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돌격 배후에 극우 ‘파벌’ 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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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움직이는 7대 파벌… 대부분 우익 강경 노선 표방

이곳엔 근대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리 에키지의 동상이 서 있다. 나무마다 이름표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죄다 옛 일본군 부대의 기념수다. 참배를 하기 위한 신사(神社)라기보다는 전쟁 영웅들의 성전 같은 곳,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지난해 12월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기습적으로 참배하면서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이미 계산했을 터다. 예상치 못했던 것이 있다면 미국의 “실망했다”는 제법 강도 높은 논평이다. 주변국의 반발과 우려를 머릿속에 계산한 아베는 신사 참배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일본 보수층 결집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자민당 내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자민당 내 보수파 사이에서는 “참배해서 다행이다” “시원한 기분이다” “내각 지지율도 회복할 것이다” 등의 코멘트가 흘러나왔다.

ⓒ AP·EPA연합·오시마 다다모리 홈페이지
아베 총리가 신사 참배 등 우경화에 공세적으로 나설 수 있는 데는 자민당 내 역학 관계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이런 진단은 일본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제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서고 4개월이 막 지났을 무렵인 지난해 4월30일 도쿄신문은 “자민당 내부의 건전한 온건파가 전멸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정계를 은퇴한 대표적인 온건파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73)이 퇴장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고 했다. 가토 전 간사장은 ‘고치카이(기시다 파)’에 속해 있다. 고치카이는 자민당 내에서 대표적인 온건파로 군사력을 최소한으로 보유할 것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장기 침체가 계속되고, 2009년 이후 3년간 자민당이 야당 생활을 겪으면서 온건파는 설 자리를 잃고 강경파가 득세하게 됐다는 것이 도쿄신문의 분석이다.

현재 자민당의 주요 파벌은 7개로 정리된다. ‘세이와정책연구회’(마치무라 파) ‘헤세이연구회’(누카가 파) ‘고치카이’(기시다 파) ‘이코카이’(아소 파) ‘시스이카이’ ‘미래정치연구회’ ‘반쵸정책연구소’(오시마 파) 등이다. 여기에 속한 의원들은 저마다 결속력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중 소속 의원 수가 많은 세이와정책연구회와 헤세이연구회, 고치카이를 통상 자민당 내 3대 파벌로 규정한다.

과거 자민당 파벌의 색깔은 그래도 다양했다. 반면 요즘 자민당은 어느 순간부터 한 색깔만 드러내고 있다. 이이오 준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은 원래부터 보수 정당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안에서 보수끼리 보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들은 스스로가 보수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아베 총리의 높은 인기 탓에 여론의 눈치를 보고 보수 선명성 경쟁을 하며 아베를 떠받치는 중이다”라고 지적했다.

최대 파벌 ‘마치무라 파’, 아베 총리 만들며 위세

“많은 사람이 참가한 연수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앞으로 열릴 임시국회는 아베 정권과 자민당에 매우 중요하다. 더욱 실력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은 92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이와정책연구회다. 일명 ‘마치무라 파’로 불리며 아베의 든든한 우군이 되고 있다. 마치무라 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외무장관은 지난해 9월1일 소속 의원 70여 명이 모인 파벌 연수회에 달려가 아베 총리를 밀어달라고 호소했다.

마치무라 파는 후쿠다 다케오,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후쿠다 야스오, 아베 신조까지 총리를 연달아 배출한 자민당 명문 파벌이다. 민주당에 패배한 후 자민당이 야당이 된 시절에는 소속 의원이 5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한 뒤부터 확장을 거듭했고,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가 자민당 승리로 끝나자 그 프리미엄 때문에 92명까지 단번에 수를 늘렸다. 지금은 마치무라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지만, 세이와정책연구회는 과거 ‘후쿠다 파’로 불렸다. 1976년 총리에 올랐던 후쿠다 다케오가 만든 파벌을 모태로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강력한 우익이다. 특히 고이즈미 내각이 장수하는 동안 급속도로 팽창했다. 역설적인 것은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막상 파벌의 확장을 경계해 세이와정책연구회를 탈퇴했다는 점이다. 의도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 결합’으로 탄생했다. 마치무라 파는 이 중 일본 민주당을 계승하고 있다. 마치무라 파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다.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친미 성향에 개헌과 자주 방위 노선을 주장해 자주파 또는 우익 강경파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마치무라 파의 회장 대행을 맡고 있는 호소다 히로유키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1년 전인 2013년 1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게 독도”라는 망언으로 우리를 분노케 했던 인물이다. 파벌의 수장인 마치무라 전 장관은 “우리는 꾸준히 아베 총리를 지원한다”고 밝혀왔고 지금도 발 벗고 돕는 중이다.

아사노 겐이치 일본 도시샤 대학 교수는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원 투표에서는 이시바 시게루에 졌다. 이걸 국회의원 투표에서 뒤집었다. 당심은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이시바 시게루를 택했는데 국회의원들이 이 결과를 뒤집으면서 아베가 역전했다”고 말했다. 당시 아베 총리를 조직적으로 지지한 파벌이 마치무라 파였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현직 총리의 파벌이라 새 식구 확장 작업도 어렵지 않았다. 2013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37명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마치무라 파로 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자민당 내 두 번째 파벌인 누카가 파(헤세이연구회)에 비해 이미 두 배 정도 많은 의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세이와정책연구회 의원이 아니면 자민당 의원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 아베 정권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마치무라 파가 아베의 든든한 후원군이라면 현재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이 이끄는 헤세이연구회, 일명 ‘누카가 파’는 마치무라 파의 가장 큰 라이벌이자 포스트 아베를 노리고 있는 경쟁 파벌이다. 마치무라 파는 이번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으나 누카가 파는 그 반대다. 수장인 누카가 후쿠시로는 “솔직히 갑자기 이 시기에 참배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논의해야 할 대상이다”라며 우려의 뜻을 표시했다.

누카가 파는 아베와 대척점에 서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제동을 걸고 있다. 아베가 주도하는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누카가는 “소비세를 올리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관해 안정을 이루지 못하면 아베노믹스가 아니라 ‘아베노리스크’로 돌아설 수 있다”는 지론을 펴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에 보수적이고, 아베 내각이 사활을 걸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면서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아베를 견제하려는 2등 파벌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다. 누카가 파 내부에 ‘족의원’이 많아서다. 족의원은 특정 부처 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인맥을 갖추고 정책의 결정권을 쥔 국회의원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뜻이 변질돼 특정 집단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자민당 내에서 가장 주목해볼 만한 세력은 고치카이(기시다 파)다. 온건파로 분류되는데 현재 자민당 파벌 중 세 번째로 크다. 41명이 속한 고치카이는 아베가 속한 마치무라 파와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다. 헌법 개정을 비원으로 여기는 마치무라 파와 달리 고치카이는 호헌을 주장한다. 일본 정치평론가인 아사카와 히로타다는 “아베 총리도 고치카이와의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혹시나 모를 자민당 내 분쟁을 막기 위해 개헌 논의를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치카이에서 명예회장을 맡아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은 아베의 앙숙으로 유명하다. “평화주의,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 존중의 3원칙을 바꾸지 마라. (일본의 전쟁 및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 1항은 세계 유산으로 다른 나라들이 부럽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비참한 기억이 없는 젊은 정치인이 일본을 이끌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전쟁의 기억을 계승하고 일본의 평화를 살려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고치카이다. 우리의 역할은 크다.” 아베와 정반대편에 선 고가의 발언이다. 고가는 지난해 9월17일 열린 고치카이 수련회에서는 비판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아베 정권에는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 고치카이가 그런 역할을 해야 일본 정치가 안정될 수 있다”며 ‘자민당 내 야당’을 선언했다.

7대 파벌 중 누카가·기시다 파만 ‘반아베’

대표적인 친(親)아베 파벌 중 하나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끌고 있다. 2012년 9월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시 후보인 아베 총리가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소 다로의 파벌, 즉 이코카이의 지지였다. 아소 부총리는 이 한 번의 정치적 결정 이후 당내 유력자로 또 한 번 발돋움할 수 있었다. 자민당의 보수 본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아소 파는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거친 뒤 신인 의원 선점에 성공하면서 33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현재 자민당 내에서 네 번째로 큰 파벌이 됐다. 1년 만에 무려 3배의 확장력을 보여줬지만 아소는 지난해 8월 “독일 나치 정권의 개헌 수법을 배우는 게 어떠냐”는 실언 때문에 당내 평가가 폭락한 상황이다.

아소 파는 최근 13명의 의원이 속한 오시마 파(반쵸정책연구소)와 합병설이 돌고 있다. 오시마 파는 과거 ‘좌파’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보수로 색깔을 바꿔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친중국파 의원이 많아 아베 내각의 외교와는 온도 차를 보인다. “아소 파가 오시마 파와 합병해 당내 제3 세력이 될 경우 아베 내각에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31명의 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시스이카이 역시 자민당 내에서 매파 성격이 강한 집단이다. 개헌을 지지하고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며 외국인 참정권 반대를 외치는 의원들이 시스이카이에 속해 있다. 아베가 “아베 내각의 기둥이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친분이 돈독한 이시하라 노부아키 환경상이 이끄는 미래정치연구회에는 오시마 파와 같은 13명의 의원이 가입돼 있다. 현재 자민당에서 이름을 내건 주요 파벌은 이렇게 7개인데 이 중 아베를 견제하고 있는 집단은 누카가 파와 기시다 파 두 곳뿐이다. 나머지 5개 파벌은 아베를 지지하는 쪽이다.

아베 총리를 견제할 반주류 세력이 적은 상태에서 아베는 자신의 지지 파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장 잘나가는 마치무라 파에 위기감을 주는 인물은 바로 이들의 지지를 얻어 총재가 됐던 아베 총리 자신이다. 이이오 준 교수는 “당의 발언권보다 총리 관저의 발언권을 우선으로 하고 싶은 아베의 입장에서 파벌이 이렇게까지 커지면 정치하기가 복잡해진다. 아베는 고이즈미 전 총리와 비슷하게 파벌의 역학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금은 높은 내각 지지율 때문에 제 목소리를 감추고 있는 파벌들 역시 지지율이 하락한다면 당장 포스트를 노리고 아베 총리를 압박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 총리들의 잦은 취임과 퇴임에는 매번 거센 파벌의 압박이 공식처럼 뒤따랐다.


무파벌 의원도 120명에 달해 


일본 자민당 내에서는 파벌의 힘이 야당이던 시절보다 강해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무파벌’로 활동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대략 120명의 의원이 파벌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파벌 의원의 증가는 파벌의 힘이 약해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파벌이 정치자금을 모아 소속 의원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런 기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줄어들고 있다. 1994년 제정된 정당조성법으로 인해 당 집행부가 파벌보다 더 많은 자금을 국가에서 얻게 되면서 자금 배분 기능이 파벌에서 당 집행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4년에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됐다. 이전 중선거구제에서는 한 선거구에 2명 이상이 당선되었기 때문에 자민당 후보끼리의 경쟁이 많아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당보다 파벌이 중요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오로지 한 명만 당선되고 후보도 정당마다 한 명만 출마하게 되면서 그 역할 역시 중앙당이 가져가게 됐다.

그동안 내각 등 포스트는 파벌의 세력에 따라 할당됐다. 정치인 개인의 능력보다 파벌의 역학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내각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비판을 매번 받았다. 이런 파벌의 역학 관계를 타파한 때가 고이즈미 내각 시절이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파벌의 추천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내각 인사를 단행했다. 고이즈미 내각이 5년간 장수하면서 직책을 둘러싼 파벌 균형 원리는 크게 퇴조됐다. 물론 지금도 파벌은 자민당 정치의 중심이다. 그러나 예전만큼의 구심력은 없다. 그 증거로 일부 의원들은 계파를 넘어서며 활동한다.

무파벌 의원들에 주목하고 있는 정치인이 자민당 2인자로 포스트 아베를 노리는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이다. 결선 투표 끝에 아쉽게 총재 자리를 놓친 이시바 간사장은 지난해 10월 무파벌 의원들의 연구회인 ‘사와라비(고사리) 모임’을 주최했는데 100명에 육박하는 의원이 참가했다.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 파에 필적하거나 웃도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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