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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도둑들’ 아니라 ‘독립군’이 온다

일제 강점기 다룬 <암살>…흥행 감독 최동훈의 새로운 시도

이은선│<매거진 M> 기자 ㅣ 승인 2015.07.22(Wed) 14: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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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사라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암살>은 비극적 시대 풍경 안에서 각자의 신념에 따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다. ‘충무로 흥행사’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2012년)에 이어 또 한 번 전지현·이정재와 손잡고 내놓은 액션 블록버스터로, 일찌감치 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혀왔던 영화다.

1930년대 경성.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새로운 작전 실행을 위해 일본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세 명의 독립군을 물망에 올린다.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이 차례로 세 사람을 찾아 데려온다.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조선 주둔군 사령관과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는 것이다. 비밀리에 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암살단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의 한 장면.

여기서 잠깐. 최근 충무로에서 눈에 띄는 흐름 하나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이에 걸맞게 한동안 유행을 주도했던 궁중 사극의 붐이 서서히 가라앉고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들이 몰려오는 중이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찾아 나서는 늙은 포수의 이야기인 <대호>(박훈정 감독)와 스물여덟에 생을 마감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윤동주의 삶을 그린 <동주>(이준익 감독)가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 <봉오동 전투>(가제, 김한민 감독), 항일 무장단체 의열단을 소재로 하는 <밀정>(김지운 감독) 등이 제작 준비 중이다. <암살>은 이 같은 흐름의 신호탄 격이다.

독립군 사진 한 장이 출발점 된 영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시대의 역동성을 뜨겁게 담아내는 장점이 있다”는 게 충무로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굵직한 갈등과 사건이 다양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격변의 시기였으며, 그 시대 인물의 선택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풀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이 시기를 고른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그는 다양한 인물의 ‘선택’을 중요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출발점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최 감독은 우연히 독립군들의 사진을 보며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그 암울한 시대를 어떻게 살았으며, 목숨을 바칠 용기는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같은 감독의 고민은 <암살>의 한 장면, 하와이 피스톨과 안옥윤의 대사로 이어진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옥윤을 향해 하와이 피스톨은 “고작 두 명 죽인다고 해서 해방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옥윤은 짐짓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당연히 안 되겠지. 그래도 알려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그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구상하던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지금까지 기다렸다.

   
이정재와 함께 <암살>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배우 하정우(위 사진)와 전지현. ⓒ (주)쇼박스

역할 명확히 쥐여주는 배우 활용법

그동안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일정한 자장 안에서 움직였다. 케이퍼 필름(Caper Film·범죄 영화의 서브 장르로 도둑들의 작전 실행 과정을 다루는 영화) 장르 공식에 초호화 멀티 캐스팅을 얹는 방식이다. 할리우드 영화로 치면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범죄를 위한 판이 짜이고, 그 작전에 걸맞은 ‘선수’ 여럿이 모여 범죄를 수행하는 모습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최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영웅이 아니며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도박을 하고(<타짜>), 다이아몬드를 훔치며(<도둑들>) 눈먼 돈이 돌아다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허점을 하나의 유희와 게임으로 만들어 즐기는 이들이다. 한국형 히어로 무비를 표방한 <전우치>(2009년)에서조차 주인공 전우치(강동원)는 익살과 능청으로 점철된 ‘문제아’였다.

신기한 건 이 과정에서 어느 캐릭터 하나 비중이 허투루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 감독은 언제나 수많은 캐릭터를 손에 얹고 유려하게 저글링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줬다. 여기에 그 유명한 “나 이대 나온 여자야”(<타짜>)를 비롯해 “(일이 틀어지자) 마누라 때린 날 장모 온다더니”(<도둑들>) 같은 특유의 맛깔나는 대사와 속도감 넘치는 편집을 얹으면 ‘최동훈표 영화’가 완성된다. 지금까지 최 감독의 연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년, 212만)부터 <타짜>(2006년, 684만), <전우치>(613만), <도둑들>(1298만)까지 모은 관객은 2500만명이 넘는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평단과 관객의 외면을 받은 적 없는 스타 감독, 그게 최동훈 감독의 행보였다.

<암살>은 그간 최 감독이 보였던 행보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비단 1930년대 암살 작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1910년부터 해방 후 1949년까지 배경을 폭넓게 가져가며 거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통에, 단순한 오락영화로 보긴 어렵다. 시대와 인물 설명이 한층 복잡해졌고 역사적 무게감까지 얹은 바람에 호흡이 늘어지기도 한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현란하게 장면이 전환되던 최 감독의 기존 영화와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것이 극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비극과 메시지를 장르 영화라는 그릇에 알맞게 담은 모양새라고 할까. 역동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고요 속의 긴박감을 포착하는 연출이 빛난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 최고의 강점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캐릭터 무비’라는 점이다. 충무로 최고의 배우들이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긴박감 가득한 액션과 만나 완성된 시대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암살>은 주목할 만한 시도다. 암살단 리더 안옥윤을 연기한 전지현은 시대의 비극을 안고 묵묵히 전진하는 강인한 인물을 완성했다. 주체적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던 <범죄의 재구성>의 인아(염정아), <타짜>의 정마담(김혜수), <도둑들>의 예니콜(전지현)과 팹시(김혜수) 같은 최 감독 영화 속 여자 캐릭터의 멋진 변주로 보인다.

두 얼굴의 독립운동가 염석진을 연기한 이정재와 낭만적 기운마저 느껴지는 킬러 ‘하와이 피스톨’을 연기한 하정우 역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비장한 분위기마다 슬쩍 유머를 던져 넣으며 극을 이완하는 조진웅과 오달수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최고의 배우들을 한 데 모으고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쥐여주며 인상적 장면까지 하나씩 잊지 않고 심어주는 최동훈 감독 특유의 배우 활용이 두드러진다. 여전히 최동훈다우면서도 전혀 그답지 않은 최초의 영화 <암살>이 그가 써내려온 100% 흥행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기대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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