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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에 막혀 ‘을’이 되다

‘식물 대표’ 위기 몰린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암중모색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ㅣ 승인 2013.07.23(Tue) 09: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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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한 측근은 지금의 정국에 대해 기자에게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민주당은 호남이 한 축, 운동권·486이 한 축으로 이뤄진 당인데 김 대표는 둘 다 살짝 걸치긴 했지만 이도저도 아니라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김 대표 체제 ‘민주당호’의 두 달여 행보는 험로 그 자체였다. 친노 세력이 전면에 나섰던 총선과 대선에서의 잇따른 패배 이후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겠다고 했을 때는 김 대표 나름의 구상이 있었을 테지만, 그게 여러 변수들로 꼬일 대로 꼬여가는 중이다.

   
7월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한길 당 대표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참신했던 ‘을(乙)을 위한 국회’라는 거대 담론은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 2007년 남북정상회담 NLL 발언 진실 공방 등에 묻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외친 ‘민생과 민주주의 투트랙’도 흐지부지되었다. 그나마 간신히 반발하던 김현·진선미 의원의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위원 사퇴를 이끌어내면서 뭔가 일을 해보려 하자 이번에는 또 난데없이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실종’이라는 돌발변수가 터졌다. 이 문제로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 세력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시 한번 무대의 전면에 서게 됐다. 그야말로 김 대표 입장에서 보면 2007년 열린우리당 탈당 때를 시작으로 6년째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질긴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신주류 지도부는 정국 주도권도 통제력도 모두 내놓고 망연자실, ‘멍 때리는’ 모습만 자꾸 노출한다. 소속 의원들도 딴생각뿐이다. 중립으로 분류되던 정세균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특위에서 김현·진선미 의원을 빼지 말라며 친노 편에 섰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신주류 진영에서는 차기 당 대표 자리를 노리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친노와 공천권을 나눠 가지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국정원 국정조사특위도 당초 당 지도부가 계파를 안배해 짜려 했는데, 친노측 유력 중진 의원이 자신의 정치를 위해 주도한 명단대로 거의 통과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투쟁이 아닌 타협 선택, 김 대표의 한계?

한때 ‘여당(열린우리당) 내 야당’으로, ‘야당(민주당) 내의 또 다른 야당’으로 이름값을 높였던 김 대표가 이제 야당 내 여당 격인 친노의 공세에 직면해 한계 상황을 노출하고 있는 숙명적 장면이다. 김 대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살이 빠졌다” “요즘 입맛이 없다”는 등의 하소연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7월16일 기자단 오찬에서는 “당에서의 위상도 걱정이지만, 집에서의 위상도 아주 위태위태하다”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처지를 개탄했다.

김한길 대표와 문재인 의원 등 친노 세력이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결정적인 이유로 ‘투쟁’에 대한 시각차가 많이 거론된다. 김 대표 체제 수립이 대선 패배와 이후 계속된 당내 혼란 상황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치더라도, 기왕지사 친노 쪽에서는 김 대표가 대여 투쟁의 선봉장이 돼주길 바랐을 터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 따른 운신의 폭을 제한받는 친노 입장에서 김 대표가 대리인 격으로 나서 박근혜정부와 싸워준다면 정국에 미칠 파장도 크려니와 대국민 설득력 제고, 당내 결속에도 두루두루 득이 될 것이란 계산에서다. 마침 국정원 정치 개입 등 야당을 장외로 끌어낼 충분한 건수가 여럿 터져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선택은 투쟁이 아닌 타협이었다. 이는 김 대표가 민주당이 봉착하고 있는 엄연한 한계를 직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단 장외로 나가면 다시 국회로 들어올 구실과 타이밍을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 장외에서 극단적인 세력들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거나, 일반 시민을 자발적으로 동참시킬 역량도 민주당엔 없다는 판단이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한 의원은 “민주당은 지금 자신감이 없다. 대선 패배 후 ‘멘붕’과 패배의식에 빠져 있어서 어떤 이슈를 끌고 나가기 굉장히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유야 어떻든 친노는 반발한다. 지난 대선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던 친노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장외투쟁을 더 세게 해야 한다는 게 당내 다수 의견이었는데 김 대표가 6월 국회 정상화 욕심 때문에 타협했다. 지금이라도 올스톱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19대 국회 내내 여당에 끌려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 ‘호남 지키기’ 올인 전략 고심

지금 김한길 대표에게 남겨진 선택은 민주당을 다시 수권 정당 반열에 올려놓거나, 퇴진하거나 둘 중 하나다. 깊은 감정의 골을 감안하면 김 대표와 친노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 대표에게도 구상이 있다. 측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는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 세력, 진보 정당까지 모조리 똘똘 뭉쳐야 다음 대선에서 51%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친노 내의 ‘매파’, 안철수 세력 내의 ‘매파’가 주도권을 쥐고 야권 재편에 나서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입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다른 한쪽은 당연히 배제되기 마련이고 승리의 매직 넘버인 ‘51’을 거머쥘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대표측은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호남 지키기에 ‘올인’하는 전략을 준비 중이다. 안철수 세력에 대한 지지세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서울·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일부 내줄 곳은 내주더라도 호남만큼은 굳건히 지켜내 차후 대선에서 통합의 지렛대로 남겨놓겠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평시엔 몰라도 전시가 되면 생존이 중요하니 협상파가 우위에 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호남을 수성하면 야권 다른 세력들이 힘을 합치려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수도권이 기반인 김 대표가 ‘호남 수성론’을 끌고 갈 역량과 지도력, 인적 네트워크를 다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단적인 예가 현재 공석인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이다. 민주당은 현재 지명직 최고위원 3명 가운데 1명 자리를 비워놓고 있다. 김 대표가 당을 잘 추슬러 인물들이 몰려들 때를 대비해 비워놓은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 자리가 채워질 수 있을까. 아무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한 중진 의원은 “김 대표 주변에 사람이 없다.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결기 없는 인사들뿐인데 김 대표도 굳이 친노를 포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구주류와 신주류가 결별하는 시나리오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에는 김 대표를 핵으로 한 원심력이 새 정치 세력화의 동력을 지녔지만, 지금은 안철수 신당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민주당을 위협한다. 다 뛰쳐나가고 호남 세력만 덩그러니 민주당 간판을 받쳐 들 가능성도 있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의 ‘도로 민주당’이 되는 것이다. 돌고 도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게 역사다. 데자뷔는 그래서 더 큰 흥미를 끈다. 반복되는 역사의 운명에서 어떤 수로 승부할지 김 대표의 고뇌와 선택이 주목받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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