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딱지 붙이다 두들겨 맞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1.15 19: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언브로큰>에 일본 극우가 분개하는 이유

뉴욕타임스에서 60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소설이 있다. <언브로큰(Unbroken)>이다. 이 소설의 작가 로라 힐렌브래드는 옛날 신문을 넘기다 루이스 잠페리니라는 인물을 발견했다. 잠페리니는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달리기 능력을 인정받아 19세의 나이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 1500m와 5000m에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힐렌브래드가 주목한 부분은 엘리트 육상선수가 아닌 전쟁에 뛰어든 잠페리니였다. 올림픽이 끝난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잠페리니는 장교로 입대해 B-24 폭격기 승무원으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다. 교전 중 적의 포격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락했고 이후 47일간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표류해야 했다. 그 지난했던 47일간의 고난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공교롭게도 적(敵)인 일본 해군이었다. 잠페리니는 그렇게 적군의 손에 구조돼 일본 오오모리의 포로수용소로 들어갔다.

850일간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그린 영화 의 감독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 잭 오코넬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AP 연합
오오모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문과 배고픔이었다. 그는 나날이 야위어가는 비참한 포로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더욱 괴로웠던 것은 와타나베 무쓰히로(渡?睦裕)라는 존재였다. 올림픽 출전 선수라는 상징 덕에 오히려 와타나베의 타깃이 돼 집중적으로 학대를 받았고 그런 생활은 종전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의 패배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환대를 받으며 미국으로 돌아온 잠페리니는 유명인이 됐다. 방송에도 출연했고 강연을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학대의 기억들은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하지만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그 트라우마를 이겨냈고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밝힐 성화를 직접 들고 봉송 주자로 참가하면서 과거의 가해자들을 용서하고자 했다.

안젤리나 졸리, 유엔 난민 특사 등 인권 활동

2010년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힐렌브래드는 잠페리니를 7년간 인터뷰했고 그의 기억을 모두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소설 <언브로큰>이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시도한 사람은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였다. 졸리의 손에서 탄생한 영화 <언브로큰>은 북미 개봉 첫날인 지난해 12월25일, 1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1위를 차지했다. 영화 속에 일본 포로수용소의 참상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강제노동과 구타가 일상처럼 벌어진다. 그나마 위안부 만행, 식인 풍습 등을 상세히 그리는 원작에 비하면 적당히 걸러낸 편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본의 어두운 민낯에 반응한 것은 일본 극우였다. 그들의 맹공은 영화 개봉 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극우의 주장을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사실을 세계에 발신하는 모임’의 모테기 히로미치 사무총장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신빙성이 없는 영화고 부도덕하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에 동조해 졸리의 일본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이야기도 숱하게 쏟아진다. 이들은 영화 속의 잔혹함을 허구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포로가 된 미국인 중 40%가 구금 중 사망했다.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미국인이 1%였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일본의 거센 반발에 대해 졸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애초부터 그는 잠페리니에 대한 경의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제작에 착수할 무렵인 2012년 12월 졸리는 “힐렌브래드의 훌륭한 원작을 읽고 잠페리니의 영웅적인 삶에 격렬하게 감동했다. 그래서 곧바로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졸리가 <언브로큰>에 주목한 것은 그에게 부여된 ‘인권운동가’라는 타이틀과 관련 있다. 졸리의 첫 연출작 <피와 꿀의 땅에서>

(2011년) 역시 전쟁터에서 피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 중 수용소에서 성적 박해를 받은 보스니아 여성과 세르비아인 남성의 사랑을 담은 영화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특사를 맡아 전 세계를 다니며 인권 활동을 펼쳤던 졸리의 행적을 볼 때 <언브로큰>에 접근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 국익 해치는 세력은 바로 일본 극우”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한·중·일만의 문제로 여기며 관망했던 미국이지만 이번은 미·일의 문제라는 점에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본 극우가 잡은 타깃은 미국의 대표적 배우와 전쟁 영웅이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미국 내에서 일본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는 데 <언브로큰>이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7년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정책포인트 사무국장은 “전쟁 포로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하는 것은 전범 재판의 신용을 해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코헨은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전환’을 꼽는다. 그는 일본이 항복한 후 그 직전까지 포로에게 총을 쏘았던 경찰이 미국의 명령에 따라 전범을 체포하는 급격한 전환을 일본 문화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경제가 약화되면서 더 불길한 전환이 진행 중이다. 중국·한국 등 이웃 국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역사수정주의가 일본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블룸버그는 더욱 신랄한 어조로 일본 비판에 나섰다. 일본 극우가 <언브로큰>에 거세게 반발하는 것을 두고 “아베 정부 들어 한국의 위안부 문제, 중국 난징 학살 사건 등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가 팽배하고 그런 행위가 한·중·일 관계에 혼란을 초래하며 미·일 동맹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일본 극우들의 날조 주장에 대해서도 “일본군이 포로를 먹거나 인체 실험에 이용했다는 증거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남아 있다”며 증거가 있음을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미국의 문제도 짚었다. “미국의 실수는 전략적 이익을 위해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과 협조하려고 한 것”이라며 “전범들의 죄를 미국에 편리한 방식으로 은폐하면서 전후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키웠다”고 날을 세웠다.

원래 잔혹한 영화는 대중적이기 어렵다. 주인공의 심신이 줄곧 부당한 대우를 받는 영화다 보니 관객과 멀어질 수도 있는 영화였다. 그런 <언브로큰>이 확 뜬 데는 역설적이게도 일본 극우의 거센 비난이 한몫했다.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적인 역사사회학자인 우쓰미 아이코 와세다 대학 겸임교수도 여기에 동의한다. “<언브로큰>을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더럽히는 것이다. 일본의 국익을 해치는 것은 바로 이런 극우 세력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