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X파일’ 싸들고 미국으로 줄행랑
  • 홍순도│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15.08.19 16:29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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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된 링지화 동생 송환 둘러싸고 미·중 팽팽한 기 싸움

옛 소련 몰락 이후 명실상부한 지구촌 양대 강국으로 군림해온 미국과 중국이 요즘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내력이 범상치 않은 재미 중국인 한 명의 중국 송환 문제다. 이 싸움은 9월 말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이후에도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최대 정치 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끈질기게 미국에 송환 요청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링완청(令完成·54)이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들었던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링지화(令計劃) 전 당 통일전선공작부장의 친동생이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 링 전 부장은 시 주석이 ‘반드시 감옥에 집어넣어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단단히 벼른 이른바 ‘구정권의 신4인방’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4인방 가운데 링지화뿐만 아니라 저우융캉(周永康)·보시라이(薄熙來)·쉬차이허우(徐才厚·사망) 등 한때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이들이 줄줄이 감옥행을 면치 못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 AP 연합

시진핑 일가 재산 관련 방대한 자료도

그렇다면 링완청은 어떻게 이처럼 미·중 양국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그 답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 2012년 11월 집권하자마자 추진해온 이른바 부패와의 전쟁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지금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시 주석이 당시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 최종 목표가 바로 신4인방이었다.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와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 시 서기,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은 시 주석의 의도대로 사정의 칼을 맞은 다음 영어의 몸이 되거나 맥도 추지 못한 채 사망했다. 하지만 링 전 부장은 달랐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을 오래 지낸 노련한 책사다웠다. 자신에게도 사정의 칼날이 서서히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비밀리에 대책을 마련했다. 훗날을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 세계에는 그저 중국골프협회 일에만 관여하는 사업가 정도로 알려진 동생 링완청을 미국에 도피시키는 공작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말 자신이 체포되기 직전에 극적으로 계획을 성공시켰다.

문제는 링완청이 이때 형의 지시에 따라 몸만 빠져나가지 않고 엄청난 규모의 민감한 정보들을 가지고 나갔다는 사실이다. 중국 내부 고급 정보에 목말라하는 미국으로서는 이 사실을 간과할 이유가 없다. 국익 차원에서라도 어떻게든 그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중국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판도라의 상자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정보들이 미국 땅에서 새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가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하다.

베이징 내 서방 소식통의 전언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링완청이 열 수도 있는 판도라의 상자 속 정보는 실로 대단해 보인다. 무엇보다 링 전 부장이 당 살림을 총괄 책임지는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에 있으면서 확보했다는 시진핑 결재 서류 3000여 건이 일단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미국 CIA도 접하지 못하는, 차원이 다른 국가기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에서 물러난 2013년 이후 과거의 심복들을 통해 빼돌린 군사·정치·경제·문화·사회 각 방면의 기밀문서 300여 건은 중요도 면에서는 오히려 앞의 것들보다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문서 수집, 은닉 행위는 1건에 한 번씩 사형을 당할 범죄라는 게 일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링완청은 그 외에도 시 주석 일가의 재산과 관련한 방대한 자료 역시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시차오차오(習橋橋·66), 시치치(習齊齊·64)로 알려진 두 누나의 축재 정보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청렴과 반부패를 부르짖는 시 주석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정보라는 것이다.

링지화 전 중국 통일전선공작부장(왼쪽)과 그의 동생 링완청. ⓒ AP 연합 ·바이두 캡쳐

“미국이 범죄자 옹호하는 건 곤란”

중국 당국은 이 때문에 이른바 ‘시진핑 X파일’로 불리는 이 자료들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3월 국가안전부 요원, 외교관, 변호사 등 100여 명의 요원들을 미국에 비밀리에 파견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링완청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그의 입을 막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사살하라는 특명도 내린 것으로 전해질 정도니 중국 당국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왕청(王誠)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화교 여성과 결혼한 영주권자 사업가로 행세하는 링완청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한 것이다. 중국 당국이 최근 체면이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미국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그의 송환을 요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미국이 그를 중국에 순순히 넘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격적으로 송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나, 그때는 이미 필요한 정보를 다 빼낸 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캘리포니아 루미스에서 미국 정보요원들의 보호 아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링완청 역시 제 발로 중국에 걸어 들어갈 리가 만무하다. 중국 당국이 자신의 형을 엄벌에 처하지 못하도록 협박할 수 있는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 탓이다. 여차하면 하나씩 파일을 공개하는 것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중국판 에드워드 스노든’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으로 양심에 입각해 행동한 스노든과 링완청 형제는 죄질이 다르다. 미국이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미국과 링완청 형제를 비난하면서 송환이 답이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사사건건 충돌하는 미·중 양국의 관계는 새로운 암초를 만나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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