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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도자를 만나는 기쁨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리다 칼로>전

조은정│미술평론가 ㅣ 승인 2015.07.01(Wed) 14: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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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오랜만에 만난 여자 동창생….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54년)와 멕시코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인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오전에는 30·40대 주부들이 절대적이다. 삼삼오오 그림 앞에 모여 나누는 대화들은 감탄사나 탄식어로 이어진다. 도슨트의 해박한 설명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감각적인 내레이션도 이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기야 사랑과 실연, 신뢰와 배신, 역사와 현실, 상처와 치유, 사고와 고통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타인의 언어로 듣는다고 해서 무슨 울림이 있을까.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겪어봄 직한 사건이나 심리적 어려움이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담겨 있다. 그리하여 프리다 칼로의 작품 앞에서 미술에 문외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삶의 문제로 관객과 만나기 때문이다.

   
Self-Portrait with Monkeys Self-Portrait with Monkeys, 1943, Oil on canvas, 81.5 x 63 ⓒ 소마미술관 제공

프라다 칼로 작품 앞에서 미술 문외한은 없다

100년도 전에 태어난 한 작가의 작품을 대하면서 함께 비통해하고, 분노하며, 슬며시 웃음을 흘리는 것. 흔한 일은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생애는 그가 남긴 그림들을 이어붙이면 해독할 수 있다. 이는 역으로 작품 하나하나는 퍼즐 조각과 같아서 전체의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생일을 멕시코 혁명일로 바꾼 사람,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년)와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이름자 ‘Frieda’에서 ‘e’를 뺀 사람. 바로 ‘혁명’과 ‘사랑’이 프리다 칼로의 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선두 주자로 친정집의 빚을 갚아주고, 몸이 아픈 그녀의 병원비를 대면서 전시를 주선하는 등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바람둥이로 이름난 남편이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진면목을 보게 하는 돋보기 같은 도구인 동시에, 그녀를 독자적인 작가로 흐려지게 하는 안개 같은 존재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사랑이나 결합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자칫 이 유명한 부부의 스캔들에 몰입하게 된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미술이 아닌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프리다 칼로 전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한 작가의 행로를 결혼이라는 사건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미술 속의 작품이 아니라 삶 속의 그림으로 위치하게 하는 장치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영화 배급업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2차대전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멕시코에 정착해 결혼한 겔만 부부의 소장품이다. 프리다 칼로의 초상에 나오는 나타샤 겔만은 광택이 흐르는 털옷을 입고 있으며, 웃음기를 거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장식이 빛나는 귀걸이는 그녀의 둥글게 말려진 머리카락들보다 덜 빛난다. ‘심술궂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고 설명되는 이유는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뿔처럼 보인다고도 설명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프리다 칼로는 나타샤 겔만을 모세에 비견한 것이 된다. 그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초상에서 상냥한 웃음을 띨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난다. 시선의 주체성이라는 놀라운 현상은 값비싼 드레스와 빛나는 반지를 끼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농염미를 한껏 뿜어내는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카라꽃처럼 피어 있는 아름다운 얼굴과 카라 줄기처럼 늘씬한 허리를 지나 소파처럼 다정한 그녀의 육체를 표현한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서 보여진 것보다는 무뚝뚝하게 관람자를 응시하는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 속에서 발견하는 조금은 슬픈 눈동자의 여인이 나타샤 겔만의 진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필자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Diego, Me and Senor Xolotl, 1949, Oil on masonite, 70 x 60.5
Diego on my mind (Selfportrait as Tehuana), 1943, Oil on masonite, 76 x 61 ⓒ 소마미술관 제공

관찰자나 남이 아니라 표현하는 대상이 되는 것, 그것은 타자성을 넘어선 시선의 주체성을 회복시킨다. 인물이든 건물 혹은 과일이든 프리다 칼로 화면 속의 모든 것들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존재로서의 성격을 드러낸다. 심지어 자신의 자화상 속에서조차 원숭이·목걸이·인형 등은 그녀를 보조하는 어떤 물질이나 다른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세상에서 정말 자신이 먼지처럼 작아질 때, 너무 크게 자라난 자신의 상처에 빠져 허우적댈 때 프리다 칼로가 주는 위로는 32번이 넘는 외과수술과 유산, 배우자의 불륜, 꿈꾸었던 혁명의 세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국가에 대한 염려 등 그녀의 상황에 비견해 위로받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프리다 칼로의 작품 안에서는 그 어느 장소에서든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 그곳에 있다. 형틀처럼 몸을 가두는 목걸이 주위로 싱싱한 식물들이 자라나는 <땋은 머리의 자화상>, 돌처럼 무거운 목걸이는 몸을 짓누르지만 목선을 따라 연약하고 아름다운 레이스가 살랑대는 <목걸이를 한 자화상>, 아기 같은 눈망울을 한 원숭이들이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은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에서 발견하는 것은 화가 프리다 칼로가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의 무게와 상처인 것이다.

멕시코 전통과 서구 사회 정신세계에 비판적

전시장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주, 지구(멕시코), 나, 디에고, 숄로틀이 어우러진 사랑의 포옹>(1949년)을 볼 수 있다. 위대한 자연은 프리다 칼로를 안고,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를 안고 있으며, 다시 위대한 우주가 이 모든 것을 안고 있다. 마치 음양처럼 좌우를 나누어 표현한 것은 멕시코 아즈텍 문화에서 나타나는 도상이다. 우주만물이 하나 됨을 보여주는 화면 안에서 죽음을 피해 다니는 숄로틀(Xolotl)마저 잠자고 있는 풍경은 생명의 조화에 대한 예찬과도 같다. 음양의 도에 깊은 관심을 지녔으며 멕시코의 전통과 서구 사회의 공허한 정신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소유한 프리다 칼로가 오늘날 한국에서도 여전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고독과 좌절 그리고 그 덧없음에 대해 의연히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지사로 살아가는 법, 항상 타인의 관심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던 그녀의 놀라운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관객은 관음증의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그 모든 어려움을 건너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의 세계에 이른, 육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연약하지만 그 누구보다 견고한 정신을 소유했던 아름다운 구도자를 만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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