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달려간 길 위로 자비가 피어났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6.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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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 펴낸 진오 스님

경북 구미 대둔사 주지 진오 스님. 그가 마라톤을 한다고 해서 화제였다. 수행하는 사람이 달리기를 한다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동 삼아 산행을 하거나 체조하는 그림은 떠오르지만 땀을 줄줄 흘려가며, 인상 써가며 달리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뭔가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스님 신분으로 마라톤 대회에 등록할 리 없을 것이다. 속세를 떠나 조용한 산을 택했을 때 이유가 있었듯이 산에서 내려와 속세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달리기를 시작한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스님이 왜 가사를 벗고 저리 속살을 드러내놓고 뛰는지 모르겠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중생의 의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다만 사람들이 ‘스님이 왜 달릴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그렇게 모아진 사람들의 관심을 국내에서 소외된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오 스님이 달리기 시작한 전후 이야기를 정리해 <혼자만 깨우치면 뭣 하겠는가>를 펴냈다. 그냥 달리기가 아니었나 보다. 깨우친 무엇이 있기에, 간절히 알려야 할 무엇이 있기에 책까지 엮은 것이리라.

ⓒ 리더스북 제공
12년간 8000㎞ 달린 ‘철인 스님’

스님은 출가자로 살아오면서 다양한 삶의 현장을 접하며 수행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속세에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할 것을 결심했다. 이주노동자를 돕기 위해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달리기하는 스님으로 알려졌고 ‘철인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라는 비극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던 4월19일, 스님은  ‘아이들아 미안하다’라는 표어를 걸고 108㎞를 달렸다. 참회와 발원을 다지는 불가의 수행법인 108배를 한 뒤 108㎞를 달린 것이다. 참회해야 할 어른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그가 달린다고 엄청난 재난이 해결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참회와 반성을 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기에,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사죄해야 하기에 그날도 그는 달렸다. 

스님이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2002년. 다음 해에는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그는 달리면서 1㎞당 100원 또는 200원의 후원금을 받는다. 이 후원금은 이주민 노동자들, 이주민 여성들, 통일(탈북) 아이들의 쉼터와 먹거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는 ‘머리로 하는 자비보다 몸으로 행하는 자비가 더 어렵다’는 말을 달리기를 통해 몸소 실천하는 셈이다.

동국대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정목 스님은 그를 생각하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진오 스님은 혼자 포레스트 검프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사랑과 관심으로 동참해주기를 원한다. 왜 모금액이 1㎞에 100원이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이렇다.

“사찰을 지을 때도, 여러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모일 때 더 좋은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이 10억원을 내서 짓는 절보다 열 사람이 1억원씩 내서 짓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1000명이 100만원씩 내서 짓는 것이 낫다. 더 나아가 1만명이 적은 돈을 모아 사찰을 짓는다면 더 무량한 공덕이 쌓이는 것이다. 소액이지만 100원, 200원이 모여 누군가를 돕는 희망의 밑돌이 될 수 있다. 좋은 마음들이 모여 좋은 열매를 맺자는 의미로 나는 100원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스님은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만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달리는 일은 일종의 화두이며 수행이다. 그는 “부처님이 내가 달릴 수밖에 없는 인연을 보내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머리 한쪽을 잘라내야 했던 베트남 청년 토안과의 만남은 인연이 깊다. 토안은 퇴근 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에 부딪혀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한 토안은 가해자와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조건으로 700만원에 합의했고, 그 돈은 모두 베트남 가족에게 보내졌다. 당시 토안은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스님은 “만일 한국 사람이 교통사고 피해를 당했다면 그것도 뇌를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은 상태라면 그 정도 돈으로 형사 합의를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소외된 이웃 위해 오늘도 달린다

구미에 깃든 인연으로 스님은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많은 이주민 노동자와 이주민 여성들, 통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각종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불이익과 고통을 당하는 그들과의 인연이 모두 달려야만 하는 이유이자 화두가 된 것이다. 그는 “부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장소와 인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부처가 계시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산중에 있지 않고 산 밑으로 내려와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것도 부처님 제자로서의 실천이라 믿기 때문에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달리라고 설법하신 적이 없지만 ‘자비’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기셨고 극한의 고통을 반복하며 달리기를 하는 것이 내가 선택한 수행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라톤이 어디 쉬운 일인가. 스님 또한 마라톤을 하면서 고통을 경험하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나 스스로도 수없이 자문자답을 하게 된다. 여기서 멈춘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새벽 2시, 굽이굽이 이어진 깊은 산골을 달리다 보면 간혹 전봇대가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아슬아슬할 때가 있다. 졸음이 밀려들면서 환각 상태가 찾아오고 앞이 보이지 않아 어지럼증이 도진다. 발은 물집이 잡혀 엉망이 된다. 졸음이 밀려들면 허벅지를 꼬집고 뺨을 때리기도 하면서 달린다. 정말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나 싶어 눈물이 솟구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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