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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여, 당신은 사회주의자인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정치 행보, 바티칸 교황청도 관심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ㅣ 승인 2013.12.11(Wed) 14: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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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원로신부는 교황청에서도 주목의 대상이다. 한국의 정계를 뒤숭숭하게 만들었고, 보수적인 평신도 모임(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 교황청 대사관에 박 신부를 파문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해서다. 교황청 외방성교회에 소속된 ‘아시아뉴스’는 박 신부에 관한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 미사에서 한 발언으로 박 신부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사제의 정치 참여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정가에서도 최근 사제의 정치 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교황이다. 파문을 건의한 평신도 모임의 바람과 달리 연달아 정치 참여 독려 발언을 하면서 종교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든 사람이 바로 교황 프란체스코 1세다.

   
7월24일 브라질을 방문한 교황 프란체스코 1세가 신도들을 직접 보기 위해 호텔 발코니에 섰다. ⓒAP연합
정치·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교황

6월8일 프란체스코 1세는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을 접견했다. 바티칸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 국가수반과의 의례적인 접견으로 여겨졌지만, 둘 사이에 나눈 대화는 의례적이지 않았다. 교황이 “젊은이들이 새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날 프란체스코 1세는 로마에 모인 수많은 젊은이와 만난 자리에서도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하며 “예수를 버린 빌라도처럼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교황은 정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는 지저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정치 안에 그리스도 정신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교황의 사회적 발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0월에 카메룬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도 교황은 카메룬의 사회적 안정과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위스 대통령과 만나서는 바티칸에 근위병을 파견한 스위스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면서도 역시 사회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교황은 정치·사회 참여를 기획된 시나리오처럼 계산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을 먹었을까.

2013년 3월13일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올라가고 바티칸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첫 모습을 보인 프란체스코 1세. 그가 인사말을 마치고 던진 첫마디는 “추기경들이 이번에 새로운 교황을 지구 저편, 아주 먼 구석에서 찾으셨다”였다. 교황의 발언을 유머로만 생각한 대중은 웃음과 환호로 답했지만, 사실 유머로만 해석하기에는 뼈가 가득 들어 있는 말이었다.

프란체스코 1세는 첫 남미 출신 교황이다. 남미라는 소외된 세계 그리고 빈부 격차로 신음하는 자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곳에서 성직자 생활을 했다. 종교의 정치적 역할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셈이다.

바티칸의 수장이 된 뒤부터 교황은 교회의 정치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난 11월25일 발표한 교황의 권고안은 이런 움직임의 정점이었다. 교황의 첫 번째 권고안 제목은 ‘복음의 기쁨’이다. 5만자 분량으로 기록된 교황의 친필 원고를 토대로 총 5장, 288개 항으로 엮어 발간했다. 핵심 내용은 명확했다. 가톨릭 개혁의 새로운 밑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필요한 교회의 방향도 담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할애한 내용은 현재의 경제 위기와 개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다. 권고안의 내용에 대해 프랑스 인터넷 매체 ‘RUE89’의 저널리스트인 클래망 귀요는 “아직까지 교황은 마르크시스트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분명해 보인다. 교황은 사회주의자다”라고 평가했다. 중립적인 인사들이 편집을 맡고 있는 가톨릭 주간지 ‘라 비(La Vie)’ 또한 권고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교황은 과연 사회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교황의 정치 참여 발언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바티칸은 이런 와중에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박창신 신부의 발언에 한껏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바티칸의 공식 네트워크인 ‘뉴스 바티칸’과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개설돼 있는 인터넷 언론 ‘라디오 바티칸’은 ‘한 사제가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와 가톨릭 교단이 불화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 바티칸’은 서울 명동성당의 폭발물 소동과 함께 “서울대교구에서 사제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가톨릭 매체인 ‘알레테이아’의 이자벨 쿠스튀리에 기자는 서울대교구 주교단 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0월 청와대 오찬이 불발된 이후, 청와대와 가톨릭 지도부 간의 대화 창구가 막힌 듯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가톨릭 강세는 놀라운 일”

사실 유럽의 종교 언론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한국 대선에서 볼 수 있는 ‘가톨릭 강세’를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아시아 선교를 다루는 ‘아시아의 교회들’의 레지스 아노이 편집장은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11%밖에 되지 않는데도 두 대선 후보(박근혜·문재인)가 모두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 놀랍다”고 지적하며 한국 정치권에서 가톨릭이 과도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요구하는 ‘종교의 정치적 중립’이 가장 엄격한 나라는 프랑스다. 정교(政敎) 분리 원칙이 엄격하면서 동시에 복잡한 곳이다. 예를 들어 공립 기관의 교사들은 어떤 종교적 상징도 착용할 수 없고 프랑스 공화국에서는 어떤 종교도 특혜를 누릴 수 없다. 반대로 종교 또한 국가 정책과 기관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종교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프랑스가 요구했던 이유는 이들의 역사 때문인데, 과거에는 가톨릭이 프랑스 정치에 심하게 관여해온 전력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교 분리에 익숙한 프랑스인이 존경하는 종교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두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성직자들이라는 점이다. ‘정교 분리 원칙’이 강하지만 ‘앙가주망’, 즉 지식인의 사회 참여의 뿌리도 깊은 곳이 프랑스다. 종교 지도자의 정치적인 발언을 정교 분리라는 관점보다는 사회 참여의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베 피에르 신부다. 그동안 프랑스인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로 13번이나 선정된 피에르 신부는 1949년 자신이 설립한 ‘엠마우스’라는 공동체를 통해 빈민 구제 사업에 나섰고 무주택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에 온 생애를 바쳤다. 종교인이라고 부드러울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테랑부터 시라크까지, 만나는 모든 대통령에게 호통을 서슴지 않았다. 2006년 시라크가 집권한 후 주택 정책을 바꾸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파킨슨병 탓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프랑스 의회를 항의 방문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엠마뉴엘 수녀도 그랬다. 2008년 100세의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엠마뉴엘 수녀는 모든 프랑스인의 인생 상담 멘토 역할을 하며 사랑을 받았다. 빈민운동에 헌신해왔던 엠마뉴엘 수녀는 “내가 기도하는 곳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있다. 바로 오사마 빈 라덴과 부시 대통령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는 9·11 사태 이후 미국과 아랍권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가톨릭 수녀임에도 그는 늘 이런 구호를 외쳤다. “얄라(Yalla).” 함께 가자는 뜻의 아랍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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