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게 성형수술비 주는 ‘이상한’ 회사
  • 이혜숙 객원기자 ()
  • 승인 2013.10.0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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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연 대표의 파격 경영…사훈·정년·결재판 없어

이 회사엔 10가지가 없다. 사훈이 없고, 정년이 없고, 출퇴근 시간이 없다.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 없고, 결재판이 없고, 실적 회의도 하지 않는다. 기존의 상식이 통하지 않고, 관행과 형식이 없다. 심지어 회사의 장기 비전이나 목표도 없다.

대신 다른 회사에 없는 10가지가 있다. 재택근무제가 있고, 골프 기록 포상비가 있고, 늦게까지 술을 먹은 직원을 위해 회사에서 취침을 해결할 수 있는 사내 콘도도 마련돼 있다. 집이 먼 직원을 위해 입주 비용이 무료인 사택 지원 제도가 있고 전 직원 가족 동반 무료 여행권이 있다. 사내 연애를 못마땅해하는 다른 회사와 달리 사내 결혼 지원 제도가 있으며 어학 학원비, 도서 구입비, 대학 학자금 지원 제도가 있다. 심지어 성형수술비 50%를 지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확 눈에 띄는 건 번 만큼 직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설마 이런 회사가 있을까? 그것도 미국·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에? 있다. 바로 ㈜여행박사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해 있다.

9월11일 신창연 여행박사 대표(맨 왼쪽)가 서울 갈월동에 위치한 회사 1층 휴게실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여행업계에 바람 몰고 온 ‘꿈의 직장’

2000년 8월 신창연 대표가 자본금 250만원으로 창업한 여행박사는 5년 만에 매출 1600억원, 영업이익 162억원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주목되는 것은 회사의 규모만큼이나 사원 복지 제도가 부쩍 자랐다는 점이다. 여행박사의 이색적인 복지 혜택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회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여행박사의 창립일부터 전 사원에게 복지 혜택이 적용됐으니 족히 13년은 거뜬했다. 그러면 앞으로 10년은? 회사가 더 커지고 수익이 늘어나도 현재의 경영 원리가 통할지 의문이다. 신 대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앞으로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도 문제없다. 회사를 무리하게 키울 생각도 없고, 혁신적으로 회사를 바꿔나갈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아니라 속이 꽉 찬 내실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직원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서 회사가 발전해가는 것은 좋지만 회사만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신 대표의 철학은 경영 민주화다. 2~3시간 일해도 좋고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근무해도 좋다는 것이다. 자율과 방임을 허락하겠다는 것인데 언뜻 보기엔 직원에게만 유리한 제도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만큼 책임이 따른다. 쉽게 말해 일한 만큼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직원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유발한다. 신 대표의 얘기다. “직원들 사이에 오히려 업무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또 회사 경영이 잘되면 많이 주고 실적이 없으면 못 주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경영 책임을 직원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맞다. 나는 회사 경영에서의 ‘득과 실’을 직원들에게 다 넘겼다. 그래서 자유롭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여행박사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지만, 언제든 나갈 수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런 문제로 사표를 쓰거나 퇴직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일부 직원이 경영 방침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신입의 경우 수습 3개월을 거친다. 이때 현실적인 여행업계의 단맛·쓴맛을 다 본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직은 거의 없다. 우리 회사의 경우 초창기 창립 멤버를 비롯해 장기 근속자가 다른 여행사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여행사는 전국에 걸쳐 1만1000여 개에 육박한다. 이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여행사가 이처럼 난립하는 이유는 여행사 설립의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국내 여행사의 경우 초기 자본금 5000만원이면 설립이 가능하고 국외 여행사도 1억원이면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여행사의 난립을 초래했고 과당 경쟁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여행사 직원의 처우 수준은 다른 업종에 비해 열악하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인 여행사들의 1인당 월평균 급여가 210만원 정도다. 이들이 상장 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중소 여행사 직원의 경우 150만원 안팎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사 직원의 근속 연수는 다른 업종에 비해 매우 짧다. 대형 회사의 경우도 채 4년을 채우지 못하는 이가 허다하다. 작은 업체들에선 1~2년 만에 직장을 옮기는 일이 다반사다.

수당 합치면 초임 연봉 5000만원까지

여행박사는 어떨까. 초임 기본급이 2200만원이다. 여기에 수익이 발생하면 직원에게 돌려준다는 경영 원리에 따라 각종 성과급, 인센티브 등을 합쳐 많으면 4000만~5000만원을 받는다. 업계에서 여행박사를 두고 ‘신의 직장’ ‘꿈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신 대표는 무슨 배짱으로 직원들 월급을 이렇게 많이 줄까. “나 스스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잔소리를 할까. 이해가 안 됐다. 나중에 내가 회사를 설립하면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의 여행박사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직원이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할 것인지, 기본만 할 것인지는 직원 각자의 몫이다. 자신이 있으면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과감히 베팅하는 것이다. 베팅한 것에 대해 책임지고 열심히 하는 한 그 몫이 반드시 돌아간다.”

그는 언젠가 ‘실적 제도를 없애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는 의견이 있어서 아예 실적 제도를 없애는 게 어떨까 고민했다. 대신 친절도 등 다른 평가 지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여행박사는 자율 투표제로 결정한다. 찬반 투표를 통해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그대로 수용하고 실행 결과 문제가 생기면 다시 투표한다. 즉, 투표 결과에 따르지만 퇴로를 열어놓고 언제든지 개선·수정한다는 것이다. 독특한 경영 스타일을 지닌 신 대표가 평생 업종으로 여행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선택당했다는 표현이 맞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다면 별 고민 없이 남들이 선택한 길을 갔을 것이다.”

중졸 출신의 그로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것 외에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포장마차, 신문팔이 등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다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뒤늦게 경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갈 실력이 안 되다 보니 첫발을 디딘 곳이 여행사였다. 여행사에서 일하며 차츰 이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돼 평생 업종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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