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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욕쿠스!‘씨X’내 말 좀 들어 봐

양지로 나온 ‘욕’…영화와 방송에서 큰 인기

김지영(女) 기자 ㅣ abc@sisapress.com | 승인 2015.03.26(Thu) 1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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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똥 같은 존재/(중략)/벌써 한 500대 정도 맞은 얼굴/(중략) 몸뚱이 코끼리/너 같은 건 평생 구경도 못해 모텔.” Mnet에서 방영하는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래퍼 타이미가 상대 래퍼 졸리브이를 디스(diss·랩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했다. 이에 상대 래퍼 졸리브이가 답한다. “타이미 (중략) 가슴이나 흔들면서 오빠 나 해도 돼?” 19금 래퍼로 활동한 타이미의 아픈 과거를 대놓고 건드린 랩이었다.

두 래퍼의 디스전은 타이미 패배로 끝났다. 타이미가 탈락하던 3월13일 프로그램 시청률은 수직 상승했다. 분 단위 최고 1.7%를 기록했다. 첫 회 시청률 0.5%에서 3배 이상 뛴것이다. 원래 6회였던 방송도 8회로 연장됐다. 특히 타이미 욕설 랩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10만여 명이 시청했다. 타이미는 비록 방송에서는 탈락했지만 일약 스타가 됐다.

“태초에 욕이 있었다.” 신도 욕을 했다. 성경 첫 장 창세기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로 신에게 욕을 얻어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다. 구약 예언서는 아예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전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 모두에 대해 욕을 하는 내용이다. 신도 욕을 할 만큼, 세상사는 욕 그 자체다.

   
차진 욕 하나로 충무로를 사로잡은 배우 김수미. ⓒ NEW 제공
욕이 뜨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욕은 지금까지 사회적 금기였다. 어린 시절 우리가 교육을 통해 배운 ‘바른생활’에 욕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젠 그 금기가 깨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최근 대중문화를 읽는 핵심 코드는 바로 욕이다. ‘언프리티 랩스타’처럼 대중문화 곳곳에서 욕을 주요 모티브로 한 작품이나 욕을 잘하는 인물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3월 초 개봉한 <헬머니>가 그 예다. <헬머니>는 대한민국 최고 ‘욕의 고수’를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소재로 삼은 코미디 영화다. 욕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인 만큼 ‘대한민국 대표 욕쟁이 할머니’ 김수미의 매력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신한솔 감독은 “영화에서 김수미씨가 판소리처럼 몇 분 동안 쉬지 길게 않고 욕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묘한 감동을 일으킨다”며 “흔히 욕은 사람에게 상처 주기 위해 내뱉는데 김수미씨처럼 스토리가 담긴 서사적인 욕을 통해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욕을 했다가 ‘떼돈’을 번 곳도 있다. ‘통영 쌍욕라떼’ 사장님으로 유명한 안지영씨(35)의 카페 ‘울라봉’이 대표적이다. 손님이 ‘쌍욕라떼’를 주문하면 안씨는 해당 손님에게 맞는 ‘맞춤형’ 욕을 라떼 위에 장식해준다. 코 성형을 한 여성에게 ‘코에 손댄 X’, 사람이 둘인데 라떼 하나만 주문한 손님에게 ‘사람이 둘인데? 씨X, 알뜰한 년’, 목소리만 좋은 남성에게 ‘목소리는 멋진데 얼굴은 후진 놈’ 등.

그러다 보니 카페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많다. 카페에 온 20대 커플에게 재미 삼아 ‘딴 놈하고 다시 와’라고 적었는데 크리스마스 직전에 진짜 다른 남자하고 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손님을 왕으로 대해도 살아남기 힘든 ‘자영업 혈전’시대에 손님에게 간 크게 욕하는 안지영씨, 손님과 싸운 적은 없을까. 안씨는 단 한 번도 손님과 싸운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비결에 대해 자신만의 욕 규칙을 말한다. 첫째, 미성년자에게는 욕을 적지 않는다. 둘째,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욕을 하지 않는다. 셋째, 특정 정치 세력을 비하하지 않는다.

 그는 “손님마다 개성이 다른데 그에 맞는 욕을 하기 위해선 손님들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며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손님과 친해지기 위한 친밀함의 수단으로 욕을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담긴 안지영씨의 쌍욕라떼는 현재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 상품이 됐다. 하루 평균  200~300명의 손님이 방문한다. 1시간씩 기다리는 건 예삿일이다.

2013년에는 욕을 모티브로 한 미술전시회가 홍대에서 열렸다. 일명 ‘상년展’. 순수 우리말 욕을 주제로 한 이 전시회에는 젊은 팝아티스트와 문인 마광수 등 총 100여 명이 참가했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팝아티스트이자 가수 기린씨(30)의 <조카크레파스18색이야>다. 이 작품은 언어 유희를 교묘히 이용해 우리말 욕의 해학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 그림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많이 회자되며 작가 기린씨는 일명 ‘떴다’. 전시기획자인 상수동 그문화갤러리 디렉터 김남균씨(42)는 “당시 전시회에 줄을 설 정도로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며 “이 인기를 발판으로 올해 2회 ‘상년전’을 세종문화회관 같은 큰 갤러리에서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화뿐 아니라 공연, 강의 등 ‘욕 종합전’을 연다는 계획이다.

   
통영의 명물이 된 안지영씨의 ‘쌍욕라떼’. 안씨는 손님 개개인에 특화된 맞춤형 욕을 선사한다. 안씨의 욕은 ‘배설’이 아니라 손님에 대한 애정 표현이다.
“이 맛에 욕한다”…사회심리학적 분석

최근에는 ‘전국욕쟁이협회’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생겼다. 회원들이 상대를 지정해 욕을 실시간으로 하게 만든 앱이다. 흡사 라디오 중계방송처럼 육성으로 직접 욕을 한다. 이 앱은 2013년 1월에 생겨 현재 206명이 활발하게 욕을 배설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중은 욕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먼저 카타르시스 효과, 즉 배설 효과라는 분석이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회라 불만을 표현할 기회가 적은데 누가 내 대신 욕하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재미와 쾌감을 느낀다”며 “이런 배설 효과는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특히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성 래퍼가 주인공이고, 주 시청자도 젊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J E&M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10~20대 젊은 여성 시청률은 평균 시청률의 2배를 넘는다. ‘상년전’을 기획한 김남균 디렉터는 “당시 여성 참가자가 남성 참가자보다 눈에 띄게 많았고 이벤트로 했던 욕 배틀에서 우승자는 17세 여고생이었다”고 말했다. 노명우 교수의 분석대로, 여성에게 더 엄격한 한국 사회가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기회를 적게 만들었고 이것이 욕 전시회나 ‘쌍욕라떼’ 등 대중문화라는 공식적인 채널과 만났을 때 여성들이 더 열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오는 디스랩을 다 외우는 대기업 신입사원 이유정씨(가명·28)에게 언프리티 랩스타는 신입사원 백년 체증을 내리게 하는 특효약이다. 이씨는 바로 위 선배에게 1년째 ‘내리갈굼’을 당하고 있는 상황. 이씨는 “여성 래퍼들이 디스전을 하기 전까진 친한 척을 하다가 디스가 시작되면 욕을 내뱉는데 이게 꼭 내 직장생활 같다”며 “선배들 앞에서 친한 척을 하면서 단둘이 있을 때만 내게 욕을 하는 선배랑 여기 여성 래퍼들의 디스전이 비슷해 TV를 보면서 같이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전했다.

욕이 약자들의 반란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근대 이후 세상이 복잡하고 정교해지면서 다수의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됐다”며 “이렇다 보니 피지배층은 욕으로 불만을 표출·해소하는 것이다. 욕은 약한 자의 칼이자, 당하는 자들의 핵폭탄이었다”고 분석한다. 욕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식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중학교 때부터 매사에 ‘씨X’를 달고 사는 직장인 조 아무개씨(36)는 욕의 맛으로 ‘욕설의 리얼리즘’을 꼽는다. 조씨는 “욕할 때 쾌감은 딱히 없다. 다만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직장생활에서 특정 욕으로만 적확하게 표현되는 상황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욕이 있기 이전에 욕을 만드는 상황이 있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래서 욕한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이택광 문화평론가의 말이다. “욕은 일종의 퍼포먼스다. <마당전> 말뚝이의 욕을 보자. 하회탈을 쓴 말뚝이는 누구에게나 욕을 한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똑같은 XX’라는 평등의식을 보여준다. 그래봤자 같은 사람이라는 거다. 세상이 점점 계급화·양극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대중문화에서 욕의 접점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김태형 심리학자는 “대중문화와 욕이 결합하는 현상은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현실을 꼬집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돈을 내고 욕쟁이 할머니 집을 찾아가는 심리는 욕을 정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다들 고상하고 예의 바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게 친한 척하지만 사실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세상에서 가감 없이 내뱉는 욕쟁이 할머니의 욕은 솔직하고 위선이 없는, 권위의식이 없는 언어로 대중에게 인식된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현실에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가 피상적이라는 얘기다.”

   
팝 아티스트 기린의 <조카크레파스18색이야>.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우리말의 언어 유희를 보여준다. ⓒ 시사저널 최준필
좋은 욕으로 나쁜 욕 제압해야

한 방송사에서 실험했더니 욕을 최초로 접한 나이가 유치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욕은 언어 능력과 상관없이 본능에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욕을 두고 좋다, 나쁘다는 식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용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욕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호모욕쿠스-욕해야 사는 인간>의 이병주 작가는 욕을 제때, 제대로 하자고 주장한다. “욕에도 사람을 살리는 욕이 있고 사람을 죽이는 욕이 있다. 전자는 사람들을 억압에서 자유롭게 해방하지만, 후자는 상대를 배제하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좋은 욕으로 나쁜 욕을 제압해야 한다. 그렇게 욕의 힘으로 욕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병주 작가가 내놓은 좋은 욕 활용법은 욕을 제도화하자는 것인데 이 모델이 바로 민주주의다. 선거라는 ‘주기적 욕 잔치’를 통해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하자는 얘기다. “시민은 욕을 할 권리가 있고, 권력자는 욕을 들을 의무가 있다. 욕을 잘 듣는 능력과 자세가 없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정치적 바보들의 의미 없는 욕 잔치일 뿐이다.”

오른쪽으로 두 발짝, 왼쪽으로 세 발짝, 앞으로 두 발짝, 뒤로 세 발짝. 청춘 남녀가 박자와 리듬에 맞춰 즐겁게 춤을 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한 해 두 해가 지났다. 그런데도 춤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춤의 박자와 리듬을 다르게 추어서도 안 된다. 틀린 춤을 추거나 춤에서 빠지면 ‘체제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춤은 이제 재미가 없다. 그만 추자. 다른 춤으로 바꾸자. 시X”라고 불평하고 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 이것이  밀란 쿤데라가 지적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였다. 우리는 이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

최근 대통령을 욕하는 ‘삐라’가 살포됐다. 이에 정부는 경찰에 처벌 법규와 대응 요령 문서를 만들어 하달했다고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욕할 자유와 욕할 공간을 제대로 허용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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