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대 거짓’ 허망하게 날린 철수는 막막
  • 고원│서울과기대 정치학 교수 ()
  • 승인 2014.04.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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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후유증…내상 입은 안철수, 싸우다 죽을 각오 다져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이 당원 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 형식을 빌려 4월10일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 공식 철회를 발표했다. 이로써 신당은 그동안 소용돌이쳤던 내부의 잡음과 논란을 일단은 잠재우고 지방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후보 난립과 후보 식별 불능으로 인해 초래될 불이익 탓에 공포에 떨어야 했던 새정치연합 소속 지방선거 후보들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 견지해왔던 무공천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새정치연합이 치러야 할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이번 결정에 따른 가장 큰 대가는 신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매개로 당을 통합했던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권위와 위상은 크게 실추되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간판일 수밖에 없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이미지와 리더십에 금이 감으로써 안 대표의 활용 가치가 떨어졌다. 이는 새정치연합의 지방선거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4월11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손을 모은 김두관·정세균 선거대책위원장,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문재인·정동영 선거대책위원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
새정치연합은 이번 결정으로 지방선거를 이끌 정치 구도를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민주화 이후 모든 지방선거는 사실상 중앙정치의 연장선에서 치러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정치 구도는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제 ‘거짓 대 약속’의 구도를 더는 작동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구도 설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역공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돼버렸다. 새정치연합 안팎에서는 민생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의 무상 버스 공약에서 보듯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은 새누리당이 대통령 선거 때 했던 공약을 파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를 쟁점화하는 야당의 모습은 미숙하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출발선상에서 신당 지도부가 무공천 방침을 강력한 승부수로 무모하게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차라리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협상하자고 압박하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여권 향해 ‘무공천 이행’ 협상 제의했어야

그런데 새정치연합의 일방적 무공천 방침이 선포되고 난 후 문제가 커졌다. 선포 후에는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 외에 퇴로가 없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고 해서 이를 모조리 뜯어내는 것 또한 되돌림으로써 얻는 편익에 비해 비용이 컸다. 특히나 무공천 철회로 신당이 지방선거에 이기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지지층의 외연 확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새정치연합이 4월10일 발표한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결과는 무공천 철회 의견 53.4%, 무공천 유지 의견 46.56%였다. 사실상 철군을 유도하는 편향된 질문 방식과 지역구 국회의원 및 기초선거 출마자들의 공천 찬성 독려,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만 안겨줄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 속에서도 이런 엇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무공천 방침을 밀고 나가는 것이 지방선거 득표 기반을 확대할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무공천 철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로 전통적 지지층에 집중되어 있고, 무공천 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로 유동성이 강한 비판적 지지층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할 때는 후자를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이 외연 확대를 위해서도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승부수를 띄워놓고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적 복안과 역량 그리고 의지 그 어느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거짓 대 약속’은 말 정치의 인플레였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어떤 단호한 행동도 없었다. 정당 안팎에서 안 대표가 말로만 던져놓고 싸우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그제야 겨우 싸우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당원들과 선거 후보자들을 다독이기는커녕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지도부가 꼭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의 발뺌에 급급한 모습도 있었다. 후보 난립과 기호 식별 부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시민 공천이나 자발적인 후보 단일화 움직임을 전개해주도록 호소하는 노력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 밑바닥 조직에서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은 당연했고, ‘우리만 사지로 내몰렸다’는 불만이 비등하게 솟구쳐 오르게 되었다. 심지어는 당원 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 실시를 결정하는 과정도 철군으로 해석되게 만들었고, 안 대표 등 지도부가 ‘소신에 변함없다’는 표명을 두어 번 하기는 했어도 사실상 출구전략을 위한 의례적 립서비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이한 태도를 취했다. 지금 새정치연합에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리더십의 취약이다. 신당 지도부의 무능·안일·무책임성이 당력을 소진시키고 만 것이다. 리더십이 이렇게 취약하다고 하면 당원 투표나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봉합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번 과정에서 생각이 갈라져 있는 지지층을 화학적으로 통합해내고 여권 진영과의 전선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리더십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비록 무공천 방침을 철회해 조직의 교란을 막아냈지만 리더십은 더욱 취약해졌다. 무공천 철회 결정 후 안철수 공동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선거 승리를 위해 멸사봉공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대표직을 사퇴했다면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해 빚어진 리더십의 심대한 손상을 회복할 기회를 영영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직 사퇴는 당의 지도력 공백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층과 무당파 지지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켜 지방선거 참패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과 원망이 안 대표에게 쏠림으로써 그의 정치생명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회생의 기회가 꼭 없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이번에 그의 소신이 당원과 국민들로부터 추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당내에는 아직 그를 대체할 리더십이 없는 상황이다. 안 대표는 현재 신당의 외연을 확대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일각에서는 ‘친노(親노무현)-문재인’의 복귀를 점치기도 하나, 그것은 지방선거 과정은 물론이고 선거 후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친노의 복귀는 새누리당이 즉각 노무현 프레임을 불러내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야당이 필패 구도로 간다는 것을 누차 경험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 사퇴설?…정치생명 끝날 수도

안철수 공동대표가 당의 승리를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죽어라고 싸우고 혁신적 공천 방안을 실천해 그것이 국민들의 애잔한 마음에 가서 닿을 수 있다면 지방선거가 완패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설령 패배하더라도 안철수로 인해 완패를 면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연장되고 7월 재보선에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안 대표가 싸우다 죽을 각오로 임했을 때의 경우이고 그렇게 해도 반드시 성과를 낸다는 보장도 없다. 막막한 안철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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