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장은 꼭 스님이 맡아야 한다?
  • 김지영 인턴기자 ()
  • 승인 2015.03.0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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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선출 놓고 자격 시비 등 조계종단 내 계파 갈등

동국대학교가 제18대 총장 선출을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건은 지난해 12월11일 당시 동국대 총장이던 김희옥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후보는 2015년 총장직에 출마한 3명의 후보 중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인물이었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단 지도부와 동국대 법인이사 중 일부가 “스님 총장이 나와야 한다. 사퇴하는 게 좋겠다”고 요구했다는 게 김 후보 측의 주장이다.

김 후보는 총장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종립대학의 총장직 연임은 적합하지 않다는 종단 내외의 뜻을 받들어 재임의 뜻을 철회하고 물러나겠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종단의 선거 개입을 문제 삼아 다른 후보인 조의연 교수마저 총장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세 후보 가운데 유일한 스님 후보였던 보광 스님(본명 한태식)이 단일 총장 후보로 남게 됐다. 하지만 보광 스님마저도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5일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보광 스님의 연구 논문 30편 중 18편이 표절이라고 판정했다.

2월11일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일반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총장 선거 개입 관련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 “스님 총장 나와야” 압박

2월11일 열린 이사회에 총장 선출 안건이 상정됐다. 하지만 일부 이사들이 불참하면서 이사회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23일에 열린 이사회에서도 일부 이사만 임시이사회를 열어 이사장을 교체했다. 일면 스님이 새 이사장에 선출됐다. 정련 스님의 임기가 3월에 끝나는데도 차기 이사장을 선출하지 않았고, 총장 선출 안건도 미루는 등 이사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정련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이 자신의 이사장 재임을 반대하자, 자승 총무원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영담 스님 측이 지지하는 김희옥 후보의 연임에 힘을 실어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쟁점은 조계종 종단 지도부가 동국대 총장 선거에 개입해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외압 의혹이 사실이라면 차기 총장 후보자들 간의 단순한 대립 구도로만 볼 수 없다. 이번 동국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종단의 선거 개입설, 후보자 사퇴와 자질 논란 등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 사이의 오랜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 측과 사퇴한 후보자들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조계종 홍보부 관계자는 “대한불교조계종과 동국대는 서로 다른 법인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국대 홍보실 측에서는 “총무원 산하의 종립학교관리위원회에서 종단이 세운 학교, 즉 동국대의 스님 이사를 파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총무원장 세력이 막강해 동국대 이사회 인사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총무원 집행부의 활동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총무원이 행정부라면 중앙종회는 의회 격이다. 여기에는 2개의 종책 모임이 있는데 불교광장과 삼화도량이다. 이 중 다수파인 불교광장이 자승 총무원장을 지지하는 그룹이고, 영담 스님(동국대 이사)이 회장을 맡고 있는 삼화도량은 이를 견제하는 세력이다. 이러한 조계종단 내 계파 구조가 동국대 총장을 선출하는 이사회까지 옮겨온 모양새다. 동국대 법인 이사는 이사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그중 9명이 스님 이사, 5명이 개방 이사다. 이사회 인사 구성을 보면 9명의 스님 이사 중 6명이 보광 스님 후보자에게 우호적인 총무원장 측 사람이다. 이를 견제하는 삼화도량의 대표인 영담 스님을 중심으로 나머지 스님 이사들은 보광 스님이 총장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5명의 개방 이사는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총장 단일 후보로 남아 있는 보광 스님은 성남에 위치한 정토사의 주지승이다. 동국대에서 대외협력처장, 불교대학장, 불교대학원장을 지내면서 네 차례 동국대 총장 후보에 나섰을 정도로 총장직에 남다른 의지를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 이운영 위원장은 “동국대는 4년제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불교 교리를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불교계에서 동국대 총장은 불자나 교육자로서 자랑스럽고 권위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 동국대 교직원은 보광 스님에 대해 “종교적인 포교 운동뿐 아니라 자금을 잘 모으는 수완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자승 총무원장, 보광 스님 ⓒ 시사저널 포토
“자승 총무원장과 보광 스님 관계 끈끈”

조계종단과 동국대 주변에서는 자승 총무원장과 보광 스님의 관계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보광 스님은 2013년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이번에는 스님 총장이 나와야 한다”고 압력을 가한 게 보광 스님을 염두에 둔 것이란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를 의심하고 있는 쪽은 삼화도량이다. 영담 스님은 보광 스님의 후보 자격에 대해 “보광 스님과 총무원장에 우호적인 불교광장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하는 구인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보광 스님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광 스님과 총무원장이 끈끈히 연결되어 있지 않고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후보를 이렇게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홍보부 측은 “이사로 계신 스님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총무원장 스님이 이번 (총장 선출) 사태에 개입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보광 스님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보광 스님과는 직접 연락이 닿지 않았고, 어렵사리 통화된 주변 측근들은 인터뷰나 입장을 피력하는 일 자체를 거부했다. 다만,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보광 스님은 “교내외 일부 세력이 악의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해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광 스님은 총동문회와 총학생회의 후보 사퇴 요구에 대해서도 후보직을 사퇴할 이유와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광 스님이 주지승으로 있는 정토사 측에서는 “지금 입장을 밝힐 상황이 아니다. 괜히 말씀 한번 잘못하면 여기저기 다 나온다”며 입을 다물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지만 동국대에서는 당분간 총장직 공석 상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총장을 선출해야 하는 이사회의 차기 이사장 선출 과정조차 현재 위법성 여부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총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 일정조차 불투명하다. 영담 스님은 “불법적으로 선임한 이사장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한다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교계 내부 갈등으로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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