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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그림자 철저히 없애버려라”

처형 1주년 됐으나 ‘피의 숙청’ 계속…‘김경희 사망설’ 등 평양 뒤숭숭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ㅣ 승인 2014.12.10(Wed) 1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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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지난해 12월13일 새벽 6시. 북한 관영 라디오 조선중앙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우리 정보 당국 북한 분석관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 전 평양에서 열린 보위부 재판 소식을 전한 긴 보도 기사의 말미에 나온 ‘장성택 처형’이란 말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나’라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최고 권력을 거머쥔 조카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던 장성택 계파의 완전한 몰락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김정은 시대를 이어 권세를 누리던 장성택도 결국 어린 조카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것이다.

장성택 계파 청산 위한 2단계 작업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평양 권력은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새로 주도권을 잡은 세력과 하루아침에 눈 밖에 나 해임·강등당하거나 아예 숙청당하는 파벌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바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장성택 물 빼기’라 할 수 있다. 김 제1비서가 장성택 계파 완전 제거를 지시함에 따라 노동당과 군부의 실세들은 사활을 건, 말 그대로의 ‘판갈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이 권력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최고 지도자 경호부대인 호위사령부 직속 포병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월2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장성택 처형 직전 이른바 ‘반당·종파’ 행위자 숙청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곳은 노동당 행정부다. 공안기관을 관장하는 이곳을 장성택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11월 하순 행정부 제1부부장 리용하와 부부장 장수길이 공개 처형됐다. 국정원이 평양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파악한 것도 바로 이 두 사람에 대한 숙청과 대대적인 체포·구금 조치 때문이라고 한다. 장성택과 김경희 부부가 전격적으로 실각한 이후 그의 측근으로 분류된 인물들이 속속 체포되거나 소환당했다. 노동당 국제비서인 김영일과 평양시 당 책임비서 문경덕, 당 경공업부장 백계룡이 대표적 인물이다. 장성택의 조카로 알려진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와 장성택의 매형으로 파악된 전영진 쿠바 대사도 평양으로 불려 들어갔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처리된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숙청의 피바람이 이어지자 부작용도 나타났다. 핵심 간부층까지 동요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에 이런저런 파장이 미쳤다. 경제의 숨통 역할을 하던 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했고, 북·중 관계의 경색에 따라 상품 유통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상황을 보고받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올 4월 대대적인 숙청 바람은 서둘러 봉합됐다.

잠잠하던 ‘장성택 잔당 제거’ 칼날에 다시 힘을 실은 건 김정은 제1비서였다. 그는 당 조직지도부에 “장성택 계파를 청산하기 위한 2단계 작업에 돌입하라”며 “장성택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없애버리라”고 지시했다. 당 조직지도부는 지난 8월 “현대판 종파 일당이 집행했던 문제를 전면 재검증하고 간부들의 충실성을 검증해 이색분자를 색출·제거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어 9월 한 달간 북한 전역에는 ‘전당 사상투쟁회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노동당과 군부, 공안기관인 보위부를 비롯한 검열기관들이 총동원돼 지방 당 간부는 물론 해외에 주재하는 공관원과 외화벌이 일꾼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과 숙청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이를 통해 비위 혐의자를 비롯해 이른바 ‘유일영도체계’ 위반자를 총살시키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에는 장성택과 연계됐다는 이유로 중앙과 지방당 간부 10여 명이 강건군관학교에서 공개 총살됐다는 첩보도 있다. 리송길 해주시당 책임비서를 비롯한 황해남도 간부들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횡령 등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같은 달 처형됐다. 또 당 재정경리부 간부 몇몇은 노래방에서 김정은 찬양 가요의 가사를 비판적인 쪽으로 바꿔 부르다 적발돼 총살당했다. 이런 칼바람은 최고 실세 부서인 조직지도부라고 비켜갈 수 없었다고 한다.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선전부 간부 20여 명이 첫 대상에 올라 9월 공개 총살됐다. 이들에겐 ‘반당 종파’ 혐의가 씌워졌고 뇌물 수수와 여자 문제, 마약 복용 등의 죄가 더해졌다. 조직지도부는 노동당 간부와 당원에 대한 장악과 통제, 고위층에 대한 인사권과 검열·처벌권을 장악한 당내 최고 권력 부서다. 장성택 숙청에 깊이 관여한 부서가 부메랑을 맞은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에 불똥이 튀었다. 5월 평양 중심가의 23층 신축 아파트가 붕괴돼  입주민 수백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게 원인이 됐다. 인민보안부가 지은 이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장성택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며 격노했다고 한다. 장성택이 보안부 등 공안기관을 총괄한 점을 지적한 대목이다. 공사를 책임진 보안부 산하 건설7총국 간부 20명은 총살되거나 오지로 추방됐다.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농구 코치 역할을 했던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7월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된 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보안부 병력인 내무군의 정치국장 강필훈도 상장에서 대좌로 3계급 강등됐다고 한다.

“이러다간 공화국이 10년도 못 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실세라고 볼 수 있는 핵심 고위 간부층 내부에서까지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2월1일 열린 ‘김정은 정권 3년 평가와 2015년 전망’ 학술회의 발표문에서 “리수용 외무상도 유엔 대북 인권 결의안을 막기 위한 해외 순방 외교에 성과가 없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김정은의 스위스 조기 유학 시절 대사로 후견 역할을 해 실세로 부상한 리수용도 예외가 아니란 뜻이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모습을 본 뒤 간부들 사이엔 ‘우리는 파리 목숨’이란 생각이 퍼졌다는 것이다. 측근 노(老)간부들도 김정은의 비위 맞추기에 몰두해 김기남 당 비서는 “오묘하고 신비로우십니다”란 말을 김정은에게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숙청의 두려움 탓에 사의를 표시한 한 조직지도부 고위 간부는 사표가 반려된 뒤 처벌당했다고 한다. 북한 핵심 간부 사이에서도 “이러다간 공화국이 10년도 못 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숙청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건 통치 3년 동안 뚜렷한 성과가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기강 잡기 차원에서 대규모 숙청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시기 권력을 지탱했던 권력층의 ‘공동운명체’ 의식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약한 카리스마와 권력 기반이 김정은 체제의 문제로 지적된다. 김정은을 우상화한 기록영화 <백두의 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에서 북한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하루 3~4시간만 잠자며 공부했다던 재학 시절 사진은 한 장도 제시하지 못했다.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를 다닌 청소년 시절 모습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사실을 자랑스럽게 공표하며 졸업 논문과 재학시절의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최고 지도자가 실은 해외 조기 유학에 병역 기피란 걸 주민들에게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 생모 고영희의 존재를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이 손자인 김정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전까지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권력 세습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부친 김정일보다 조부인 김일성의 이미지와 통치 방식을 적극 모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현성일 연구위원은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은은 만 10세였으므로 함께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다면 이를 우상화에 대대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제1비서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조기 유학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성택 숙청의 여진은 김정은을 괴롭히고 있다.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경우 남편 장성택이 처형당한 직후부터 자살설과 식물인간설 등이 번지고 있다. 사망에 따른 파장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보 당국은 “김경희 신변에 이상은 포착되지 않고 있으며, 남편 처형에 따라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일성 주석의 후처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계모인 김성애가 사망했다는 설과 관련해서도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고 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장성택 숙청 1년 동안의 변화를 추적해온 대북 정보 관계자는 “공포정치를 통해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 일단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상태에 빠져 있는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이 공포정치의 스트레스를 언제까지 견딜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장성택 처형이 권력 기반을 다지는 김정은의 묘수였는지, 아니면 반발과 불안을 초래해 파국으로 치닫는 또 다른 드라마의 시작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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