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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제거하려다 되치기 당하다

타이완 마잉주 총통, 입법원장 치려다 역공 받아

모종혁│중국 통신원 ㅣ 승인 2013.11.05(Tue) 11: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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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타이완 경찰은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대외 행사를 치를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국가원수의 경호와 안전을 책임져야 하지만, 난데없이 날아드는 투척물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마 총통을 노리는 물건들은 생명에는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다만 마 총통의 체면과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데는 효과 만점이다. 타이완 경찰을 괴롭히는 투척물은 다름 아닌 ‘신발’이다.

10월8일 이후 마 총통을 노린 신발 투척 사건은 아홉 차례나 일어났다. 특히 10월19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국립해양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행사와 타이베이(臺北) 전국체전 개막 행사에서 신발 공격을 받았다. 다음 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축제에 참석한 후 행사장을 떠나던 중 한 여성이 신발 한 짝을 던져 경호원들이 급히 마 총통을 에워쌌다. 신발 투척이 잇따르자 거대한 방호막이 동원됐다. 타이완 경찰은 50만 타이완달러(약 1830만원)를 들여 최고 8m, 총 149면에 달하는 방호막을 구입했다.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날아드는 신발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방호막이 미관상 꼴사납다고 여긴 마 총통의 요구로 10월26일부터 방호막은 사라졌다. 그러나 28일 국민당 입법위원들은 입법원(국회) 상임위에서 총통의 신변 안전 강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야 위기에 처한 마잉주 총통. 마 총통은 정적을 쳐내는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을 도청한 의혹을 받고 있다. ⓒ AP연합
타이완판 ‘워터게이트’에 하야 요구 잇따라

사람에게 신발을 던지는 행위는 아랍에서 시작됐다. 아랍에서는 특정인에게 신발을 던져 모욕감을 안긴다. 2008년 12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총리와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이라크 기자로부터 신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아랍의 문화가 처음 타이완에 출현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신베이(新北)에서 열린 세계 인권의 날 기념행사에서 한 남성이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석방을 요구하며 마 총통을 향해 신발을 던졌다. 그날 벌어진 투척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지금 타이완 민중 사이에선 마 총통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분노를 신발 투척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는 통계 수치로 잘 나타난다. 지난 9월 중순 뉴스 전문 채널인 ERA가 타이완 성인 10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마 총통에 대한 지지율은 9.2%를 기록했다. 타이완 역사상 총통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전임이자 현재 수감 중인 천 전 총통이 임기 중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뇌물로 받아 국민적인 지탄을 받을 때도 10%대를 유지했었다. 지지율보다 더 놀라운 것은 마 총통의 하야 여부를 묻는 설문에 대한 반응이었다. 응답자 중 무려 49.2%가 야권 등에서 마 총통의 탄핵을 추진하면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34.7%에 불과했고, 16.1%는 별다른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타이완의 민심이 돌아선 표면적인 이유는 집권 여당인 국민당 내 정쟁에서 비롯됐다. 지난 9월11일 국민당 규율위원회는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의 당적을 박탈했다. 왕 원장이 법무부장과 검찰총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중이던 제1야당인 민진당 원내총무를 겨냥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사법권을 침해했다는 혐의다. 특정조(特偵組)가 이런 과정을 포착해 마 총통에게 보고했다. 특정조는 고위공직자수사처에 해당하는 총통 직속의 독립 사찰기관이다. 천수이볜 전 총통의 뇌물 수수와 공금 유용 혐의를 적발해 감옥으로 보내며 명성을 떨쳤다. 특정조의 조사 결과를 받은 마 총통은 9월6일 쩡융푸(曾勇夫) 법무부장을 사임시켰다. 곧이어 왕 원장도 출당시켰다.

문제는 왕 원장이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왕 원장은 1975년 타이완 남부 가오슝(高雄) 지역구에서 입법위원으로 당선됐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밑에서 세력을 키운 왕 원장은 1999년 입법원장에 선출됐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무려 4차례에 걸쳐 입법원장을 연임하고 있어 타이완 정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왕 원장이 최장수 입법부 수장을 유지했던 비결은 거대하고 다양한 ‘관시(關係)’ 때문이다. 왕 원장은 타이완에서 태어나 민진당의 세력 거점인 가오슝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내성인(內省人)이라 불리는 타이완 원주민이 중심이 된 민진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2000년부터 8년간 천수이볜 정권 시기에도 국민당 당적을 가졌지만 입법원장직을 지켜왔다.

국민당 내에서 왕 원장의 지위는 더욱 확고하다. 현재 국민당 내에는 ‘4대 가족’이라 불리는 원로들이 존재한다. 부총통을 지낸 롄잔(連戰), 주석을 역임한 우보슝(吳伯雄), 타이베이 시장인 하오룽빈(龍斌), 신베이 시장인 주리룬(朱立倫)이 그들이다. 왕 원장은 이들 4대 가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왕 원장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지한파’(知韓派)다. 그는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과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 타이완 여야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타이완의 건국기념일인 10월10일 반정부 시위대 참가자가 총통 집무실 쪽으로 신발을 던지고 있다. ⓒ AP연합
‘정적’ 왕진핑 입법원장과의 쟁투가 도화선

“정적이 없는 원장”이라 불리는 왕진핑이 당적을 박탈당하자 타이완 정국은 혼돈에 빠져들었다. 왕 원장은 비례대표라서 국민당에서 쫓겨나면 입법위원직과 입법원장 자리를 모두 내놓아야 한다. 왕 원장 입장에서 볼 때는 정치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65명의 국민당 입법위원 중 왕 원장의 직계 의원만 20여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100년 역사의 국민당은 두 개로 쪼개질 수 있다. 마 총통이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거사’를 감행한 이유는 왕 원장과의 뿌리 깊은 갈등에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05년 국민당 주석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마 총통의 ‘친중(親中) 정책’을 둘러싸고도 둘은 사사건건 부닥쳤다.

2010년 타이완과 중국이 체결한 ECFA(경제협력기본협정) 이후 왕진핑은 타이완 원주민의 이익이 위협받는 상황을 줄곧 우려해왔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ECFA 후속으로 체결된 서비스 무역 협의의 의회 비준도 견제해왔다.

두 사람 간의 앙금 탓인지 마 총통은 왕 원장을 쫓아내면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왕 원장은 입법원장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를 내쫓지 않으면 이는 그가 사법 권위를 짓밟는 것을 묵인하는 것과 같다”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왕 원장을 부패 정치인으로 몰아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속셈이었다.

그런데 정국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왕 원장의 민원 전화를 내사하는 과정에서 특정조가 입법원과 외부를 연결하는 전화회선을 도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왕 원장이 사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보다 야당 입법위원들에 대한 도청 문제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쑤전창(蘇貞昌) 민진당 주석은 “미국 워터게이트보다 엄중한 ‘국회 게이트’ 사건”이라며 “마 총통은 타이완의 헌정을 심각하게 모욕하고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했다”고 성토했다.

타이완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마 총통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설상가상으로 법원은 왕 원장이 낸 당적 보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1심과 2심에서 모두 왕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9월29일 민진당과 시민단체들은 타이베이 국부(國父)기념관 앞에서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반정부 시위를 열어 마 총통에 대한 탄핵안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 10월3일에는 마 총통이 입법원 도청 혐의와 관련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검찰은 황스밍(黃世銘) 검찰총장을 피고발인으로 불러 조사했고, 장이화(江宜樺) 행정원장(우리의 총리 격)도 증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타이완 역사상 총통·행정원장·검찰총장이 동시에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타이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사법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 감청 건수는 50만건에 달한다.

정적 쳐내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회 도청

타이완 헌법은 현직 국가원수가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임기 중 형사 기소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기소 대상이 되더라도 마 총통은 퇴임 후 사법 처리가 진행된다. 문제는 야권이 총통 탄핵과 내각 불신임을 추진하는 데다, 국민당 내부가 극심한 대립과 혼란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번 왕 원장의 당적 박탈과 입법원 도청 파문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마 총통은 재선에 성공한 후 “앞으로는 선거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타이완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펼쳐가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얼마 뒤 기름값과 전기요금을 전격 인상했고 증권거래소득세 징수를 선언했다. 게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를 허용했고 연금 제도 개혁도 추진했다.

국민당 내에서조차 별다른 논의 없이 추진된 일련의 개혁 정책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유가와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물가가 요동쳐 서민들의 생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증권거래소득세가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타이완 증시가 폭락했고, 거래량이 대폭 줄어 개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2월부터 5개월간 타이완 증시의 시가총액은 2조2000억 타이완달러(약 8조원)나 증발했다. 이 때문에 마 총통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해 5월부터 줄곧 10%대를 유지했었다.

지금의 난국은 마 총통이 모두 자초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국민당 일각에서도 마 총통이 당 주석직을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안팎에서 쏟아지는 협공을 뚫고 마 총통이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독불장군 스타일에 소통 부족 


마잉주 타이완 총통은 유력 가문 출신에 타이완 최고 명문인 젠궈(建國)고와 타이완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뉴욕 대학에서 석사 학위,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후 요직을 거쳐 43세에 법무장관이 됐다. 법무장관 재직 시 폭력 조직과 결탁한 국민당 기득권 세력과 싸우다 중도 하차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고 1998년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2002년에는 64.1%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했다. 2008년 총통에 선출돼 민진당에게 내준 정권을 되찾았다.

하지만 성공 가도만 달리다 보니 독불장군 성격으로 외부와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만 말 잘 듣는 소수의 인사하고만 어울렸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등용하기보다는 학자 출신에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을 골라 썼다. 야권은 마 총통에 대한 탄핵 세몰이에 나섰지만, 입법원 의석 113석 중 국민당이 65석을 차지하고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당도 정권을 내줄 의사가 없고 현재는 내분 봉합에 착수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국민당의 내부 여론도 심상찮다. “마 총통이 당 주석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마 총통은 집권 2기 2년 차 만에 레임덕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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