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펼쳐진 경이로운 모험 세계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5.07.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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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 연 <인사이드 아웃>

영화를 본다는 것은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사고하고 표현하는 주체가 아닌 내면의 모습 그 자체를 본 적이 있는가.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서는 이 같은 경험이 가능하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감정을 형상화한 캐릭터다.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씩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세계.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감정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애니메이션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픽사(Pixar)의 상상력이 또 한 번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본부가 있다. 열한 살 라일리(케이틀린 디아스)의 본부에서는 지금껏 기쁨(에이미 포엘러)이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 슬픔(필리스 스미스)의 활약은 거의 없었다. 라일리를 위하는 다른 감정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조종간에 슬금슬금 다가오다 저지당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옥신각신하던 기쁨과 슬픔이 기억 이동 통로에 함께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벌어진다. 마음 세계로 멀리 튕겨 나간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서둘러 본부로 돌아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우연히 벌어진 어떤 사건으로 모험을 겪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라는 큰 줄기는 여느 애니메이션과 같다. 기쁨과 슬픔의 여정 역시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대신 그들이 맞닥뜨린 것이 외부 세계가 아닌 라일리의 기억과 마음이라는 개인적 세계라는 것이 특별하다. 이 애니메이션이 관객을 이끄는 곳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다.

감정과 마음, 그것의 작동 원리를 눈에 보이는 세계로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인사이드 아웃>의 제작 기간이 5년이나 걸렸던 이유다. 제작진은 저명한 심리학자 폴 에크만과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다커 켈트너의 자문을 통해 스토리를 완성했다. 인간의 핵심 감정을 기쁨·슬픔·분노·두려움·혐오·놀라움으로 규정한 에크만의 연구 결과에 따라 캐릭터가 정해졌다. 캐릭터 중 놀라움이 없는 이유는 피트 닥터 감독이 두려움과 놀라움을 비슷한 속성의 감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된 <인사이드 아웃>의 세계는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황홀하다. 일단 마음속 세계를 설계한 상상력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다. 라일리의 모든 순간마다 마음 본부는 분주하다. 다섯 감정은 모니터로 라일리의 상황을 보면서 감정 제어판을 조종한다. 그 순간의 감정과 경험은 한 덩어리의 기억이 되어 구슬 안에 저장된다. 기억 구슬은 이동 통로를 타고 하루에 한 번씩 장기 기억 저장소로 간다. 마음 본부와 연결돼 있는 핵심 기억은 라일리의 성격을 이룬다. 그 밖에도 가족섬·우정섬·엉뚱섬 등의 이름을 단 성격의 섬이 라일리의 개인 성향을 만든다. 자고 있을 때 꾸는 꿈을 만드는 꿈 제작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둬놓는 잠재의식이라는 기억의 감옥, 모든 것을 선과 면으로 이뤄진 2차원으로 바꿔버리는 추상적 사고의 공간…. 이 모든 곳은 마음속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본부로 돌아가려는 기쁨과 슬픔 덕분에 구석구석 아주 자세히 보인다.

그러면서 <인사이드 아웃>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격이 만들어지고 기억이 저장되는 흥미진진한 순간뿐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잊히는 쓸쓸한 풍경을 마주하게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가운데 문득문득 느껴지는 쓸쓸하고도 뭉클한 정서. 이것은 픽사 애니메이션의 인장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인간다움의 핵심 놓치지 않겠다”

<인사이드 아웃>은 인생에서 슬픔이 왜 중요한 감정인지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차례 모험을 겪은 기쁨은 라일리가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슬픔 역시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거치며 기억을 만들고, 그러면서 점차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간다. 이 과정에서 기억과 감정을 대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사려 깊은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픽사는 언제나 ‘정서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세계를 구축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픽사가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더없이 개인적이라 소박했던 성취, 다른 존재와 온기를 나누던 때의 벅참, 이겨내기 어려운 슬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품어보던 작은 소망 같은 인생의 작고 소중한 가치들이다. 피트 닥터 감독의 말마따나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부분들을 놓치지 않는” 자세야말로 픽사 애니메이션이 매번 훌륭할 수밖에 없는 핵심 이유일 것이다. 감독의 전작이자 픽사의 대표작인 <몬스터주식회사>(2001년), <업>(2009년)을 떠올려보자. 전자는 벽장 너머 세계에서 아이들의 비명을 에너지로 사용하던 몬스터들이 인간 아이와 교감하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죽은 아내의 생전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집에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고 모험을 떠난 노인의 뭉클한 이야기였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 <니모를 찾아서>(2003년), <월-E>(2008년) 등 그동안 픽사가 발표한 영화들의 정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희로애락을 느끼며 흐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이룬다는 것. 나아가 그것이 삶을 지탱하고 다른 존재와 연결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 <인사이드 아웃>은 그렇게 픽사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지켜왔던 마음을 더 깊숙이 파고드는 시도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하기는 어렵더라도 감사하게 품어야 하는 이유를 이 놀라운 작품이 가르쳐주고 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애니메이션의 명가는 작품 목록에 또 하나의 걸작을 추가했다.

 

 

 

 

한국 징크스 깨기 나선 ‘픽사’ 

그동안 한국에서는 신작 발표만 했다 하면 전 세계 극장가를 초토화시키는 픽사의 아성이 그다지 잘 통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역대 개봉 영화 흥행 순위 1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토이스토리 3>조차 한국에서는 148만 관객을 동원하는 소박한 성적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마도 아이들보다는 어른의 감성을 쥐락펴락하는 픽사 특유의 재주 덕분일 것이다. 그래도 픽사는 늘 기본은 한다. <인크레더블>(2004년), <라따뚜이>(2007년), <월-E> 같은 대표작은 물론 한때 픽사 부진의 상징처럼 언급되던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년) 또한 1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한국에 개봉한 픽사 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쓸 수 있을까. 그 역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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