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의 강심장도 때론 떨려요
  • 홍재현│스포츠동아 기자 ()
  • 승인 2013.12.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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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크로아티아 경기에서 두 번 실수…프로그램 변경과 부담감 탓

김연아(23·올댓스포츠)가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그는 12월6~8일(이하 한국 시각)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돔 스포르토바 빙상장에서 열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서 200점(204.49점)을 돌파하며 동계올림픽 2연패 전망을 밝혔다. 이번 대회는 오른 중족골 부상으로 2013~14시즌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 출전을 포기한 후 처음으로 올림픽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대회에서 그는 왜 자신이 ‘피겨 여왕’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12월4일 김연아가 크로아티아에 도착하자 공항 전체가 술렁였다. 전 세계를 매료시킨 피겨 여왕을 향한 현지 취재 열기는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세계 각국 취재진이 대거 몰렸고 김연아의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의 앞에는 ‘피겨의 아이콘’ ‘피겨계의 슈퍼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김연아와 대회에 동행했던 한 국내 기자는 “대회 내내 크로아티아 TV에서 김연아의 모습이 계속 나왔다. 그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김연아 “롱 프로그램 괜히 했다” 푸념

“한국에서 록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많은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12월5일(한국 시각) 첫 공식 연습을 마친 김연아에게 한 외신 기자가 물었다. 외신 기자는 김연아를 ‘록스타’라고 표현했지만 김연아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유명해지려고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다. 주목받는 것에 흔들리면 경기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인기는 별개로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김연아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팬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대스타다. 매 경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경기력에서 실망을 안긴 적이 없다. 바로 이런 ‘강심장’ 덕분이다.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는 그랑프리 시리즈나 세계피겨선수권대회, 4대륙선수권대회처럼 ISU가 주최하는 대회가 아닌 ‘B급 대회’로 분류된다. 그러나 김연아가 출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랑프리 시리즈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여서 더욱 그랬다.

김연아는 이번 시즌 프로그램에 변화를 꾀했다. 기존 쇼트 프로그램에는 강렬함을,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는 서정적 느낌을 담았다면, 이번에는 프로그램 구성을 정반대로 설정했다. 쇼트에서 실연의 아픔과 청춘을 향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녹인 <어릿광대를 불러주오(Send in Clowns)>를, 프리에서는 ‘탱고의 전설’로 불리는 음악가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헌정곡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선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경기 시간(4분30여 초)이 긴 프리에서 격렬한 동작이 많으면 끝까지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 강한 체력이 필수적이다. 김연아 스스로도 “롱 프로그램(프리) 같은 경우는 ‘괜히 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힘들다”고 푸념했다.

김연아는 크로아티아로 출국하기 전 목표를 가볍게 잡았다. “첫 대회니까 욕심을 부리기보다 (기술 요소의) 레벨을 체크하고 프로그램을 끝까지 소화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며 “그랑프리 시리즈보다 작은 대회니까 부담을 덜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최소한의 기술점수(쇼트 28점, 프리 48점)만 획득하기 위해 나서는 경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김연아는 좀처럼 하지 않는 점프 실수를 2번 저질렀다. 쇼트에서는 99%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더블 악셀(2회전 반) 점프를, 프리에서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실패했다. 프리의 경우 기본점(10.10점)이 가장 높은 첫 점프에서 실수가 나오자 프로그램 전체가 흔들렸다. 후반부 스텝 시퀀스와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에서 각각 레벨3과 레벨1을 받는 데 그쳤다. 김연아는 12월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실수를 2번이나 저질렀다”며 “점프를 뛰면서 그렇게 넘어진 적이 처음이다. 연습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긴장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림픽까지 두 달 반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기술 요소의) 성공률을 높이고 프로그램을 완전히 소화할 체력을 끌어올리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의상 관심 자제 좀” 불편한 심기 드러내

김연아의 새 프로그램만큼 화제를 모은 게 의상이다. 특히 노란색 시폰으로 제작된 쇼트 의상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 일본 매체는 ‘단무지 같다’는 혹평을 쏟아냈다. 논란이 일자 소속사 올댓스포츠는 “국내 디자이너인 안규미씨가 디자인 및 제작을 했으며, 디자인에 선수 측의 의견이 반영됐다”며 “프로그램 곡에 맞게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도록 제작했다. 올리브그린 색의 원단을 사용했으며 하늘거리는 소매와 치맛단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연아는 의상 논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의상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중요한 건 경기력”이라며 “의상에는 더 이상 관심을 안 가져주셔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김연아는 빼어난 경기력으로 의상 논란을 불식시켰다.

김연아는 이제 소치 올림픽까지 훈련에만 매진한다. 올림픽 리허설 무대를 완벽하게 치르지 못한 만큼 한 차례 더 대회 출전을 고려하고 있다. 만약 경기에 나간다면 내년 1월3일부터 5일까지 경기도 고양 어울림누리 얼음마루빙상장에서 열리는 제68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종합선수권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연아는 “만약 올림픽 전에 경기를 나간다면 남녀종합선수권대회가 될 것 같다”며 “연습도 열심히 해야지만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 시기상으로도 그 대회가 가장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선수권대회에 얽힌 좋은 기억도 있다. 김연아가 올 3월 캐나다 런던에서 열린 2013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218.31점)에서 클린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NRW트로피대회(201.61점)에 이어 제67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종합선수권대회(210.77점)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클린할 수 있었던 것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실전 감각을 익힌 덕분이었다. 컨디션을 100%까지 끌어올려 올림픽 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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