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 오너 가족 벼랑 끝 몰리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5.04.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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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권 명예회장과 자녀 고발당해…회사는 상장 폐지

전통의 건설 명가 삼환기업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4월1일 삼환기업에 대해 자본금 전액 잠식을 이유로 정리매매 기간을 거쳐 오는 4월15일 증시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오너인 최용권 명예회장이 비자금 4500억원 조성 혐의로 지난해 10월 검찰에 고발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아들인 최제욱 삼환기업 상무와 딸도 검찰에 고발당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오너 일가와 기업 입장에서는 총체적 난국이다. 삼환기업 측은 “상장 폐지가 회사 정리는 아니다. 기업 회생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명예회장이 스스로 말했던 개인 재산 추가 출자를 거부할 정도로 삼환기업의 회생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최용권 삼환기업 명예회장과 삼환기업 사옥. ⓒ 시사저널 구윤성
최 명예회장 장남 사내이사 선임 불발

지난 3월20일 열린 삼환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최 명예회장 쪽에서 제안한 최 명예회장의 장남 최제욱 상무와 신양호 상무보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부결시켰다. 오너 가족의 이사 선임 제안이 주총에서 거부되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서 거의 없는 일이다. 실제 표 대결에서도 250만주 대 230만주로 소액주주들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자본금 전액 잠식으로 상장폐지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대주주인 최 명예회장 쪽에서 추가 출자를 통한 회사 회생 약속을 지키지 않자 소액주주들이 똘똘 뭉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삼환의 어려움은 2012년 9월 창업자 최종환 회장 별세를 전후해 가시화됐다. 중동 진출 1호 건설사인 삼환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해 7월부터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더불어 최 회장의 상속자인 최용권 명예회장을 삼환기업 노조에서 비자금 조성 등에 따른 배임과 횡령의 건으로 그해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그 와중에 삼환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2013년 1월 6개월 만에 졸업했지만 계속 자금난에 시달렸다.

검찰 조사를 받은 최 명예회장은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을 통해 삼환기업에 183억여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다. 법원은 최 명예회장이 128억원가량의 손실을 삼환기업에 입혔다는 이유로 지난해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최 명예회장의 여동생인 최용주씨가 오빠(최용권)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 건은 노조의 고발과는 다른 것이었다.

최용주씨는 고발장에서 최 명예회장이 해외 건설 사업 수주 과정 등에서 조성된 자금 4500억원을 해외로 빼돌렸고, 이 돈으로 미국 하와이 등지의 부동산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최용주씨 측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출두해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지난 3월엔 최 명예회장뿐만 아니라 최 명예회장의 자녀를 검찰에 추가로 고발했다. 최 명예회장의 딸과 아들이 재산 국외 도피와 관련해 외국환 관리법을 위반하고 일본 내 비자금 조성 의혹에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최용주씨 측은 연초 법원 인사로 인해 담당 재판부가 바뀐 만큼 4월 중 귀국해 검찰에 출두해 진실을 규명하고 최 명예회장 일가를 고발한 구체적 이유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용권 명예회장 쪽을 고발한 것을 ‘남매간 재산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선대 회장이 고생해서 만든 회사를 아들이 망하게 하고 비자금 조성 혐의를 부친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최용주씨의 한 측근은 “삼환기업의 상장 폐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종환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사업을 할 때 물보다 콜라가 더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 대신 콜라를 먹는 바람에 당뇨를 얻었다. 그렇게 일군 회사를, 아들이 상장 폐지로 몰고 간 것은 납득이 안 된다. 우리는 재산 분배보다 회사 정상화가 최대 관심사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삼환기업 경영 정상화는 삼환기업 노조와 소액주주들에게도 절박한 문제다. 3월20일 주총 이후 소액주주들은 삼환기업 본사 13층 회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 측, 오너 일가 사재 출연 촉구

삼환기업 관계자는 “대주주의 특별한 결단이 없다면 삼환의 회생은 어렵다”고 전했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서는 해외 공사 입찰 참여도 안 되고 국내 공사 수주도 ‘부실 기업’이라는 낙인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최종환 회장 생전에는 연 7000억~1조원 정도이던 연간 수주액이 지난해에는 2200억원에 그쳤고, 올해는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영업이익을 통한 부채 축소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노조 쪽에서는 2012년 11월 최용권 명예회장이 삼환기업 법정관리 개시 전날 언론을 통해 약속했던 사재 출연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당시 최 명예회장은 자신의 지분과 차명 지분 등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때가 되면 1000억원 정도를 출자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추가 출자는 이뤄지지 않았고 상장 폐지를 전후해서도 최 명예회장 측에서는 이렇다 할 회생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2년 삼환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최 명예회장은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등 공식적으로는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아들인 최제욱 상무는 이사회 멤버로 남았다. 그런데 지난 3월 주총에서 최 상무의 연임 시도가 노조와 소액주주 연합군의 반란에 막힌 것이다.

최제욱 상무는 주총 이후에도 계속 회사에 출근하면서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와 노조 쪽에서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실 경영의 원인을 분명히 하고 회사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부도가 난 건설사의 경우 회사는 청산됐는데도 오너는 별 책임 없이 멀쩡했다는 것이다. 회사가 상장 폐지된 뒤 청산되면 대주주는 추가 책임 없이 빠져나갈 수 있고, 배임죄도 회사가 청산되면 주체가 없어져 처벌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최용권 명예회장을 상대로 싸우는 소액주주와 삼환기업 노조, 최용주씨는 모두 이해관계가 다르다. 최용주씨 측은 “모든 비자금 문제의 책임을 아버지(창업자 최종환)에게 돌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상장 폐지를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수천억 원대 비자금은 당연히 회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자본금 전액 잠식 상태를 벗어나 회사가 정상화돼 일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최 명예회장의 자녀 2남 2녀 중 두 아들 최제욱 상무와 최동욱씨, 큰딸 영윤씨는 삼환과는 별도로 각각 우성개발과 우성홀딩스, 리온기업의 오너로 있다. 우성개발과 우성홀딩스는 각각 공시지가 250억원과 17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부동산 임대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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