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리포트] 不惑 미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떠민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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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 40대 리포트

‘왜 40대인가.’ 201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대를 조명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이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라 불리는 40대(1966~75년 출생자)는 현재 약 820만명에 달해 대한민국에서 최다 인구층을 구성하고 있다. 또 가장 소득이 높은 연령대로 대한민국 경제의 주류이기도 하다. 구성원 수가 가장 많고 가장 영향력 있는 세대,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 축이 바로 40대다.

1955년생인 시인 송재학은 <마흔 살>이란 시에서 나이 마흔을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누군가 다가오지도 않는’ 시기로 묘사한다. 아마 과거의 마흔은 그랬을 것이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 안정된 생활 기반을 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자연스레 중년의 문턱을 넘는다. 그래서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누군가 다가오지도 않는’ 식으로 별다른 기대가 없는 나이. 그것이 바로 나이 마흔이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런데 지금의 40대는 다르다. 1970년의 한국인 평균 수명은 63세였으나 2000년에는 76세, 2010년에는 80세 가까이로 늘어났다. 1970년 전체 세대의 중간 나이 즉 ‘허리 세대’가 되는 나이가 서른 무렵이었다면 지금은 마흔에 가깝다. 이 ‘서른 살 같은 마흔’을 이전처럼 중년의 길로 접어든 한물간 세대로 치부할 순 없다.

2015년의 40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세대다. 이들이 살아온 삶이 말 그대로 변화무쌍했기 때문이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태어난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정부 주도 산업화가 시작되던 때였다. 40대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1970년대 284억 달러였던 국민소득은 7년 만인 1977년에 1067억 달러를 기록해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를 열었다. 1970년대 이후 경제 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증가로 한국인의 소비 패턴도 급변하는데, 이 변화를 이끈 주체 또한 바로 지금의 40대다. 이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도래한 ‘소비 시대’의 첫 주자로 ‘한 가구에 한 대의 자동차’라는 공식을 만든 마이카 세대이기도 했다.

특히 1989년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는 이런 소비문화의 정점을 이뤘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한국인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는데, 40대는 세계화 바람의 수혜를 누린 첫 세대다. 1990년대 청년기를 보낸 40대는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풍토를 만들었다. 해외 어학연수가 대학 생활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때도  1990년대다. 이 때문에 40대는 ‘어학연수 1세대’로 불린다.

40대가 산업화·세계화 혜택만 누리며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다. 41~49세(86~94학번)의 대학 생활은 선배들의 민주화 시위가 끝자락에 접어든 때에 시작됐다. 40대 후반을 제외한 나머지는 민주화 시위에 동참해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이뤄낸 선배들의 영웅담을 들으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뒹구는 캠퍼스가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 시사저널 포토
민주화 시위의 잔상 남아 있는 세대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1960년생인 시인 고 기형도가 1989년 발표한 시 <대학시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시인이 그려낸 대학 시절과 지금의 40대가 경험한 대학 시절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40대가 선배 세대의 경험과 감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40대층이 2030세대와 동조하면서 보여준 반(反)보수 현상의 기저가 됐다. 과거 40대 하면 보수적 성향을 지닐 나이로 치부됐으나, 지금의 40대는 달랐다. 사실 40대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2030세대와 연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40대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어느 지점에선 그 모양새가 2030세대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IMF 세대’라 불리는 1990년대 초반 학번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 후폭풍을 온몸으로 맞았다. 1970~80년대에 사회에 진출한 베이비붐 세대에겐 기회가 많았지만 제2차 베이비붐 세대에겐 그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직원을 뽑아야 할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당시 취업 재수생은 흔한 풍경이 됐다. 졸업을 유예하며 취업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지금의 20대의 모습이 40대에겐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5060세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며 20대의 아픔을 방관하듯 위로한다면, 40대는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며 넥타이 바람으로, 때로는 유모차를 끌고 거리의 시위 현장에 나온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늘 불안

이제 40대는 어렵게 자리 잡은 회사에서 차·부장급 반열에 올랐다. 자영업자로 치면 적어도 10년 이상 기반을 닦으며 제대로 된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을 나이다. 하지만 2015년의 40대는 이전의 40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퇴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에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회에서는 30대 못지않은 젊은이 취급을 받고 있다. 아직 일할 날이 창창한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늘 불안에 떨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0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창업을 시작하면서 자영업자의 수가 급증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살아남는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 정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7명은 창업 5년 안에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연구원은 2000년대 초반 620만명이던 자영업자 수가 2010년 560여 만명으로 줄었으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창업을 시작하면서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체 자영업자 중 50대 자영업자의 비중은 2009년 27.4%에서 2013년에는 30.8%로 급증했다.

하지만 창업 후 생존율은 그리 높지 않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자영업자가 창업 1년 후 83.8% 살아남고 3년 후에는 40.5%, 5년 후에는 29.6%만 생존한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40대는 가정의 위기를 직면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통계청 국가통계 포털의 이혼 통계에 따르면, 이혼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10년 남녀 모두 30대(남자 58.0%, 여자 34.7%)였으나 2013년에는 남녀 모두 40대(남자 37.7%, 여자 36.1%)로 바뀌었다. 일과 가정 모두 흔들리기 시작하는 40대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울한 세대일 수도 있다.  

시사저널은 이처럼 풍랑의 시기를 겪고 있는 2015년 40대의 민낯을 다각도로 들여다봤다. 이들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때로는 20대 대학 시절처럼 사회에 분노하기도 했다. 어느새 ‘무너진 가장’이 돼버린 것을 스스로 비관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삶을 가장 잘 즐길 줄 아는 세대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이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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