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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실장, 문고리 권력 손볼까

민심 회복 고심하는 청와대…‘3인방’ 어떻게 할지 관심

김현일 대기자 ㅣ 승인 2015.03.12(Thu) 1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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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 두 번째), 유승민 원내대표(맨 왼쪽)와 만난 이병기 비서실장. 오른쪽은 조윤선 정무수석. 당·청 주역들의 화기애애한 모습도 달라진 청와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1988년 2월26일 아침,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 도착했다. 바로 전날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그의 첫 등청이다. 국내외 보도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새 대통령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카메라 포커스는 대통령 손에 들린 작은 서류가방으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신임 대통령의 소탈하고 편안한 모습은 당시 노태우 정부가 내건 ‘보통 사람의 시대’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의 후계’ ‘신군부의 철권 정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꽤나 해소시켰다. ‘서류가방’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일개 비서관 때 ‘BK 호칭’ 얻은 언론 친화력

이날 아침 장면을 기획·연출한 인물이 이병기 당시 의전비서관, 지금 박근혜정부의 세 번째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아래서 7년여 ‘2인자 노태우’를 보좌하며 후계자 쟁탈전,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의 1987년 대선전을 치른 이병기는 민의가 최우선임을 절감했고, 민심을 얻는 전제로서 언론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있었다. 6·29 선언 즈음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간언한 것이나, 노태우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황태자 박철언’ 발호에 대한 직언 등 주요 고비에서 그의 역할은 그런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 노신영 국무총리 등과 ‘포스트 전두환’ 경쟁을 벌이던 시절의 전말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이 많은데, 막후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게 이병기 현 실장이다. 그는 군부 입김과 여론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노 대표를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이끌어가는 데 기여했다.

   
3월1일 중동 4개국 순방차 출국하기에 앞서 이병기 비서실장(오른쪽 두 번째)의 환송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이 밝다. ⓒ 연합뉴스
이로 인해 장세동 부장의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받고 곤욕을 치러야 했는데, 중앙일보 편집국장·정치부장·기자 등이 줄줄이 남산 지하실에 끌려간 이른바 ‘1985년 8월 중앙일보 철야농성 사태’도 후계자 쟁탈전 와중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이 험악한 상황 속에서 중심과 의리를 지킨 이병기 실장은 주변과 언론으로부터도 신뢰를 확인받을 수 있었다. 언론에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종필 전 총리를 호칭할 때 YS나 DJ, JP라는 영문 이니셜을 사용한다. 이를 본떠 김덕룡 전 의원이 한때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될 때 자신을 DR로 부르기를 주문하는 등 몇몇 거물급 정치인이 자발적으로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자 일각에서는 “가당치 않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영문 이니셜은 ‘3김급’ 정치 거물의 징표처럼 인식됐는데, 그럼에도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일개 ‘이병기 비서관’을 BK로 호칭하곤 했다. 이는 정치 거물과는 무관한, 친밀감을 드러낸 것으로서 그의 언론 친화력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미지 메이킹’ ‘상징 조작(Symbol mani -pulation)’에 관한 한 이 실장은 도사급이란 평가를 받는다. 기회포착과 순발력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런 특장은 한·소 국교 정상화 성사 등 북방 외교 추진 때도 발휘됐다. 구소련(지금의 러시아)과 외교 관계가 없던 1990년 6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말이 좋아 정상회담이지, 실제론 ‘짝사랑’하는 한국 측이 ‘어정쩡한 만남’을 그렇게 치장해서 불렀을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차단하는 바람에 1개 층 계단을 걸어 올라가 고르바초프를 만나야 하는 등 의전·형식·진행 모든 면에서 정상회담이라는 명칭이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당시 고르바초프의 미국 방문을 양국 정상화 실마리로 삼기 위해 한국 측은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가까스로 ‘면담’이 성사됐다. 접근을 통제하는 미국과 소련 경호관들을 헤집고 간신히 고르바초프를 마주한 노 대통령은 최소 ‘한 장의 사진’은 있어야 한다며 한국 카메라맨을 불러 양국 정상의 만남을 세계에 알렸다. 이것이 이듬해 성사된 한·소 수교의 단초였다. 소련 대통령의 방미 계획을 포착해 한국 대통령의 같은 기간 미국 방문, 그리고 고르바초프와의 회동 성사 및 ‘한 장의 사진 확보’ 작전에 ‘이병기 비서관’이 있었다.

   
2월28일 첫 출근을 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회의 사진 공개가 뉴스가 될 만큼 전임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의 청와대는 폐쇄적으로 운용됐다. ⓒ 청와대 제공
‘그림자 실세형’ 김정렴 전 비서실장과 비견

이 비서관을 신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그를 의전수석으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그는 극구 사양하며 ‘비서관’을 고수했다. 외무고시 출신인 그의 외무부 10년 선배들이 아직 국장급인데, 자신이 차관급인 수석비서관이 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정구영 민정수석(후일 검찰총장) 등이 강력히 주장해 청와대 입성 2년이 지나서야 의전수석을 받아들였다.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청와대에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이 입성하자, 과거 그의 처세술과 일화 등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기대의 목소리도 들린다. 단순히 당·정·청 권력의 한 축이어서가 아니다. 고집 센 ‘최고 권력’을 움직여야 하는 지난한 숙제를 안고 있어서다. 지금 국민이 기대하고 수긍할 만한 청와대 변화의 뚜렷한 징표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세 비서관(이재만·정호성·안봉근)의 ‘청산’인데, 실상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비선 개입 논란 등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들 3인방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는 오히려 더 강하게 입증되었다. 일부 업무를 조정하고 재배치하는 것으로 봉합하려는 모습이다.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왕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3인방’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형편이다.

민심의 소재·향방을 읽고 변화를 추구하려는 이병기 실장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여부는 박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내부 개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용인 내지 지원이 핵심 변수이고,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대통령의 세계관이다. 12세 때 청와대에 들어와 10대와 20대를 온전히 청와대에서 보낸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 운용을 보고 체득했다. 청와대는 그의 앞마당이었고, 아버지의 손발인 청와대비서실장은 당·정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권력의 중추로서 기능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비서실 조직과 구성원들이 ‘영애 박근혜’의 교습 자료였던 셈이다.

18년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PP)의 비서실장은 단 3명에 불과했다. 이후락·김정렴·김계원이 그들이다. 이병기 실장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그는 즉각 김정렴 전 실장에, 그리고 물러난 김기춘 전 실장은 이후락 전 실장에 비유됐는데, 그 엄밀성을 떠나 그런 관점과 관측은 매우 흥미롭다.

이후락은 1963년 PP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비서실장이 돼 6년 동안 취약한 정권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도 중앙정보부에 잡아들여 두들겨 패는 등 1969년의 3선 개헌 파동은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를 선두에서 밀어붙인 이후락 실장의 견마지로(犬馬之勞)는 소녀 시절의 박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정렴 실장은 이후락 실장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이후락 실장이 ‘설치는’ 실세형이라면, 김정렴 실장은 ‘그림자’ 실세형으로 그려진다. 재무·상공부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인 김정렴 실장은 1978년 12월까지 9년간 재임하면서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통답게 정치에는 초연하면서 경제 부문에 집중해 한국 산업화를 일군 일등공신으로 인정받는다. 때문에 다혈질의 박종규 경호실장이나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뛴 후임 차지철 경호실장과도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10·26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김정렴 실장만 있었어도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는 탄식이 일제히 나온 것도 그의 됨됨이를 짐작하게 한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PP의 ‘안가 외도’ 등으로 속이 상할 때면 김정렴 실장을 불러 푸념하곤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민심 수습’ 당부하며 전폭 지원 다짐

신임 이병기 실장이 일단 그림자 실세였던 ‘김정렴형(型) 비서’로 비치는 것은 그런대로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실장이 처한 정치 현실은 박정희 정권 당시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지적 또한 상존한다. 김정렴 실장은 ‘절대 권력자’ 아래서 대통령 임기에 대한 부담이 없는 가운데 참모장직을 수행했지만, 이 실장의 경우는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입김이 정치권 전체는 고사하고 여당에마저 제대로 미치지 않는 현실 탓이다. ‘비박(非朴)’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김무성-유승민 체제는 당·청 수평 관계를 강조하며 청와대와 예각을 세우고 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다지만, 내년 20대 총선을 감안하면 권력의 추를 뒤집을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최악의 궁지에 몰리자 ‘천막당사’라는 초강수로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대표 특보였던 이병기 실장의 황당하기까지 한 건의를 수용한 박근혜 대표는 이후 선거에서 승승장구,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이후 ‘불통’ 강도는 높아졌다. 다만 집권 3년 차를 맞아, 비록 ‘3인방’을 청와대에 계속 존치시키는 한계는 드러냈지만, 김기춘 실장 경질, 개각 등등의 조치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병기 국정원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이면서 민심 회복 노력을 누누이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이를 위한 전폭적 지원을 다짐했다고 한다. 마침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 임명 직후 중동 해외순방에 나서자, 전체 수석회의를 주재한 이 실장은 회의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별것 아니지만 지금의 청와대에서는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실장은 회의에서 각 수석실별 정례 오찬 회동 계획을 밝히는 등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비서관 직보 활성화 방안도 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건의해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남게 되는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있다.  기자는 이 문제를 이 실장에게 물었다. “‘3인방’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잠시 머뭇하던 이 실장은 “지켜봐달라”고 했다. 애매하지만, 그래도 진정 어린 고민이 잔뜩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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