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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권력 5년 막후] #19. 정운찬·김태호·오세훈 제 무덤 파거나 포격에 무너져

실패로 끝난 MB의 ‘후계 프로젝트’…‘박근혜 대항마’ 부각되기도 전 좌초

소종섭│편집위원 ㅣ | 승인 2013.11.27(Wed) 17: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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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後繼)’라는 말은 미묘한 어감을 풍긴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람의 뒤를 이음’이다. 정치적으로는 세력이나 노선을 계승하는 일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후계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말하지 않아도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후계자’로 노출된 순간 견제 대상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그때부터는 ‘승계할 수 있느냐’ ‘왜 내가 아니고 너냐’를 둘러싼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큰 조직이건 작은 조직이건 본질은 같다. 때로는 겉으로 큰소리가 터져 나온다. 때로는 물밑에서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펼쳐진다. 하물며 그것이 대통령직을 놓고 벌이는 쟁투라면 오죽하겠는가.

‘후임이 누구냐’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꾼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후임자가 됐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때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역사적인 평가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아’와 ‘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잘 따라주고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후임자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11년 8월2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기자회견 중 무릎을 꿇은 채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MB, 무상급식 반대한 오세훈 지원 나서

이명박(MB)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그도 직접 후계자를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런 의도를 담은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노림수는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그가 꿈꿨던 후계자들은 때로는 스스로 무덤을 팠고, 때로는 안팎의 공세에 밀려 좌초하기도 했다. 결국 MB는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살길이었다.

2011년 8월12일자 조선일보, 이 신문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전면적인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은 이번 무상급식 투표 결과를 망국적 ‘포퓰리즘’의 사슬이 계속 이어지느냐, 아니면 단절하느냐를 판가름할 심판대로 여긴다. 대통령은 이번 투표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성심껏 도와야 한다는 의중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권이 한마음으로 뭉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하며 “이것은 선거법 및 주민투표법 위반”이라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무상급식 투표와 관련해 직접 말씀한 적은 없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에 임할 것이라는 점만 확인한다”며 ‘대통령의 지원’을 부인했다.

당시 MB와 오세훈 시장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대권 플랜’으로 비치자, 그해 8월12일 대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8월21일에는 서울시장직까지 걸고 배수진을 쳤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올인’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투표율이 33.3%는 되어야 투표함을 여는데 이에 미치지 못하는 25.7%에 그치는 바람에 투표함을 열지도 못했다. 오 시장은 2011년 8월 여야 모두로부터 욕을 먹으며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여권이 9년 동안 지켜온 서울시장 자리는 야권의 박원순 시장에게로 넘어갔다.

오 시장은 ‘차세대 주자’ ‘보수의 기대주’에서 하루아침에 ‘독불장군’ ‘서울시장직을 넘겨준 패장’으로 신세가 바뀌었다. 왜 오 시장이 주민투표를 고집한 것인지, 그 과정에 MB와의 교감은 없었는지 등은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정가에는 오 시장이 친이(친이명박)계와의 관계 속에서 ‘박근혜 대항마’로 승부수를 띄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언론에서도 오 시장의 대권 주자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가 계속 쏟아졌다. 한겨레는 “(주민투표에서 오 시장이 승리할 경우) 오 시장의 정치적 공간이 넓어지면서 ‘2012년 대선 불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박근혜 대항마’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복지 포퓰리즘 반대’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을 간접 지원해온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도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띄우면 여권이 돕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승리하면 순식간에 보수의 대표 주자로 부상한다는 시나리오였다. 막후에 MB와 교감이 있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박형준 청와대 특보가 기획자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였다.

MB-오세훈 교감설에 대해 박형준 특보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혀 사실무근이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과 정면 대결한다는 것은 계획을 확정한 다음에야 알았다. 청와대가 개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시 오 시장을 (박 전 대표의) 경쟁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오 시장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박형준의 기획설로 말을 만든 것이다.” 박 특보는 또 “대통령도 전면 무상급식은 오 시장과 같은 입장이었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고 예산도 감당되지 않는 퍼주기 정책이라고 봤다.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시장직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오세훈 ‘주민투표’ 카드, 혼자만의 판단일까

MB-오세훈 교감설의 사실 여부가 명확해지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좀 무리수이기는 했지만 당시 정치적인 상황으로 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MB로서는 정운찬·김태호를 내세운 실험이 실패한 뒤였다. 오 시장으로서는 일거에 유력 대권 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랬기 때문에 과연 오 시장이 주민투표 카드를 공개적으로 꺼내든 막후에 청와대와 정말 아무런 교감이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오 시장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와의 줄다리기에 지쳤고, 달리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해도 주민투표라는 카드를 혼자만의 판단으로 밀어붙였을까에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당시 주민투표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반대하는 이도 많았다. 여차하면 서울시장직이 야권에 넘어갈 수 있다며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서울시장직을 거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시 어떤 입장이었을까. 시종일관 “무상급식은 지자체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거리 두기였다. 주민투표 전날에도 “서울 시민이 알아서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서지 않으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현실적으로 33.3%라는 투표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봤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오 시장이 이겼을 경우의 대권 경쟁 구도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현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변호사로 있는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시장 중도 사퇴는) 유권자들과 서울 시민께 일단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숙하고 있어야 한다”며 당분간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다. 정가에서는 그가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자숙 모드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 이후 어떤 행보를 할지는 지방선거 결과와 정치권의 변화가 어떻게 펼쳐지느냐와 관계가 깊을 것이다. 외국에 머무르던 그는 지난 대선 직전 귀국해 “복지가 시대의 화두인데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를 잘 챙겨갈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다른 후보와 비교하면 박 후보가 앞서 있다”며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복귀할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라고 볼 수 있다.

   
2009년 11월17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MB, 정운찬에게 “미래 지도자에 대해 관심”

어쨌든 MB의 ‘오세훈 힘 실어주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역으로 박근혜에게 쏠리는 힘은 더욱 커져갔다. MB 정권의 내용상 임기가 1년 남은 2011년 후반기 모습이었다. 사실 MB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2009년 9월부터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MB는 중도 실용의 기치를 들고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구호를 내걸었을 때다. MB는 진작부터 충청 출신에 개혁 성향인 정운찬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MB는 ‘오고초려(五顧草廬)’ 끝에 정운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 권했던 것이 2006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후임으로 서울시장직에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선거운동을 지휘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MB는 인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정운찬에게 인수위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안강민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이 정운찬을 찾아와 “대통령의 뜻이니 총선에 출마해달라. 여럿이 같이 와달라”고 했다. 정운찬은 MB로부터 온 네 번의 제안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무총리직 제의’는 MB가 정운찬에게 한 다섯 번째 제안이었다. 정운찬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정운찬 전 총리는 얼마 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 성장했고 생활했다.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봉사를 하기 위해 총리직을 수락했다. 이후에 무엇을 하겠다, 무엇이 되겠다는 등의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자신은 이른바 ‘정운찬 대망론’을 품지 않았다고 말했다(시사저널 제1253호 ‘박근혜 대항마, 날개도 못 펴고 스러지다’ 참조).

정 전 총리는 그랬을지 몰라도 MB가 정운찬을 자신의 ‘후계 카드’ 중 하나로 봤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운찬의 총리직 지명을 최종적으로 앞둔 2009년 9월3일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독대했을 때 MB는 30여 분간의 대화 말미에 의미 있는 한마디를 정운찬에게 던졌다. “나는 미래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당시 정운찬은 MB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했다.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후계’를 지칭한 것일 수도 있었겠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어쨌든 정운찬은 총리에 지명되자마자 ‘세종시 수정안’을 언급하면서 ‘세종시 총리’로서의 역할에 갇혔다. 이동관 홍보수석 등 청와대 일부 참모가 정운찬 총리 내정과 관련해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 전반의 구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권 후보’ 운운한 것은 박근혜 진영을 자극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2009년 10월23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수정안을 추진하는 MB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박근혜의 승부수였다. 박 전 대표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2010년 6월29일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정운찬은 한 달여 뒤인 8월11일 총리직에서 쓸쓸히 물러났다. 덩달아 ‘대권 주자’로 그를 거론하는 말도 쑥 들어갔다. MB의 첫 번째 후계 카드는 이렇게 물거품이 됐다.

정 전 총리가 물러난 이후 MB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후임 총리로 지명했다. 거창군수와 경남도지사를 거쳤지만 당시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젊은 총리 후보’였다. 그는 최연소 군수, 최연소 광역단체장을 지낸 경력에 특유의 친화성으로 진작부터 주목받은 인물이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대한 강한 메시지이자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권을 둘러싼 정치적 파급력 또한 컸다. 친이계와의 교감 속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항마’라는 성격도 있었다.

   
2010년 8월24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세대교체 염두, 40~50대 집중 발탁

김태호는 진작부터 친이계와 교감이 있었다. 정두언 의원은 “인물이다”라고 김태호를 평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술자리도 여러 차례 가졌고 골프를 같이하기도 했다. 정두언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그룹은 김태호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MB도 김태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MB가 김태호 전 지사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반드시 ‘박근혜 대항마’로서만은 아니었다. MB에게는 집권 초부터 ‘신진 세력 형성’과 관련한 리포트가 여러 차례 올라갔다. 정두언 그룹에서도 올렸고 청와대 내 정무 파트에서도 올렸다. MB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MB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시절 신진 인물이 많이 진출한 것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도 그때 영입돼 정계에 진출했다. 홍준표·손학규·이재오·김무성·김문수·이완구 등도 YS 정권 시절 정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 영입했던 인물들이 정계에서 맹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MB도 ‘인물을 키워야 한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 주자로 김태호를 떠올린 것이다.

임태희 비서실장은 김태호 전 지사 발탁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대선 때 틀림없이 민주당에서 PK(부산·경남) 출신의 후보가 나올 텐데, 그렇게 되면 (대구·경북 출신인)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PK가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래에 (PK의) 기대를 모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줘야 PK가 갈라지는 것에 대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임 실장은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김태호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사후적이다. 김 전 지사를 발탁할 당시 MB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당시의 분위기도 세대교체 흐름이었다. MB는 청와대에 54세 동갑내기인 임태희 고용노동부장관과 백용호 국세청장을 각각 대통령실장과 정책실장으로 발탁했다. 한나라당에서는 46세인 원희룡 의원이 사무총장이 됐다. 총리까지 40대가 등장하면 그야말로 새 흐름이 바람을 탈 수 있었다. 그런 흐름이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흐름을 잘 타면 내친 김에 대권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생각을 MB나 김태호는 하지 않았을까. 8월8일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청와대가 그 배경에 대해 “농민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마디로 ‘소통과 통합의 젊은 내각’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나 경쟁의식을 느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고 일갈한 것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에 이어 ‘잦은 해외여행과 하루 93만원 고액 숙박비’ ‘담보 없는 10억 정치자금 대출’ 등 각종 의혹이 터져 나왔다. 야권은 까면 깔수록 의혹이 나온다며 ‘양파 총리’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결국 그는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21일 만에 스스로 사퇴했다. 김 전 지사는 시간이 지난 후 사퇴 배경에 대해 “제가 좀 미숙했고, 국민들에게 총리 자격에 대한 어떤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 공부가 덜 됐다. 그래서 국민과 당과 대통령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자진 사퇴했다. 제가 실제 문제가 있었다면 재판도 받고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운찬·김태호·오세훈으로 이어진 ‘MB의 후계 만들기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했다. 오세훈은 변수가 생긴 경우여서 다르지만, 정운찬·김태호는 MB가 상당한 애착을 갖고 추진한 후계 카드였다. 김태호 전 지사가 청문회 과정에서 누더기가 돼가던 2010년 8월21일 MB는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MB 정권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박근혜 천하’가 시작된 셈이다.    

 

 

Series) MB권력 막후 5년


#1.  드디어 피바람이…“당신 주변엔 빨갱이가 왜 이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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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봉하마을 향하는 칼끝 최종 타깃은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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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B 검찰, 지관 총무원장 계좌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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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상률의 배신, 노무현 등에 비수 꽂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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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상득은 친인척 관리 대상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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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군’들의 밀약, 촛불에 한 줌 재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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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검찰 수사 나서며 회장 퇴진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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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웃음 뒤에 감춰둔 ‘비수’는 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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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암호명 ‘동해 일출’ “VIP를 독도로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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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권 실세들 떡고물 챙기려 ‘4대강’ 기웃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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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권 끝날 때까지 “믿을 건 내 사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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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박근혜 대항마’, 날개도 못 펴고 스러지다
- 정운찬의 총리 취임 직전 즉흥적 ‘세종시 수정안’ 한마디로 권력 쟁투 가열


#15. 요란한 구호 속 한몫 챙기기 바빠
- 5년 내내 ‘동반 성장’ ‘녹색 성장’ ‘중도 실용’ ‘공정 사회’ 등 키워드만 난무


#16. 궐 밖에선 최고 권력자였지만…
- MB 정권 실세의 상징 ‘6인회’ 멤버, 잇따라 몰락의 길 걸어


#17. 실세들이 설친 자리엔 빚더미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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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KT·포스코는 정권의 전리품
- 민간 기업을 낙하산 집합소로 만들어…버티면 검찰권 동원해 압박


#19. 정운찬·김태호·오세훈 제 무덤 파거나 포격에 무너져
- 실패로 끝난 MB의 ‘후계 프로젝트’…‘박근혜 대항마’ 부각되기도 전 좌초


#20. 강남 ‘큰손’ 부동산업자에게 땅 비밀 거래 꼬리 잡히다
- 시사저널, ‘내곡동 사저 단독 공개’로 MB 정권 강타…특검도 의혹 해소 못해


#21. 거물들 모셔왔으나 성과 없이 내리막길
- ‘친기업주의’ 정책 펼치며 해외 유명인들 영입…권력 내부에서는 균열 조짐


#22. 잇단 북 도발에 ‘병역 면제 정권’ 조롱
-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안보 무능’ 드러나…컨트롤타워 부재 따른 혼선에 지지율 뚝


#23. ‘MB맨’ CEO들 빚더미 안기고 퇴장하다
- 지난 정권 5년간 공기업 부채 244조원 증가…4대강 사업 등에 돈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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