들의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예배를 마친 뒤 사원 앞에서는 말리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4월23일에는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정부 보안요원들이 수니파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27명이 사망했다. 선거 기간을 이용해 세력 확산을 노리는 수니파와 정부 사이에 유혈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일부 시위 군중은 “말리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결사 항전을 결의하기도 한다. 6개월이 넘도록 시위가 계속되면서 말리키 총리를 지지했던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 둘 마음을 돌리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는 결국 종파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화해 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선거 투표소에서는 테러 방지를 위해 유권자의 몸 수색을 한다. ⓒ AP연합
후세인 친위대가 수니파 민병대로

최근 선거 결과를 놓고 이라크 정치 전문가들은 2007년 종파 내전이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동안 다소 온건했던 수니파가 현 말리키 총리에 대항할 강경파를 키우는 쪽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는 점을 봐도 그렇다. 심지어 수니파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민병대가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4만명에 이르는 공화국수비대가 거의 궤멸되는 타격을 입은 것과 달리 사담

이라크에서는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기표 용지에 찍는 방법으로 투표한다. ⓒ AP연합
후세인 친위부대였던 특수공화국수비대는 실제로 미군과 교전을 벌이지 않았다. 2만명의 병력이 이렇다 할 손실 없이 종전을 맞이한 셈이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수니 삼각지대’로 알려진 수니파 본거지로 들어가 민병대로 조직돼 있다는 점이다. 만약 사태가 악화돼 이들이 무장투쟁의 중심에 선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말리키 총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좁다. 우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 재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시켜 이라크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서는 외국 자본의 투자가 꼭 필요하지만 외국 기업들은 이라크가 기회의 땅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투자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이라크에서 현재로서는 어떤 나라도 쉽게 투자를 할 수 없다. 말리키 총리에 반대하는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이 계속해서 폭탄 테러를 감행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종파적 갈등은 이라크 재건 사업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석유 자원이 많이 나오는 이라크 남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 세력은 수자원이 풍부한 북부 쿠르드 지역과 공생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만 쿠르드 자치 정부는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오랜 부족적 전통으로 인해 연방정부가 힘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라크 국회에서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후맘 하무디는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파 분쟁이 결국 아랍 전체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세력이 이라크의 종파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 등 다양한 종파와 민족으로 이뤄진 국가이기 때문에 이라크의 분열은 아랍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을 흔들 수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나 쿠르드가 별도의 국가를 세우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와 이란의 쿠르드도 독립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랍이 종파로 분열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결국 이라크가 안정되어야 아랍 전체가 안정될 수 있다.”

4월20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그다드 곳곳에 출마자 포스터가 있다. ⓒ Xinhua 연합
계속되는 시아파에 대한 테러 공격

말리키 총리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온건파들과의 정치 연합을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약진한 이슬람최고평의회의 아마르 알 하킴이나 급진파 알 사드르는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꿈꾸고 있다. 내년 3월로 다가온 이라크 총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지방선거 직후인 5월8일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나자프에 모여 대대적인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는 말리키 총리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급진적인 반미주의자이자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알 사드르는 이날 집회에서 “테러가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종파적 갈등이 불러온 테러에 현 정부가 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엄포였다.

현재로서는 어떤 종파가 주도권을 잡든 이라크 내에서 종파적 분열과 갈등이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많은 종파와 정치 세력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이라크 정국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테러는 이런 종파 갈등을 한층 과격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 그 와중에 피해를 보는 것은 이라크 국민들뿐이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만난 한 이라크 전직 교수는 심화되고 있는 종파적 갈등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누구를 위한 종파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테러인가? 그 누구도 우리의 행복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이라크에서는 지금 고통과 좌절만 있을 뿐이다. 누가 되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자가 진짜 이라크 국민을 위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라크 국민들의 바람과 현재 진행되는 상황은 정반대다. 6월16일 하루에만 바스라와 아지지야 등 이라크 전역 1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사상자도 100명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테러가 벌어진 곳은 모두 시아파 무슬림 밀집 지역이다. 종파 갈등에 따른 공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치안 부재에 더해 중앙정부마저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종파 분쟁이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이라크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라크의 미래를 위한 선택에 내전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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