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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테러범 돌진할 때 경찰은 없었다”

리퍼트 대사 습격 범인 최초로 제압한 이시연씨가 본 ‘테러 현장’

김지영·조해수 기자 ㅣ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3.09(Mon) 14: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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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습격당했다. 역대 미국 대사가 해외 근무 중 테러로 숨진 일은 6번 있었다. 모두 리비아·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에서 일어났다. 분쟁 지역이 아닌 곳에서 미국 대사가 습격을 당한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사저널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리퍼트 대사가 피습될 당시 범인을 최초로 제압한 시민 이시연씨를 만났다. 이씨는 사단법인 대한민국ROTC통일정신문화원 정책실장으로 리퍼트 대사 강연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이씨는 이번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인 김기종씨(55)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살해 의도된, 계획된 범행 같았다”

3월5일 오전 7시33분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일행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도착했다. 리퍼트 대사, 통역하는 여성, 미국대사관 측 경호요원으로 보이는 남성 등 셋이었다. 리퍼트 대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강연 주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미 관계 발전 방향’이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습격당했다. 분쟁 지역이 아닌 곳에서 미국 대사가 습격당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리퍼트 대사는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이시연씨는 헤드테이블 왼쪽 뒤 테이블에 앉았다. 리퍼트 대사가 세종홀 안에 들어온 후 2~3분도 채 지나지 않아 김기종씨가 따라 들어왔다. 김씨는 개량 한복에 빵모자를 쓰고 있었고, 수염이 덥수룩한 데다 다른 사람과 달리 가슴팍에는 손으로 쓴 명찰을 달고 있었다. 미처 참석 인사를 확인하지 못한 민화협이 행사 직전에 손으로 직접 써준 것이라고 이씨는 이해했다.

리퍼트 대사를 따라온 김씨는 바로 이씨 옆자리에 앉았다. 김씨는 테이블에 있는 전복죽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앉자마자 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더니 옆에 앉은 60대로 보이는 여성에게 던졌다. 그러고선 김씨는 성큼성큼 헤드테이블로 향했다. 헤드테이블과 김씨가 앉은 테이블 사이는 불과 5m 남짓, 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리퍼트 대사에게 인사하러 가는가 보다.’ 이씨는 그렇게만 여겼다. 리퍼트 대사도 자신을 향해 오는 김씨를 보더니 인사를 하러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성큼성큼 걷던 김씨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더니 갑자기 리퍼트 대사를 향해 뛰었다. 25cm, 갈색 손잡이의 과도였다. 날카로운 김씨의 칼은 리퍼트 대사의 목을 향했다. 불과 1분 남짓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퍼트 대사가 얼굴을 감싸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리퍼트 대사의 피가 테이블에 뚝뚝 떨어졌다. 김씨는 쓰러진 리퍼트 대사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 대사가 왼쪽 팔로 칼을 막았다. 그때 한 남성이 김씨를 덮쳤다. 남성과 김씨는 함께 나동그라졌다. 김씨의 피 묻은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칼을 이씨가 주워 헤드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김씨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또다시 대사를 공격하려 했다. 이씨는 김씨의 허리를 뒤에서 안았다. 좀 전에 김씨와 함께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남성이 김씨를 앞에서 안았다. 나중에 TV를 보고서야 자신과 함께 김씨를 제압한 남자가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가 팔 좀 잡아줘!” 이씨가 소리를 질렀다. 그때 조찬장 구석에 앉은 40대로 보이는 남성 2명이 달려와 김씨의 팔을 붙잡았다. 이씨가 발을 걸어 김씨를 넘어뜨렸다. 이씨는 용의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구두를 벗기려 했다. 그러나 끈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는 탓에 구두를 벗길 수  없었다. “경찰 불러!” 이씨가 외쳤다. 김씨의 팔을 잡고 있던 남성 2명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경찰입니다.”

성인 남자 4명이 김씨를 제압했지만, 김씨의 저항은 계속됐다. 김씨는 바닥에 팔다리를 꺾인 채 있으면서도 “전쟁에 반대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를 외쳤고 “나는 예전에도 일본 대사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다”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소리 높여 외쳤다. 경찰 2명과 민화협 회원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김씨의 팔다리를 들고 강연장 밖으로 끌어냈다. “칼을 들고 휘두르면 그냥 위협이지만, 범인의 칼은 정확히 리퍼트 대사 목을 향해 있었다.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현장에 있는 경찰에겐 수갑 하나 없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도움이 없었다면 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씨의 증언이다.

   
① 오전 7시33분쯤. 김기종씨가 습격하기 직전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마크 리퍼트 대사.
② 오전 7시38분쯤. 김기종씨가 미리 준비한 과도를 휘둘러 리퍼트 대사가 쓰러졌다. 테이블 위에 리퍼트 대사가 흘린 핏자국이 선명하다.
③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를 이시연씨와 경찰이 함께 제압했다.
ⓒ 이시연 제공
경찰 “미국 대사 대인경호는 우리 업무 아니다”

이씨의 증언대로 이번 사건으로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경호 부실이 드러났다. 당시 현장에 파견된 한국 경찰은 29명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외사과 소속 박 아무개 경사를 연락관으로 파견했다. 연락관은 말 그대로 미국대사관이 요청할 경우 서울청에 연락해 업무 협조를 할 뿐 경호 임무는 없다. 관할 종로경찰서는 기동대 1개 대대(25명)와 정보과·외사과 직원 3명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행사장 입구나 행사장 주변에 배치된 게 전부다. 서울청이든 종로서든 리퍼트 대사 신변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은 없었다는 얘기다.

서울청 관계자는 “대사관 등 시설 경비는 종로서가, 한국을 찾은 주요 외빈들 경호는 서울청이 맡는다. 하지만 상시 한국에 있는 주요 대사의 경호는 대사관에서 자체 경호를 담당한다”며 “대사관 측의 요청이 없을 경우엔 따로 경호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사가 경호 대상인 ‘요인(要人) 보호 대상’이 아닌 데다 대사관 측의 경호 요청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의 경호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의 ‘과거사 발언’ 등으로 주한 미국대사관 근처에서 집회가 잇따르는 등 미국대사관 인사들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이었다. 더욱이 용의자 김기종씨는 과거에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져 통역을 하던 주한 일본대사관 여직원에게 부상을 입힌 전과 6범이다. 김씨가 전례가 있는 인물이었던 만큼 경찰 측이 이를 인지하고 보안을 강화해야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종로서는 김씨가 행사에 참석하는 것조차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김씨가 행사장에 나타났을 때도 출입을 저지하거나 칼과 같은 위험한 물건을 소지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종로서 정보과·외사과 직원이 김씨를 저지하긴 했지만 김씨가 이미 리퍼트 대사에게 상해를 입힌 후였다.

물론 경찰에만 모든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사를 주최한 민화협도 자체 경호 인력을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경찰에도 경호 요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경호 실패로 책임론이 분분하다. 특히 김씨가 참석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에 윤명성 종로서장은 물론 구은수 서울청장, 강신명 경찰청장까지 줄줄이 문책당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 경찰 내부 인사는 “강신명 청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목표로 조기 사퇴한다는 얘기가 분분한데, 이번 사건이 차기 청장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종북몰이’ 시작한 보수세력

이번 사건이 엉뚱하게 ‘종북몰이’로 불똥이 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씨가 붙잡히기 직전까지 외친 구호는 ‘키리졸브 반대’와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를 볼 때 그의 정체성은 ‘종북’보다는 반일·반미 정서가 강한 극단적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를 정체가 애매한 ‘종북 좌파 세력’으로 엮어 공안 정국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보수세력 ‘종북몰이’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씨의 범행에 대해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종북 세력’을 언급하고 있다. 3월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간담회에서 윤상현 의원과 김영우 의원 등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씨의 범행에 대해 “북한을 도와주는 테러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다”고 규정하는 등 공세를 폈다. ‘김기종과 새정치민주연합 관련 행적 모음’이라는 찌라시까지 나돌고 있다. 여기에는 김씨가 노무현 정부 때 민주평화통일회의 자문위원에 위촉된 이력을 포함해 김씨와 함께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가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름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공교육살리기시민연합, 애국단체총협의회 등 일부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서도 이번 사건으로 ‘종북 세력’을 규탄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성명서에는 “종북 단체인 ‘민화협’을 해체하라!” “종북, 반국가단체 및 활동을 일소하고 건설적인 정치 환경과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가 안전 체제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김씨가 당시 행사장에서 유인물을 건네준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해 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김씨는 과거 전력으로 볼 때 개인적 일탈일 확률이 높은데, 이 사건에 투입된 경찰 수사본부 인력이 역대 최대라고 한다. 물론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한 중요한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한 개인을 수사하는 데 이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수사가 진보적인 단체나 인물 표적 수사로 확대된다면 과잉 수사, 공안 정국이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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