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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한국인, 싼 차는 저리 비켜

최근 6년간 5개국 수입차 판매 조사…한국에서만 비쌀수록 잘 팔려

이석 기자 ㅣ ls@sisapress.com | 승인 2015.07.29(Wed) 16: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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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베블런은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베블런 효과’를 선보였다. 상류층이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각 없이 사치를 일삼는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한국 수입차 시장에 딱 들어맞는 이론이다. 한국·미국·독일·영국·일본 등 5개 국가의 수입차 시장을 비교한 결과다. 자동차 가격이 비쌀수록 판매가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가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벤츠 E클래스 판매율 하위 모델보다 2.9배 높아

시사저널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주요 자동차 소비국의 고급 수입차 판매량을 조사했다. BMW·벤츠·아우디 등 3사 모델이 대상이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한국수입자동차협

회와 일본수입자동차조합 자료를 참고했다. 미국은 자동차산업 전문 조사기관인 오토데이터(Autodata)를, 독일과 영국은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IHS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계속되는 내수 침체에도 고가 수입차 시장은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4월5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모터쇼. ⓒ 연합뉴스

조사 결과 미국·독일·영국·일본은 자동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하위 모델 판매가 상위 모델보다 많았다. 한국은 하위 모델보다 상위 모델의 판매가 적게는 1.7배, 많게는 4.6배나 많은 가분수적 소비 구조다.

한국에서 판매 가격이 6000만~7000만원대인 BMW 5시리즈의 경우 4000만~5000만원대인 3시리즈보다 평균 2.3배 판매율이 높았다. BMW 5시리즈와 비슷한 가격대의 벤츠 E클래스와 아우디 A6 역시 하위 모델인 C클래스나 A4보다 각각 2.9배, 1.9배 판매가 많았다. BMW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의 경우 최근 5년간 판매 대수가 16만5709대로 일본(9만6062대)보다 훨씬 많다. 시장 규모는 일본보다 3.4배 작은 데 비해 고급 수입차 판매는 1.7배 많게 나온 것이다.

판매가격이 1억원을 호가하는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도 소득 수준이나 경제 규모가 큰 나머지 4개 나라들을 제쳤다. 지난해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의 한국 판매량은 각각 세계 4위, 5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방한한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그룹 마케팅·세일즈 총괄 사장이 한국 시장을 극찬할 정도였다. 그는 “우리 그룹이 2014년 전 세계에서 12.9% 성장할 때 한국은 46.8%나 성장했다”며 “한국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톱10 시장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당 판매가격이 수억 원대인 슈퍼카 시장에서도 ‘베블런 효과’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틀리의 경우 지난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도시가 서울이다. 벤틀리의 인기 모델인 플라잉스퍼 한 차종만 보면 서울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의 최고급 스포츠카인 마세라티 판매 역시 한국이 7위에 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마세라티는 723대로 전년 대비 468%나 늘어났다.

계속되는 내수 침체에도 고급 수입차 시장만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고소득 자영업자나 법인의 수입차 구매율이 높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행 세법상 개인이나 법인 사업자들이 업무용으로 차량을 구입할 경우 차 값뿐 아니라 유지비까지 전액 경비 처리(소득공제)를 해준다. 개인 사업자나 법인이 고가 수입차를 구매하면 납부해야 할 소득세와 법인세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사업자들이 절세 차원에서 고가 수입차를 앞 다퉈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차업계 역시 ‘절세 가이드’를 만들어 현금 대신 할부나 리스를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BMW·벤츠·아우디의 사업자 판매 비율은 각각 51%, 63.6%, 53.4%를 차지했다. 고가 브랜드일수록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롤스로이스·벤틀리·포르쉐·재규어의 경우 사업자 판매율이 70~97.9%에 달했다. 국산차 중 유일하게 1억원대 모델인 현대차의 에쿠스 역시 지난해 사업자 비중이 77.2%나 된다. 차 값이 비쌀수록 소득에서 공제되는 금액이 커 그만큼 경비 처리 혜택도 늘어난다.

문제는 법인의 업무용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면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탈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부부는 2011년 8억원을 호가하는 롤스로이스를 비롯, 람보르기니·포르쉐 등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리스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녀 통학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세법 악용해 새는 세금 연 2조5000억원”

2011년 대주주 등에게 800억원대의 부실·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의 경우 럭셔리 카 수입상을 방불케 한다. 당시 예금보험공사는 채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람보르기니·벤츠·페라리·포르쉐 등 26대의 슈퍼카를 발견했다. 회수된 자동차 중에는 13억원짜리 명차인 부가티 베이론도 포함돼 있었다. 이 차는 전 세계를 통틀어 450대만 생산됐다. 우리나라에는 단 두 대만 들어왔다. 수입가격이 약 12억8000만원이지만, 희소성 때문에 실제 거래 가격은 20억~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가 대출금을 못 갚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자영업자에게서 압류한 것으로, 여기서 새나간 세금만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실련은 현행 세법의 허점을 악용해 새는 세금 탈루 규모가 매년 2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업무용 차량 구입부터 유지까지 사업자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기 때문에 개인 고객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업무용 차량의 과도한 경비 처리를 제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현재 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7월9일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과 김동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 3건을 회부했다. 이 의원은 일정 가격 이상 승용차의 경우 업무 관련성을 입증한 경우에만 운행 거리만큼 필요 경비로 산입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 영업용 및 친환경 자동차를 제외하고, 법인이 구입·리스한 업무용 차량의 비용 처리 한도를 3000만원까지만 인정하도록 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캐나다의 경우 업무용 차량 가격이 3만 캐나다달러(약 2732만원) 미만인 경우만 경비로 인정하고 있다. 호주는 5만7466 호주달러(약 4940만원)까지만 경비 처리가 가능하다”며 “우리나라도 업무용 차량 가격에 따라 세금 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업무용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한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에게 거액의 세금을 부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세 심판을 거치면서 결국 경비로 최종 인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안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BMW 승용차를 업무용으로 임대(리스)했다. 리스료로 매년 3000만원 정도가 나갔다. A씨는 이 리스료를 필요 경비로 산입(소득공제)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다. 하지만 A씨의 안과에는 이미 실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차량이 3대나 더 있었다. 관할 세무서장은 이 리스료에 대한 필요 경비 산입을 거부했다. 이에 불복해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심판소는 “병원에 업무용 승용차가 있지만 사업자가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업무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경실련이 7월8일 수입차 등 업무용 고가 차량 판매실태 및 세제혜택 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차량 가격 따라 세금 공제 차등 규정 마련해야

업무용 차를 대부분 개인적으로 사용했지만, 출퇴근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액 경비로 인정받았다. 출퇴근이 일종의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이다. A씨의 경우 3년간 리스료가 8883만원이다. 차량 가격이 최소 1억원이 넘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A씨가 소득세 최고세율인 41.8%를 적용받는다고 가정하면 3년간 무려 3713만원의 소득세를 절감하게 된다. A씨가 BMW 차량을 사용하는 데 정부가 일종의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좀 더 세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업무용 차량에 대한 포괄적 규제 법률만 있고, 업무상 사용분과 사적 사용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하위 시행령이나 시행 규칙이 없다. 사업자가 운행일지를 허위로 작성해도 사실상 규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이 부분까지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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