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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자의 후예, 평화 내팽개치고 총을 잡다

전쟁 가능 국가 된 일본 ‘이라크 파병’ 대두…한·중 견제 위해 아베 방북 가능성도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10(Thu) 10: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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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눈은 좌우에 설치된 프롬프터로 향했다. 거기에 비친 문장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그는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7월1일,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헌법 해석 변경을 결정했다. 2006~07년 1차 내각 때부터 오르고 싶어 했던 고지에 마침내 깃발을 꽂는 순간이었다.  

아베 총리가 비원을 이루는 순간, 일본 가가와 현의 한 현립고등학교 교사인 사토 마사이치(51)는 한 제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생님, 전 자위대에 가겠습니다.” 학교에서 열린 자위대 업무 설명회에서 제자의 눈은 반짝거렸다. 동일본 대지진에서 구호 활동에 매진하는 자위대의 모습이 담긴 화면으로 가득 찬 설명회에서 그 제자는 ‘특별한 진로’를 꿈꾸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위대에 입대했다. 헌법 해석이 변경되면서 자신의 제자가 전장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를 괴롭힌다. “학생들이 나중에 전투 지역으로 파병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적극적으로 말릴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였다.

   
아베 신조 정부가 7월1일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인정한 데 대한 반대 시위가 일본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벌어졌다. ⓒ EPA 연합
“지구 반대편까지 일본 자위대 갈 수 있어”

단지 한 교사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일본 여론이다. 아베 정부의 헌법 해석 변경을 일본인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머무르는 관저 앞에서는 연일 반대 시위가 열리고 “각의 결정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야마나카 마쓰시게 미에 현 마쓰사카 시 시장)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여론은 아베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7월2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내각 결의가 결정된 후 아베 정부의 지지율은 47.8%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이후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응답자의 82.1%는 정부가 한 달여 만에 집단적 자위권의 허용을 결정한 것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73.9%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가 확대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68.4%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아베 정부의 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답했지만 간 나오토 관방장관은 “중의원 해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7월1일의 발표로 일본은 평화헌법이 금지해온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정부의 판단만으로 타국의 전쟁에 참가할 길이 열린 셈이다. 아베 정부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새로운 3요건’을 설정했는데, 이 중 ‘자위 조치로서의 무력행사’라는 개념이 포함됐다. 일본 내에서는 이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 그리고 집단 안보라는 세 종류의 무력행사 형태가 이 조건의 모호함 때문에 모두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그동안 역대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를 지키는 집단적 자위권과 여러 나라에서 침략국을 함께 제재하는 집단 안보를 두고 “자위를 위한 범위를 초과하기 때문에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거부해왔다. 개별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는 것과 관련 있기 때문에 그나마 명확한 기준이 있다. 문제는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다. 현 시점에서 아베 정부가 ‘자기 방위 조치’라고 단순하게 규정해버리면 자위대의 활동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어질 수 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라고 하면 미국을 떠올리겠지만, 해상자위대는 지난해 인도 해군과 공동 훈련을 실시했고, 호주에는 무기를 공여했으며, 동남아 국가와는 무장 순시선의 수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럴 경우 서태평양에서 인도양에 걸쳐 대부분 지역이 밀접한 타국의 범주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헌법학자인 나가야마 시게키 교수(도카이 대학 법대)는 아베 정부가 내건 필요조건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지리적 제한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는 이번 해석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자위대가 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위대가 먼 나라, 특히 전장으로 파병되는 시나리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에서 계속 제시되고 있다. 원래 일본 국회의원이나 지식인 대다수 사이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 느슨한 분위기가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기류가 조금 변했다. 전직 외무성 직원이자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인 사토 유우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고 지적했다.

   
“미국 요청에 아베 정부는 ‘저항 제로’ 정부”

예컨대 일본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 ISIL(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과 이라크 정부군의 교전도 일본과 전혀 상관없지 않다. 수니파인 ISIL은 주변국에 골칫거리다. 이란조차 ISIL과 국경을 맞대야 하는 상황을 불편해한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다. 그래서 ISIL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과 이란이 그동안의 적대 관계를 잠깐 내려놓고 ISIL을 제거하기 위해 손잡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지역에서 사활적 이익이 걸린 미국이 무력 개입을 단행할 가능성을 ‘제로’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데, 만약 동맹국에 파병을 요청할 경우 일본의 대답은 어떻게 될까. 이런 가능성은 이번 각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부터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일본 정치권 내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는 가까운 미래에 자위대가 이라크에 파병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파병이 된다면 이라크가 1순위가 아닐까”(오카지 군사평론가)라는 지적은 현실적이다.

‘대미 종속’은 집단적 자위권을 읽는 또 다른 키워드다.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을 지낸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정부의 저항 수준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은 헌법 9조라는 방패막이가 있었다. 그것이 사라진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미국이 요청할 경우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저항 제로의 정부’라고 아베 정부를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아베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사례로 ‘페르시아 만 기뢰 제거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나이토 마사노리 도시샤 대학 교수는 “아베 정부의 이런 가정은 비현실적이다”고 지적했다. 나이토 교수는 “일본이 주목해야 할 국가는 터키”라고 말한다. 미국의 동맹국이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기도 한 터키는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모두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의 요청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는 게 나이토 교수의 주장이다.

아베가 든 사례는 과거 일본 정부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27년 전인 1987년, 미국은 페르시아 만의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에 자위대 파견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토다 마사하루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위대를 보내면 전쟁이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나.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다면 국무회의에서 서명하겠다.” 결연한 설득에 나카소네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결국 거절했다. 선배들과 달리 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각오 없이 전쟁할 권리만 찾고 있는 아베 정부의 다음 행보는 ‘입법’이다. 각의 결정만으로는 자위대가 활동할 수 없다. 때문에 근거가 되는 개별법 정비가 필요하다. 자위대법·PKO법 개정안 등 수십 개의 법안을 손질하며 대국민 설득을 병행하겠다는 게 도쿄의 총리 관저가 품고 있는 로드맵이다.


현실화돼가는 아베의 방북 


   
ⓒ 조선중앙통신 연합
집단적 자위권 문제로 동북아시아가 시끄러웠던 7월의 첫날, 일본과 북한은 중국 베이징에서 따로 만나 납치 피해자 재조사 문제의 해법을 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생존해 있는 일본인 명단을 제시했다. 이에 호응해 아베 일본 총리는 “약속한 대로 대북 제재 해제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최근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흥미롭다. 지난 5월에 열렸던 북·일 회담 무렵에 갑자기 아베 총리의 해외 순방 계획이 연기됐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연기된 이유는 개각 아니면 방북인데, 타이밍을 생각하면 방북에 대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북 유화 제스처는 좀 더 뚜렷해졌다. 도쿄 도 지요다 구에 위치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본부는 북한에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그런데 이곳을 둘러싼 움직임이 묘해졌다. 원래 도쿄 고등법원은 5월12일 일본 부동산업체인 마루나카홀딩스에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를 경매를 통해 매각하도록 결정한 1심 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며 매각을 허가했다. 그런데 6월19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 매각 절차를 중지시켰다. 5월의 북·일 회담에서 북한은 “조총련 본부 경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아베는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며 완곡하게 거절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게 뒤집힌 것이다. 일본 정가에서는 “외교적 이슈에 대비해 사법부가 유연하게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방북 루머가 흘러나오자 6월24일, 아베 총리는 “방북에 대해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런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북한을 방문한 후 납치된 일본인 5명을 데리고 돌아오면서 장기 집권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당시 관방장관으로 함께했던 아베 총리는 방북 효과를 지근거리에서 제대로 학습했다. 지금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자마자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아베 총리다. 고이즈미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면 납북자와 함께 돌아오는 자신의 모습이 반전의 카드가 될 것임을 모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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