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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시대를 증언하다] 이승만, 우상화로 ‘왕’이 되다

동상·기념탑 건립, 화폐·기념우표 발행 등 왕정 닮은 이벤트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ㅣ | 승인 2014.04.23(Wed) 1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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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에는 귀신, 내치에는 병신.” 한 사람을 두고 평가가 이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4·19 의거로 권좌에서 내려와 하와이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마친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승만은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정치인으로, 교육자로 조선의 패망과 대한민국 건국까지 지난한 시간을 살아낸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정치학 학위를 취득하고 외교를 통해 독립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외교독립론을 주창하며 세계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임정)의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된 그는 임정 내 반대 세력으로 인해 원만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년여 만에 미국으로 돌아가 하와이를 중심으로 언론·교육·종교 활동에 전념한다. 1925년 상하이 임정은 그를 임시 대통령직에서 면직시키지만 스스로 임시정부 대통령을 자처하며 활동했다. 일본 패망 후 귀국한 이승만은 대한민국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1960년 7월23일 시민에 의해 철거된 남산의 이승만 동상.
이승만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먼저 서울을 빠져나가고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는 치욕을 겪었다.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그는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반공포로 석방 등의 문제에선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분명하게 지켜나갔다. 전쟁 중에도 독도를 지키는 평화선인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고, 일본군과 타이완군의 국내 주둔 및 지원 의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또 휴전협정 체결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2억 달러의 원조와 한국 지상군 20개 사단 증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전리품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는 이른바 ‘미국을 다루는 데는 귀신’급 실력을 발휘한다. 

이런 업적에도 대통령직에 대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집념과 주위의 아첨이 더해지면서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미지는 코미디처럼 변모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아집, 그리고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당시 경기도지사 이익흥 같은 아첨꾼에 둘러싸여 극과 극의 평가를 스스로 자초했다. 이승만과 관련된 코미디 같은 이야기는 수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그중 압권은 그의 80세 생일인 1955년에 벌어진 사건일 것이다. 당시 이승만 ‘탄신일’ 행사는 북한의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이나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의 날’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아첨꾼들은 그를 ‘국부’ 또는 ‘국보적 존재’라 치켜세우면서 동상 건립, 기념탑 건립, 화폐·기념우표 발행, 기념미술전람회 개최, 꽃전차 운행 등 왕정에 버금가는 우상화 이벤트를 벌였다. 

동상은 1955년 이승만 80회 탄신일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제80회 탄신 경축 중앙위원회’가 주관해 1956년 8월15일 제막했는데, 이날은 제3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기도 했다. 한복 차림의 이 상은 조각가 윤효중(1917~1967년)이 10여 개월에 걸쳐 만든 작품으로 연인원 7만여 명과 총 공사비 2억600만환(현재 2억원 상당)이 소요되었고, 그의 나이와 같은 높이 81척(25m)으로 건립 부지 3000여 평에 세웠다. 1956년 3월31일에는 대한소년화랑단 주관 아래 동상 높이 2m40cm, 기단 6m에 달하는 양복 차림의 동상을 파고다공원에 세웠다.

1949년 철도청이 헌납한 이승만 흉상에 이어 1954년 교통부 광장에도 흉상이 세워졌다. 1959년 9월15일에는 뚝섬에 ‘우남 송덕관’을 짓고, 여기에 이승만의 부조와 반신상 등을 모셨다. 같은 해 11월18일에는 남산의 팔각정을 ‘우남정’으로 명명하고 낙성식을 가졌다. 심지어 1955년 남한산성 서장대 앞에는 날개를 펼친 봉황새가 8m 높이의 돌기둥 위에 서 있는 이승만 송수탑(頌壽塔)을 윤호중이 만들어 세웠고, 고려 시대 마애불상 옆에는 ‘이대통령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 넣기도 했다.

   
거대 조형물은 우상화의 필수 품목 

이승만 우상화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시작해 6·25전쟁이 끝난 1954년부터 극에 달했다. 학교 교실마다 이승만 초상화가 내걸리고, 그의 생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했다. 80회 탄신일에는 숙명여고·배재고 학생이 고전무용과 매스게임을 펼치며 ‘80회 탄신’에 맞춰 ‘80’이란 숫자를 연출했으며 국군의 시가행진도 벌어졌다. 또 전국에서 ‘80회 탄신’ 경축 기념식수와 경축 경노회, 전국무술대회도 열렸다. 생일인 3월26과 27일 서울 시내 전차는 ‘80회 탄신’ 을 축하하는 ‘꽃전차’로 운행했다. 당연히 우표와 화폐에도 이승만이 등장했다. 초대, 2대, 3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와 80회, 81회 탄신 기념우표 등 총 6종의 우표가 발행되었고, 1950년 1000원권 지폐에 한복 차림으로 등장한 이후 1952년 500원권, 1953년 100원권에 이어, 1954년 신100원권, 1956년 500원권 중앙에 초상화가 들어갔다. 하지만 돈을 접으면 이승만의 얼굴이 반으로 구겨져 훼손된다는 이유로 2년 후 발권이 중지되고 1958년부터 한복 대신 양복 차림의 초상화를 오른쪽에 ‘모셨지만’ 4·19혁명 후인 1962년부터 지폐에서 그의 얼굴은 사라졌다. 

1960년 4월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하야 성명이 있자 시민들은 탑골공원으로 몰려가 그의 동상을 끌어내려 밧줄로 묶어 거리에서 끌고 다녔다. 남산공원의 어마어마한 동상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어 그해 7월23일 공식으로 철거 결정이 내려지고 8월19일에야 중장비를 동원해 동상을 해체했다. 이후 고물상을 전전하던 160cm의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남산의 동상 잔해와 125cm의 상반신만 남은 이승만 동상의 잔해는 서울 명륜동1가의 주택가에 방치돼 있다. 독립운동가에서 출발해 집권 이후 왕조에 버금가는 개인 우상화의 길을 걷다 실각한 그의 행로는 2차대전 후 독립한 신흥 국가의 수많은 지도자와 다를 바 없다. 덩그러니 남아 풀숲에 뒹구는 동상의 이미지가 묘하게 시간과 인간의 모습에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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