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원 돈가방 보여주며 “그 기술 넘기시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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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전문 설비업체 한국정수공업에 중국행 제안…중소기업 독창적 기술에 ‘눈독’

중국 공산당원이 최근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국정수공업을 방문했다. 이 업체는 직원이 400명 안팎인 중소기업이지만,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수(水)처리 기술력으로 지난해 1000억원의 매출을 일군 알짜 기업이다. 공산당원들은 “회사가 직면한 경영상 문제와 고민거리를 해결해주고 연구·개발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경영진의 중국행을 제안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이규철 한국정수공업 회장에게 연구·개발에만 전념할 환경 제공은 달콤한 유혹이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중국은 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을 노리고 접근해온 것”이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절실하지만, 한국의 독보적 기술을 외국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1959년 상하수도 설비업체로 출발한 한국정수공업은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수처리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 발전소에는 불순물이 없는 냉각수가 필수인데, 순수한 물을 만드는 이 업체의 특정 기술 수준은 세계 1위다. 다른 나라보다 10년 앞선 기술력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신고리·신월성·신울진 등 대다수 원자력발전소와 당진·태안·삼척 등에 있는 화력발전소가 이 회사의 설비를 사용한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 일러스트 정찬동
“힘없는 중소기업은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

중국과의 인연은 1997년 심천 시에 있는 광둥 원자력발전소에 340만 달러 규모의 수처리 설비를 공급하면서부터다. 당시 중국은 합작법인 설립 등을 제안하며 이 회사의 기술력을 빼내려고만 했다. 이후 한국정수공업은 중국과 거리를 두었다. 중국 원자력발전소들은 그동안 이 업체의 기술자를 하나 둘 영입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기술은 한두 명의 엔지니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에는 이 회사를 중국으로 옮기는 데 공산당까지 나선 것이다. 이 회사의 간부는 “기술이 독보적인데, 우리 정부는 이를 ‘독점’이라고 압박해서 우리는 연구·개발보다 경영권 분쟁 등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감지한 중국이 우리에게 달콤한 제안을 해온 것인데, 힘없는 중소기업은 중국의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전문 중소기업 중 이런 중국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내장 안테나 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중국의 러브콜을 받고 중국행을 선택하는 추세다.

중국으로서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여론의 눈길도 피하면서 실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그들의 타깃이 된다. 국내 기술 유출 10건 중 7건은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첨단 기술이 해외로 불법 유출되려다 적발된 건수는 375건에 이른다. 2003년 6건에서 2013년 49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전체 기술 유출의 7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국에 유출된 것으로 산업기밀보호센터는 분석했다. 특허청이 국내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2010~2012년) 영업비밀 피해 실태를 조사했더니, 중소기업 10곳 중 1곳은 영업비밀이 빠져나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청이 2010~2012년 중소기업 1만7000여 곳을 조사한 결과, 기술 유출 누적 피해액은 5조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심장 수술 세계적 전문가 송명근 교수 ‘중국행’

중국은 수십 년 동안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며 돈을 끌어모았다. 세계 1위 외환 보유국이 된 중국은 과거처럼 불법적으로 기술 자료를 훔치다가 발각돼 세계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 돈으로 자국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 기업과 사람을 통째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 기술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직을 떠난 송명근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송 교수는 심장 수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했고, 5년 후 인공 심장을 최초로 이식했다. 1997년 새로운 수술법(카바 수술)을 개발한 그는 당시 50년간 세계 의사들이 풀지 못한 심장병 치료의 난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수술법보다 많은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고 중환자의 사망률도 낮다는 것이 송 교수의 주장이었다.

그 후 일부 교수들은 그 수술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한심장학회와 흉부외과학회도 수술 안전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식지 않자 보건복지부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수술법 검증을 의뢰했다. 연구원은 그 수술로 이상 반응이 생기고 사망률이 높다며 복지부에 ‘수술 잠정 중단’ 의견을 전달했다. 복지부는 2012년 수술을 중지시켰다. 게다가 대한심장학회는 지난해 12월 윤리적 문제 등을 이유로 송 교수를 제명했다.

그즈음 중국이 송 교수에게 접근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중국에서 카바 수술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송 교수는 2012년 6월부터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중국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그런 송 교수에게 중국은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병원과 재단을 지어줄 테니 중국 땅에서 치료하고 연구하며 후학을 가르쳐보라는 내용이었다. 학자에게 이만한 기회도 없다고 판단한 송 교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인촨(銀川) 시에 있는 제1인민병원에 약 100만㎡ 규모의 국제카바센터를 설립하고 송 교수에게 운영을 맡겼다. 인촨 시는 인구 200만명으로 크지 않은 도시지만,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중동·유럽·러시아와 가깝다. 송 교수는 5월15일 건국대병원 송별 강연회에서 “한국 정부가 미워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카바 수술을 세계에 전파하는 허브로서 중국 인촨 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카바 수술 진료와 교육을 중국에서 집중하겠다”고 밝힌 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송 교수의 중국행은 한국 의료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국내 의료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전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한 학자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면 이를 검증하며 발전시키기보다는 깎아내리려는 학계 분위기가 문제”라며 “송 교수의 수술법이 옳은지 그른지는 접어두고라도 소신 있는 학자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원천기술보다 돈 되는 응용기술에 ‘눈독’

독창적인 기술력을 갖춘 인재를 노리는 점도 과거와 달라진 중국의 기술 유입 방식이다. 특히 퇴직한 기술자가 그 대상이다. 임직원이 회사를 그만둔 상태에서 다른 경쟁사로 옮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특히 설계도면과 같은 핵심 기술 자료를 유출하면 법적 처벌을 받지만, 머릿속에 담아가는 것은 제재 사항이 아니다. 산업기밀보호센터와 통계청 자료를 종합하면, 기술 유출의 주체로는 퇴직자가 60~70%를 차지한다. 실제로 화웨이·ZTE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퇴직 임원을 경쟁적으로 영입한다.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중국이 과거에는 기술 문건이나 도면을 빼내다가 요즘은 기업이나 인재를 통째로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기술력을 쌓고 있다”며 “특히 한국에서 관리하지 않는 퇴직자를 영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LG전자의 로봇청소기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됐다. 한국의 로봇청소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음성 인식 기능에 인공 지능까지 갖춘 로봇청소기는 컴퓨터공학과 기계공학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어서 개발에만 수백억 원이 투입된다. 중국은 2010년 이 회사 연구원 두 명에게 접근했다. 고액의 연봉과 주택, 자동차 제공은 물론 중국의 가전업체 기술연구원 자리도 제안했다. 두 연구원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이용해 로봇청소기의 기술 자료를 중국에 넘기고 회사를 그만뒀다. 기존보다 2배 많은 연봉(1억5000만원)을 받고 중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LG전자는 중국 업체가 로봇청소기를 개발해 출시할 경우 자신들이 세계 시장에서 10년 동안 적게는 75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이상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했다. 4월 초 한국에 일시 귀국한 두 연구원은 경찰에 검거됐다. 그러나 핵심 기술은 이미 중국으로 넘어갔고, 2015년 중국은 국내 제품과 제원 및 성능이 비슷한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산업 응용기술 유입에 적극적이다. 항공모함, 유인 우주선, 스텔스 전투기 등을 만드는 중국은 원천기술 면에서는 강하지만 응용기술 분야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원천기술력은 약하지만 응용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앞선 편이고 몇몇 제품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이런 한국 기술만 빼오면 따로 연구비가 들지 않아 시장 가격을 대폭 낮춤으로써 이른 시간에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시장에서 수천억 원을 낚을 수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기업이나 인재에게 제공하는 수십억 원은 그야말로 떡값에 불과한 셈이다.

이처럼 중국은 공산당까지 나서 한국 중소기업·인재·응용기술을 손아귀에 넣는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와 달리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하므로 뾰족한 대처 방안이 없다. 정부는 관련법을 개선하고,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기술 보호에 협력하는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은 연구·개발만 강조했을 뿐, 그 성과로 쌓은 기술력을 지키는 노력에 소홀한 탓이다. 김상범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기술보호팀장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중국이 탐을 낼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나 인재라면 우리가 먼저 그 기술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발전시키려는 풍토를 만들어야 소중한 기술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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