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리포트] 자신감도 능력도 있는데 ‘찬밥’ 신세가 뭐람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2.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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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자살률 40대부터 여성의 두 배…직장에선 쫓겨나기 일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명문대 졸업, 강남 10억원대 아파트 보유, 외제차를 모는 40대 가장’의 일가 살해 사건은 소유하고 있는 부의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심리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40대 가장은 우리 사회가 객관적 능력을 빗댈 때 쓰는 대표적 단어인 ‘강남 아파트’ ‘외제차’를 향유하는 계층이었지만 일가족과의 동반 자살 시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경제적 자존감이나 삶의 만족감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객관적 자산 규모와는 큰 연관이 없었던 듯하다.

그가 모든 40대 가장의 표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울하고 불안한 40대 남성 구성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실제 통계청이 지난해 하반기에 발표한 한국인 사망 원인 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한 대목’이 눈에 띈다. 바로 한국이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의 왕국이라고 부를 만한 자살대국이라는 점, 그중에서도 남성의 자살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2013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427명으로 인구 10만명당 29명이다. 남성이 1만60명, 여성은 4367명이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40대 남성, 명퇴·감원 등으로 우울증 심화

이 조사 결과를 보면 ‘40대 이후 남성’ 자살률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40대나 60대나 10만명당 자살 비율이 비슷하다. 반면 남성은 40대부터 여성의 두 배에 달하고 계속 자살률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40대에 접어들면서 남성 자살 비율이 30대보다 눈에 띄게 상승하고 같은 연령대의 여성 자살률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지는 것일까.

남성이 명예퇴직이나 감원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게 되지만 자존심과 감정 처리에 서툰 나머지 치료받을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르곤 한다. 1996년 선경인더스트리가 실시한 대규모 구조조정은 직장문화를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후 집단해고를 당한 대졸 출신 쌍용자동차 직원들의 ‘자살 도미노’는 그런 전환기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극은 불안감을 부추긴다. 과거 세대라면 50대 초반 이후에나 경험하고 번민해야 할 시기가 최근에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당겨졌다.

40대 남성의 자화상에 대해 헤드헌팅 컨설턴트인 이혜숙씨(43)는 현장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헤드헌터에게 친하게 지내자며 밥이라도 먹자고 제의하는 경우는 대부분 40대 직장인이다. 문제는 40대 남성 직장인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점이다. 가장 인기 없는 연령대다. 30대 과장급 수요는 많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40대 부장급 수요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40대는 일에 노하우도 쌓이고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회사에서도 쪼이고 불러주는 데도 거의 없어 불행한 세대다. 40대만 돼도 연봉이 높기 때문에 고용하려는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한다. 요즘은 40대와 50대를 같이 본다. 예전에는 50대면 (구직자의 연봉 등이) 무겁다고 했는데 요즘은 40대도 무겁다고 한다. 차장급부터 수요가 확 줄어든다. 내 또래의 이직 요청서가 들어오면 가장 난감하다”고 밝혔다.

이씨는 40대의 생존 요령에 대한 팁도 줬다. 그는 “50대는 이직 요청을 할 때 자기 처지를 알고 (조건을) 확 굽히고 들어오는데 30대는 뻣뻣하다. 40대는 그 중간이다. 직장을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은 우리끼리 ‘묵혀둔다’는 표현을 한다. 4~5개월 정도 ‘현실’을 경험하면 눈높이도 낮추고 마음도 정리해 다시 찾아온다. 40대 초입부터 남은 인생을 위해 재취업할 것인지, 창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대는 연봉 높아 재취업 시장에서 외면

외환위기 때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30대에 홀로서기를 시도한 김용한 엠아이전략연구소장은 경영 컨설턴트를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최근 창업이나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서울시 장년창업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는 그는 “마흔이 넘어가면 언제라도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매일매일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이라 대비하기 힘들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금 지급 개시 시점이 65세로 늦춰졌다는 현실 말고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최근 통계를 보면 70대 중반까지 중년의 외모와 건강을 유지하며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40대에 은퇴하면 나머지 30년을 일할 수 있고 50대에 은퇴하면 나머지 20년을 더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40대에 현금 유입이 끊어지면 30년을 고통받아야 하고, 50대에 일이 끊어지면 20년을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통계 속의 자살률 상승세는 우리 사회의 평균 소득이나 OECD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순위 등의 수치가 우리 사회의 큰 축의 하나인 40대 남성 또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남성의 행복감 증가와 크게 상관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2017년부터 300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서는 퇴직 이후 재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법제화했다. 정부도 40대 이상의 재취업률이 단순히 경제 성장률 구성 요소가 아닌 사망률과 투표권을 가진 시민의 행복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노력이 40대 이상의 불안감을 줄이고 자존감을 높여 자살률이 낮아질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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