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불은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10.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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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애증 10년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얼음과 불은 한 그릇에 담지 못한다’는 말 그대로 성질이 정반대여서 상대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의 갈등 양상이 도를 넘으면서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떠올린다. 얼마 전까지는 이런저런 파열음이 들려도 ‘한배를 탄 사이’라는 전제하에 두 사람 관계를 경원(敬遠)쯤으로 치부했다. ‘서로 공경은 하지만 가까이는 하지 않는다’와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실제는 꺼려 멀리한다’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 중, 후자 쪽에 해당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김 대표가 공개리에 개헌 발언에 대해 사과한 사안을, 청와대가 다시 끄집어내 김 대표를 공격하면서 양측 관계는 험악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최고 권력자가 ‘부하’의 허물과 잘못을 다 용서하더라도 결코 용인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 그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생각은 그 주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절대’라는 기류가 꽉 차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더더욱 최고점에 있을 게 분명하다.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令愛)로서 보고 익힌 게 무엇일까 하는 것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박 대통령의 ‘대통령관(觀)’이 어떤 것일지는 지금까지 드러낸 사례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 강한 청와대 참모들도 유사한 인식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거기에 ‘맹목적’이 곁들여지면 분위기는 더 살벌해진다. 기자 역시 과거 역대 정권에서 여야 중진 의원들의 청와대를 향한 도전적 언행이 있을 때, 대통령과 참모들이 “싸가지 없는 X” “감히 어디 대고~” “호되게 혼쭐을 내야~” “찍소리 못하게~” 운운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런 모습이 연출된 이후엔 여지없이 검찰의 수사 돌입 등 매서운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9월20일 캐나다 국빈 방문과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공항에서 환송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주 모시듯” 김 대표 발언 회자되기도

하지만 오늘날 정치현실은 또 다르다. 위세가 뻗칠 대로 뻗쳐야 할 집권 2년 차 임기 전반임에도 ‘존엄’을 잃었다. 그나마 야당이 공격한다면 억지로 참고 넘기겠지만, 여당 내부에서조차 노골화했으니 청와대의 심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이미 ‘차기’니 ‘미래 권력’이니 하는 단어가 일상화되면서 청와대가 가장 실색하는 레임덕이 공공연해진 판국인데, 그 레임덕이라는 불에 기름 격인 ‘개헌’이 끼얹어진 것이다. 그것도 여당 대표가 개헌 펌프질을 직접 하는 모양새가 됐다. 강력한 개헌론자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도 의장 때 박 대통령의 완강한 입장을 ‘일부’ 수렴해 ‘국회 개헌특위’가 아닌 ‘국회의장 개헌자문위원회’로 한 발짝 비켜선 바 있다. 

김무성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정색’은 두 사람 간 지난 10년의 애증사(愛憎史)를 일별하면 좀 더 또렷해진다. 김 대표는 오늘의 박 대통령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무엇보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대선본부 총괄본부장으로서 선거를 총지휘했다. 그것도 ‘친박(親朴)’이 주도권을 쥔 2012년 19대 총선 공천심사위가 친박 좌장으로 불리던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망신을 주었음에도 백의종군했다. 당시 그는 공천 탈락에도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지 않음으로써 연쇄 탈당 사태도 막았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돌아온 그는 친박으로 원대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대표를 선출하는 올 7월 전당대회에서 ‘비박(非朴)’ 세력을 규합해 친박 좌장 서청원 후보와 일합을 겨뤄 승리했다. 그는 “소수 청와대 관계자가 당내 일부하고만 소통해 대통령에게 잘못된 여론이 전달됐다”며 이른바 ‘문고리 권력’에 대해 날을 세웠다.

두 사람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

그 즉시 김 대표가 과거 술자리에서 박 대통령을 “가스나(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했다는 둥, “공주님 모시듯 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는 둥 전비(前非)가 거론되면서 김 대표의 ‘정체성’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권력 핵심에서 오갔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과 세종시 이전과 관련해 일전을 벌일 당시, 친박 전열에서 이탈했던 김 대표의 행적을 거론하면서 ‘믿을 수 없는 남’임을 ‘재확인’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런 청와대의 불쾌감은 이미 여러 차례 표출된 바 있다. 김 대표에게 개각 등 정부 주요 인사 임면에 대한 사전 통보도 ‘걸렀다’.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회의 때 상석이라고 간주되는 대통령 맞은편 자리에 김 대표를 앉히지 않고 대통령 옆자리에 배치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통령에게는 모든 이가 ‘부하’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청와대는 본래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당 대표의 독자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의 김 대표는 엎드리기는커녕 청와대와 ‘수평적 관계’를 들먹이고 있다. 대통령이 그토록 당부한 개헌론 자제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당에서는 ‘조직강화특위’를 가동시켜 친박 원외위원장 40여 명을 솎아냈다. 청와대가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친박 핵심부와 김 대표의 유력 경쟁 그룹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청와대가 레임덕만큼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게 후사(後事), 즉 퇴임 후의 안전인데 김 대표에 대한 신뢰가 흐려졌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이들은 ‘한 번 꽂히면 돌에 새기듯 바뀌지 않는’ 박 대통령의 도그마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 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감정이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무조건 적대 관계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관측이다. 이미 당내에 공고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여당 대선 후보 1순위에 오른 김 대표와 계속 정면 대결을 벌이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김 대표 역시 재야와 야당, 여권의 당·정·청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보기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현직 대통령과 다투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잘 안다. 과거 김영삼(YS)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총재’가 어렵사리 여당 대통령 후보를 따내기는 했지만 본선에서는 패배했던 사례를 직시하고 있다. 김 대표의 측근들이 그간 “대통령을 잘 모시려고 해도 받아주지 않으니 힘들다”는 푸념을 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의도에 회자되는 정치 정석(定石) 가운데 “정치는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다” “정치판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란 말이 있다. 동지와 적이라는 경계를 수차례 넘나들며 순차적으로 대권을 거머쥔 YS와 DJ(김대중), DJ와 이념적으로 상극인 JP(김종필)의 DJP연합 등 3김 스토리는 한갓 지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표본이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2014년 가을 대전’은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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