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떠나보내라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5.06.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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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모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정면으로 힐난한 사건은 김 대표뿐 아니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정치권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건호씨는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종북몰이 해대다가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며 김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정치인들의 ‘보여주기 식 광폭 행보’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평소 불편하게 생각했던 곳을 통합 행보를 한답시고 찾고는, 선거가 끝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을 준비하던 2012년에는 제주 4·3평화공원에 가서 참배했고,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가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당시 봉하마을 방문에 대해 언론은 ‘광폭 행보’라고 지칭하며 대선 선두 주자인 박 대통령을 칭송했다. 실제로 봉하마을 방문 후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하지만 취임 후 박 대통령에게서 4·3평화공원과 봉하마을을 찾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대통합’이란 대선 공약이 그러하듯이 박 대통령의 광폭 행보 또한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김무성 대표의 봉하마을 방문은 박 대통령의 2012년 광폭 행보를 흉내 낸 것으로,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새누리당 등 여권의 ‘노무현 역(逆)마케팅’은 도를 넘은 것이다. 여권과 그 외곽인 우익에서는 “노무현 덕분에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이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말마저 돌고 있다. 비록 정치 이념과 정책에서 의견을 달리했던 대통령이더라도 비극적 종말을 맞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기회만 있으면 정치공학 재료로 우려먹는 행태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자체가 ‘친노 패권주의’를 두고 두 쪽이 날 지경이 되었으니, 야권은 안과 밖에서 ‘노무현의 덫’에 걸린 형상이다. 결국 이 문제는 문재인 대표만이 풀 수 있고 또 풀어야 할 과제라고 하겠다. 문 대표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2선 후퇴라도 해야 한다. 관건은 문 대표가 이 같은 ‘광폭 행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이른바 ‘친노’라는 집단은 무엇보다 그 배타성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실질이 어떠하든 외부에 비친 ‘친노’의 모습은 그런 꼴이고, 정치에선 보이는 것이 실체보다 중요하다.

문 대표는 이른바 ‘친노’라는 측근은 물론이고 그 배후로 의심받는 정치인 및 외곽 세력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또한 막연하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실패한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문 대표뿐만 아니라 야권은 이제 두 전직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고 현재와 미래를 말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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