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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32. 고구려, 수·당과 맞짱 뜨며 중원 위협

중국 통일왕조와 정면 대결…연개소문, 당에 굴복한 영류왕 시해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ㅣ 승인 2015.04.09(Thu) 16: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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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지나(支那·중국)와 조선은 고대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이니, 만나면 어찌 충돌이 없으랴. 만일 충돌이 없는 때라 하면, 반드시 피차 내부의 분열과 불안이 있어 각각 그 내부의 통일에 바쁜 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극단적 친명 사대주의를 아직도 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중국과 한국을 1 대 1로 놓고 ‘어찌 충돌이 없으랴’라고 갈(喝)했던 신채호의 언명은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고구려는 실제로 중원의 통일제국과 1 대 1로 맞대결을 벌였다.

고구려 왕, 스스로를 천자로 인식

후한(後漢)이 약화되면서 서기 220년께 중국은 위·촉·오(魏·蜀·吳)가 정립하는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분열은 사마씨의 진(晉)나라가 통일했지만, 곧 남쪽으로 쫓겨나면서 양자강 이남에서는 한족(漢族)의 송·제·양·진(宋·齊·梁·陳)이 차례로 들어서고, 북방에서는 한족(漢族)이 아닌 여러 민족의 열여섯 나라가 들어서는 남북조시대(420~589년)가 전개되었다. 350년이 넘는 대혼란기를 극복하고 서기 589년 중원을 통일한 인물이 수(隋) 문제(文帝)였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 평원왕 32년(590년)조’는 ‘(평원)왕은 진(陳)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군비를 다스리고 군량을 쌓아 지킬 계책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중원에 통일 정권이 들어서자 고구려는 전쟁 준비에 나섰다는 뜻이다.

   
대당 강경파인 연개소문이 영류왕의 대당 화친 정책에 반발해 그를 시해하고 있다. 사진은 KBS 드라마 <칼과 꽃>의 한 장면. ⓒ KBS 제공
고구려의 외교 전략은 다면적이었다. 양자강 남쪽의 진(陳)나라는 557년에 건국하고 수(隋)나라는 581년에 건국했는데, 평원왕은 두 나라와 모두 외교 관계를 맺었다. 남조의 진(陳)에 거듭 사신을 보냈고, 그사이 북중국을 장악한 북제(北齊) 및 주(周)에도 사신을 보냈다. 재위 23년(581년) 수나라가 북중국을 장악하자 그해 12월과 이듬해 정월 거듭 사신을 파견했다. 남북조의 분열을 이용해 고구려의 위상을 극대화하는 이이제이(夷以制夷) 전략이었다. 그런데 평원왕 24년(582년) 진나라 선제(宣帝)가 사망하면서 이런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태자 진숙보(陳叔寶)는 정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반면 수나라 문제는 중원 통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숙보는 여전히 여색을 탐닉하다가 589년 정월 수 문제의 군대가 수도인 건강(建康·지금의 난징)에 돌입하자 애첩들과 함께 우물에 숨었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중국 대륙에 수나라라는 통일 정권이 들어서자 고구려는 결전을 준비했다. 당시 중국인들이 중화(中華)사상이란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갖고 있었다면, 고구려도 역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갖고 있었다. 장수왕 3년(414년)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문’은 “아!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신 터전이다. 왕은 북부여에서 나셨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따님이시다”로 시작하고 있다. 천제의 아들이 곧 천자(天子)이니 고구려 왕실은 스스로를 천자(天子)로 인식했다. ‘광개토대왕비문’에는 “영락대왕(광개토대왕)의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까지 이르고, 대왕의 위력은 사해(四海)에 떨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또한 고구려가 사해(四海)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의 소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원에 통일 제국이 들어서자 고구려는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수서(隋書)> ‘고구려 열전’에도 “개황(開皇·수 문제의 연호) 초에는 입조(入朝)하는 사신이 자주 있었으나 진(陳)을 평정한 뒤로는 탕(湯·평원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곡식을 저축하여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나라에 대한 전쟁 준비에 나섰던 평원왕은 수 통일 이듬해인 서기 590년 재위 3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맏아들 원(元)이 즉위했는데 그가 26대 영양왕(?陽王·재위 590~618년)이었다. 영양왕은 부왕의 뜻을 이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재위 2년(591년)과 3년 잇따라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정보를 수집했다. 드디어 수 문제는 영양왕 8년(597년)에 국서를 보내 영양왕을 협박하기에 이른다. 수 문제는 통일 전인 평원왕 26년(584년)에는 수나라를 찾은 고구려의 사신을 위해 대흥전(大興殿)에서 잔치를 베풀어줄 정도로 고구려를 우대했으나, 중원을 통일하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수 문제는 “(영양)왕이 남의 신하가 되었으면 모름지기 짐(朕·수 문제)과 덕을 같이 베풀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말갈(靺鞨·훗날의 여진족)을 못 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금고(禁錮)시켰다”고 비판했다.

당시 말갈과 거란은 모두 황제국 고구려의 제후국들이었다. 이런 나라들이 수나라에 조공하러 가는 것을 고구려가 막았다는 비난이다. 중원을 갓 통일해 자신감이 극에 달한 수 문제의 국서에 대해 영양왕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양)왕이 말갈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遼西) 지방을 공격하니, 영주(營州) 총관(摠管) 위충(韋?)이 이를 격퇴하였다. 수 문제가 듣고 크게 노해 한왕(漢王) 양(諒·수 문제의 넷째 아들)과 왕세적(王世績)을 원수로 삼아 수륙군(水陸軍) 30만을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였다.”(<삼국사기> ‘영양왕 9년(598년)조’)

‘대당 강경파’ 연개소문, 당 태종과 결전

수 문제의 국서에 대한 영양왕의 답변은 수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중원에 통일 왕조가 들어선 이상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고 본 영양왕이 수나라를 먼저 공격해 자국 국경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수 문제는 즉각 자신의 아들에게 수륙군 30만을 주어 공격하게 했다. <삼국사기> ‘영양왕조’는 “한왕 양의 군대가 임유관(臨?關)을 나왔는데 장마를 만나 군량 운반이 계속되지 않아서 군대 안에 식량이 떨어지고 전염병에 걸렸다. 주라후(周羅?)는 동래(東萊)에서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향하다가 역시 바람을 만나 배가 많이 표류하고 가라앉았다. 가을 9월에 수의 군대가 돌아갔는데 죽은 자가 10명 중 8~9명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나라의 대참패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지켜낸 것이다.

그러나 영양왕의 이런 고구려 천하관은 이복동생 영류왕(營留王·재위 618~642년)이 즉위하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27대 영류왕은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유지하는 것보다 새로 들어선 당나라와 화친하는 정책을 더욱 중시했다. <삼국사기> ‘영류왕조’에 따르면, 그는 거듭 당에 사신을 보냈고, 재위 9년에는 신라와 백제에서 고구려가 당나라로 가는 길을 막는다고 항의하자 당에 사과하는 글월을 보내기도 했다. 영류왕은 재위 11년 당 태종이 돌궐(突厥) 국왕 힐리가한(?利可汗)을 사로잡은 것을 치하하면서 고구려의 봉역도(封域圖·강역도)를 바치기도 했는데, 수나라와 대전을 치른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기밀인 지도까지 보낸 것은 고구려 독자의 천하관을 포기한 행위였다. 영류왕은 재위 14년에는 대수(對隋) 전승기념탑인 경관(京觀)을 당나라의 요청으로 헐어버렸다. 경관이란 전쟁에서 죽은 적국 병사들의 유골로 쌓은 전승기념탑으로 추정된다. 급기야 재위 23년(640년)에는 태자 환권(桓權)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했는데 영류왕의 이런 저자세 외교정책에 대해 대당(對唐) 강경파들은 크게 반발했다.

영류왕이 태자를 보내 입조(入朝)하자 당 태종은 직방낭중(職方?中) 진대덕(陳大德)을 답례로 보냈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대덕은 역로(歷路)의 성읍마다 그 관수자(官守者·지방 장관)에게 예물을 주면서 고구려의 산천과 지형을 염탐했다. <삼국사기>는 “진대덕은 사신을 받드는 예절에 의해 아국(我國)의 허실을 엿보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쓰고 있다. 진대덕은 사신을 빙자한 간첩이었던 것이다. 당나라는 고구려가 아무리 저자세 굴욕 외교로 나와도 어차피 고구려를 침공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류왕으로 대표되는 대당 화친파와 연개소문으로 대표되는 대당 강경파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3월21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오른쪽)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있다. ⓒ 뉴시스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은 “아버지의 자리(동부대인 대대로)를 이은 개소문은 흉포하고 잔인하여 부도(不道)하므로 여러 대인(大人)들이 (영류)왕과 몰래 의논해 그를 죽이려 했는데 일이 누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영류왕 25년(642년) 연개소문은 열병식을 관람하자고 대신들을 초청해 그들을 모두 제거하고 궁중으로 달려가 영류왕까지 시해했다. 이는 단순한 쿠데타라기보다는 영류왕의 대당 굴욕 외교에 대한 대당 강경파의 군사정변이자 고구려 천하관을 지키려는 고구려 전통 세력의 혁명이었다. 이에 반발한 당 태종이 쳐들어오자 연개소문은 이를 격퇴해 고구려 천하관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친미 일변도 일원적 외교 전략 시험대에

최근의 사드·AIIB 등을 둘러싼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한국 외교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과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지나 중국이 G2로 부상하고, 러시아까지 다시 흥기하는 다원화 시대를 맞아 친미 일변도의 일원적 대한민국 외교 전략이 거듭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또한 외교는 냉혹한 현실이다. 고구려 천하관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의 분열과 불안’이었다. 고구려 내부의 분열과 불안은 중원의 통일제국 수·당과 맞서는 극한 상황에서 해소되었지만, 제국 남쪽의 백제와 신라 자체가 ‘분열과 불안’ 요소였다. 그리고 신라가 이런 분열 상태를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동아시아 전체가 요동치는 것이 삼국 통일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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