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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최고 존엄’ 인민들 보면 안 되지

영화 <인터뷰> 북한 유입될까 평양 주석궁 전전긍긍

이영종│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ㅣ 승인 2015.01.21(Wed) 13: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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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북한의 선전·선동 책임자를 경악시킬 사진 한 장이 페이스북에 올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울먹이는 장면이었다. 이미 공개된 모습이었지만, 사진 설명이 놀라웠다. 영문으로 ‘Crying Pig’ 즉, 울고 있는 돼지란 문구가 또렷했다. 문제의 사진이 게재된 곳은 북한의 유일한 국적 항공사인 고려항공 페이스북이었다. ‘사이버 칼리프국(CyberCaliphate)’이란 이름을 내세운 해킹세력이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조롱하는 글과 사진을 실은 것이다.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한 뜻밖의 해킹에 북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 언론과 외신들이 관심을 보이며 보도가 잇따르자 아예 고려항공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해버렸다.

평양 당국으로선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이번 사태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것으로 지목당한 북한에 대해 대대적 보복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에 대한 강력 응징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강도나 수준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등 제3국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로동신문 홈페이지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 수준이 아니라 북한의 무기체계나 산업시설 가동에 타격을 줄 정도의 공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영화 <인터뷰>에서 김정은 역을 맡은 배우가 울고 있는 장면.
북한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 <인터뷰>가 북한에 유입돼 주민들 사이에 노출되는 문제다. 김정은이 평양을 방문한 미국인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소재의 영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일 수 있다. 이른바 ‘유일영도체제’ 속에서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김정은을 희화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도 그렇다. 서방 세계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가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도 문제지만, 이런 영화가 북한 내부로 흘러든다는 건 북한으로선 두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최고 존엄’으로 내세우며 김정은 우상화에 공을 들여온 게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권력의 안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영화 <인터뷰>의 파일이 북한에 곧 상륙할 것임을 예고하는 조짐도 있다. 김정은 비판 대북 전단 살포로 잘 알려진 탈북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영화 파일을 담은 USB를 전단 살포용 대형 풍선에 담아 띄우겠다는 입장이다. 박상학 대표는 “미국 인권재단(HRF) 관계자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보낼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DVD 5만장과 USB 5만개를 10?20차례에 나눠 살포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김정은 역을 맡은 한인 배우 랜달 박도 이벤트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혀 관심이 쏠릴 것임을 강조했다.

“해킹 주도한 북한 핵심 간부들 숙청될 것”

통일부는 남북 관계를 고려해 살포를 자제해달라는 입장이지만 적극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그동안 대북 전단에 대해 ‘표현의 자유’란 측면에서 막기 어렵다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영화제작사에 대한 북한의 해킹과 위협에 대응해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분위기가 고조된 점도 부담이다. 박상학 대표 등 대북 전단 관련 단체장들은 정부가 공문 등으로 공식 요청하면 살포 자제를 고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문서까지 보내면서 이를 막는 것에 대해 꺼림칙해하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은 올해 들어 단속의 고삐를 바짝 죄며 영화 <인터뷰>의 북한 상륙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월12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위부에서는 반동 영화가 밀수로 들어올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내부에서는 최고 수뇌부를 모독하는 반동 영화를 들여올 경우 엄벌에 처한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1일 북한 주민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DVD나 USB로 밀반입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손에 넣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전했다.

전단 살포용 풍선이 아니더라도 대북 유입 루트는 적지 않다. 북·중 국경을 통한 밀무역 과정에서 남한의 가요나 영화, 드라마가 북한에 스며들었다. ‘북한판 한류’ 현상이다. 엄중 처벌하겠다는 엄포에도 최신 드라마가 복제돼 장마당 등을 통해 유통된다는 얘기다. 단속이 어려운 데다 부패 고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 VTR이나 CD를 이용해 남한 드라마를 볼 때는 단속이 비교적 쉬웠다고 한다. 의심이 갈 경우 집 밖에서 갑자기 전원을 차단하는 두꺼비집을 내려버리고 들이닥쳐 기기 속에 든 테이프나 CD를 증거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초소형 USB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몰래 유통하거나 시청하는 현장을 적발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단속을 책임진 국경 세관 당국이나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도 돈을 받고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최근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위부나 보안부의 간부와 부인들이 직접 제조와 판매에 뛰어든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귀띔했다.

물론 김정은 암살 영화와 남한 드라마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 당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고려할 때 영화 <인터뷰>를 북한 내에서 유통하거나 보다가 걸릴 경우 극형을 면키 어려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에 쏠린 관심이나 북한 내 영화·드라마의 은밀한 유통 구조를 볼 때 상륙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영화 <인터뷰> 해킹의 파장은 크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해킹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하게 됐다. 극장가는 물론 온라인에서 영화 <인터뷰>의 인기는 지속되고 있다. 그대로 두었으면 시들한 인기 속에 사그라지고 말았을 영화 한 편이 해킹 사태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됐다. 유엔을 무대로 외교전까지 펼치며 방어에 나섰던 북한으로선 이런 부메랑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해킹을 주도한 북한 핵심 간부들이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자꾸 건드리면 눈덩이처럼 문제가 불어나고,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북한 당국이 빠져버린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최고 존엄’ 김정은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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