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은 누구의 입맛대로?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7.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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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최종 후보 6명 선정…노조는 총파업 불사 방침

올 2월 흥미로운 논문 하나가 발표됐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오형일 박사는 ‘한국의 공영방송은 어떠한 공익을 실천하고 있는가’에서 2003~12년 10년간 KBS 방송지표와 방송 기본 방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이 쓴 단어는 KBS(15번)와 대한민국(10번)이었고, 이 두 단어는 ‘대한민국의 힘 KBS’ ‘한국인의 희망 KBS’ 등처럼 국가기관 슬로건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KBS 스스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국가와 KBS를 동일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라고 분석했다.

KBS와 국가가 동일시된다는 의혹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에 의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정부 외압설, 그에 따른 KBS 사장의 보도 개입설 등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공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며 파문은 일단락된 듯했다.

길환영 KBS 사장이 5월9일 세월호 사고에 대한 김시곤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과 관련해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부적격 인사 4명 최종 후보” 노조 반발

하지만 길환영 사장 낙마는 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원점으로 되돌아간 형국을 낳고 있다. 신임 사장 공모 과정에서 정치적인 독립성을 담보할 최소한의 장치로 노조 측에서 내세웠던 ‘특별다수제’와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가 KBS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의 양대 노조는 지금의 분위기로 볼 때 결국 총파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친정부 성향의 이사회 측도 강경하긴 마찬가지다. 길 전 사장 해임 이후 공백 기간에 빚어진 KBS <9시뉴스>의 문창극 총리 후보자 교회 강연 동영상 보도가 파문을 일으키면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최근 발표된 사장 최종 후보 6명 선정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30명의 사장 공모 지원자 가운데 이사회의 복수 투표(3표)에 의해 추려진 6명의 최종 후보는 조대현 전 KBS 부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 류현순 KBS 방송부문 부사장, 이동식 전 KBS 부산총국장, 이상요 KBS PD 등이다. 문제는 6명 중 4명이 KBS 양대 노조가 사장 부적격자로 지목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조대현 전 부사장, 홍성규 전 부위원장, 고대영 전 본부장, 류현순 부사장 등이다.

언론노조KBS본부(새노조)가 후보들을 자체 검증한 바에 따르면 고대영 전 본부장은 KBS 뉴스를 ‘MB(이명박) 방송’으로 전락시킨 핵심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2011년 7월 경기도 남양주의 한 골프장에서 회사 관용차를 타고 H그룹에서 수백만 원의 골프와 술 접대를 받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불공정·편파 보도 논란 탓에 2012년 1월 KBS 양대 노조는 신임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84.4%의 조합원이 불신임에 표를 던져 자리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다. 류현순 부사장은 길 전 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길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다 지역총국으로 좌천된 보도본부 간부를 본사 평기자로 발령 내 ‘보복 인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 조대현 전 부사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 예비역 대장 다큐멘터리 등 정부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성규 전 부위원장에겐 ‘관피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는 2011년 3월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통위 정무직 공무원(차관급)으로 선임돼 지난 3월까지 근무했다. 양대 노조가 차기 사장 부적격자 조건으로 내건 ‘방송 및 통신 관련 정부 규제 기관에 몸담았던 자’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사회와 노조의 대립이 격화된 것은 6월30일 이사회에서 특별다수제와 사추위 안이 표결 끝에 부결된 데서 비롯됐다. 특별다수제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하는 제도다. 여당 측 이사(7명)가 야당 측 이사(4명)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탓에 다수결에 의한 결정 때마다 여당 측 의견으로 결정되는 폐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KBS 이사회는 이날 두 제도 도입에 대한 표결을 했으나 특별다수제(반대 5, 찬성 4, 기권 1), 사추위(반대 6, 찬성 4) 모두 여당 측 이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여당 측 이사들은 특별다수제 도입은 방송법 위반이며, 사추위 구성은 이사회의 의결권을 침해한다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KBS본부 남철우 정책실장은 “기존과 같은 과반 출석 및 과반 의결 내용을 유지하되, ‘단, 이사장 선출과 사장·감사의 임명 제청에 관한 회의는 재적 이사 3분의 2의 출석으로 성립한다’는 내용을 명기하면 상위법에 위배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국장은 “지금 당장 특별다수제를 위해 법 개정을 할 수 없다면, 사추위라도 구성했어야 했다”며 “MB 정권 때 김인규 사장도 사추위를 통해 선출됐다.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면 간담회를 여는 방식으로 시민사회 목소리라도 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자마자 KBS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친일 발언’을 특종 보도했다. ⓒ KBS 캡처화면
전체 77.1%가 ‘정치적 독립성’ 최우선 조건

노조와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향후 새로 선임될 KBS 사장에 대해 ‘제2의 길환영’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여당 측 이사회는 법과 원칙대로 간다는 강경 입장이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KBS 내부에서는  홍성규 전 방통위 부위원장이 가장 유력한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길환영 전 사장이 해임된 가장 큰 이유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동반 퇴진을 주장할 정도로 보도국을 장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길 전 사장이 PD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따라서 보도국을 장악할 수 있는 기자 출신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결국 최종 면접 대상자 중 기자 출신이면서 여당 표가 많이 갔던 홍성규 전 부위원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얘기다.

KBS 양대 노조는 “우려했던 결과가 나올 경우 물러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남철우 언론노조KBS본부 정책실장은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인사의 표로 부적격 후보가 또 사장이 되면 청와대의 낙하산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전면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KBS노동조합(기존 노조)도 “KBS 구성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표결을 강행할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원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노조KBS본부가 최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77.1%에 달하는 구성원이 ‘정치적 독립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뽑았다. 하지만 현행 사장 선임 절차로는 그런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KBS 신임 사장은 7월9일 이사회의 최종 면접을 통해 뽑고, 박근혜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면 결정된다. ‘국민의 방송’ KBS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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