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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 정도를 일일이 문제 삼느냐”

여의도 ‘갑질’에 돈과 여자는 필수…너무 많아 불감증 수준

김현일 대기자 ㅣ . | 승인 2015.08.27(Thu) 10:54:15 | 13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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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갑질사(史)’를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최근 30년의 사례들만으로도 두툼한 책 수십 권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울 터다. 뉴스로 다룰 만한 비중 있는 갑질만 열거해도 그렇다. 요즘 논란이 되는 갑질 사례를 ‘예전 분’들에게 묻는다면 ‘해먹는 대상이 다양해지고 수법이 교묘해진’ 점은 인정하면서도 “뭘, 그 정도를 일일이 문제 삼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갑질 불감증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논의 편의상 최근 이슈가 된 갑질 행태, 즉 성추문, 이권 개입, 인사 청탁 등으로 범위를 축소해도 숨 가쁠 우리 여의도의 갑질사다.

국회의원 갑질 ‘여자’ 부문에서 모두를 압도한 성낙현 의원(공화당, 7·9대)이 1978년 8월11일 새벽, 여고생들과의 섹스 스캔들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하고 있다. 중앙일보 사진부 ‘양원방 기자(고인)의 특종’ 사진. ⓒ 중앙일보 제공

역대를 통틀어 성추문 금메달 의원은 성낙현

국회의원 성추문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9대 국회 성낙현 의원 건이 단연 압권이다. 안면이 있는 보험설계사를 어찌어찌했다는 심학봉 의원쯤은 비교가 안 된다. 집권 공화당 소속으로, 1978년 구속 당시 54세였던 성 의원의 행각은 그의 ‘파트너’였던 여고생의 학교 소지품 검사 때 가발·거액의 현금과 10만원권 수표, 콘돔 등이 적발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10만원은 국립대학 두 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남는 액수였다. 성 의원은 여의도 행사장에 동원됐던 여고생 4명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운 후 자신의 일본인 친구 집 등지에서 관계를 맺었다. 성 의원은 일본인 친구 및 여고생들과 당시에는 이름마저 생소한 ‘그룹 거시기’를 벌이는 등으로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성 의원은 특히 정치적 악명 전과 때문에 더더욱 세간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는 1969년 3선 개헌 당시 야당 소속 의원으로 개헌을 지지한 조흥만·연주흠과 더불어 배반자 3명 중 하나다. 그가 속했던 신민당은 이들의 배지를 떼기 위해 나머지 소속 의원 44명 모두를 스스로 제명한 뒤 당을 해산하는 전대미문의 조치를 취했다. 신민당의 이런 극약 처방은 당시 정당법 규정 때문에 이뤄졌다. 43세에 경남에서 당선된 유일 야당 의원으로서 촉망받던 성낙현을 비롯한 3인의 변절은 정치인의 ‘전통적 약점’인 돈과 여자 문제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구체적 사연이나 여당의 회유 자금 규모는 아직껏 드러난 게 없다.

점잖고 양심적인 정치인들도 없지 않아서 일반화해선 안 되지만, 여야 가릴 것 없이 여자 문제에서 자유로운 의원이 많지 않음은 분명하다. 정치인·재벌 할 것 없이 방귀깨나 뀐다는 지도급 인사들이 소실 몇 명 두는 것은 예사였다. 요즘 북새통을 겪는 모 재벌가 작은 마님도 그런 세태의 흔적으로 보면 된다. 당시는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재벌 총수들의 유명 연예인 편력은 다양하다. 지역구 여성 책임자와 정사를 벌이다 남편에게 붙잡혀 결국 금배지를 잃은 L 의원이나 주변의 숱한 여인들과의 춘사로 인해 역시 여의도를 떠난 E 의원 등 스캔들 주역은 거의가 야당 소속이지만 이는 여권의 선별 조치 결과일 따름이다.

1980년대 초 검사 부인과의 관계가 들통난 H 의원도 마찬가지다. 당시 안기부는 H 의원이 선명 야당을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정사 현장을 덮쳤다. 훗날 혼외자 존재가 드러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그 시절에도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여권이 물증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야당 의원들의 뒤를 캐고 치부 들추기에 열을 올린 여당은 자신과 한 편인 소속 의원, 고위 관료들의 외도엔 관대했다. 지시에 고분고분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묻어뒀다. 의원들의 딴짓거리 대상으로 여비서, 지구당 관계자 등이 종종 등장하나 실은 직종·나이 등을 가리지 않는다. 여권 신장이 이뤄진 2000년대 이후 여성 의원들이 스캔들 대열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진 정도가 여의도의 달라진 풍속도다. 물론 이런 난장판은 의원님들의 빗나간 열정이 우선적 요인이긴 하지만 불 주위에 부나방들이 꼬이듯 권력 주변 여성들의 적극적 공세도 만만치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의원 관련 성추문을 모두 갑질의 결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정색도 있다. 그러니까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상대를 성폭행·추행한 것과 ‘저들끼리’ 눈이 맞아 하는 거시기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대개의 비리가 그렇지만 특히 권력형 비리에는 ‘여자와 돈’이 필수다. 공식처럼 돼 있다. 역대 정권을 지나면서 명멸한 이른바 실력자들의 본색이 증명한지라 그 세세한 내역을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 크기 등에 따라 검은돈 규모는 천양지차라지만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의원들인지라 마음먹기에 따라 상당액의 축재는 가능하다. 검은돈임에도 ‘검은’ 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유리하다. ‘입법 로비’는 일 잘하는 부지런한 이미지로 둔갑할 수도 있고, 이권 알선은 지역구 사업에 열심인 의원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경상비는 법이 보장한 후원회와 출판기념회를 통해 충당하면 되는 것이다. 이권 청탁·알선을 위해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에 10년 치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식의 골탕먹이기도 갑질의 한 유형이다. 또 재벌 총수의 국정감사장 출석요구 으름장 등 우회수법으로 쇼핑몰 판매대나 건설현장 이권을 따내는 갑질은 고전에 속한다. 야당 중진 K의원이 Y민자역사 내에 경양식집 운영권을 받아낸 게 알려져 정치문제로 비화되자 여당 측이 서둘러 진화한 적이 있다. 당시는 야당에 다른 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됐으나 실은 연루 여당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뒷주머니로 향함에도 받을 때는 ‘정치자금’이라는 점잖은 호칭을 달고 있기에 받으면서도 당당하다. 일단 들통나더라도 정부 쪽과 ‘딜’이 가능하고 면책특권 등을 활용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서 동료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 의법 처단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여지도 있다.

로비·이권 알선을 지역구 사업으로 포장

대목으로 불리는 대선이나 총선 때면 거금을 만질 수도 있다. 자신에게 직접 들어오는 돈도 있고 캠프로 향하는 일부를 챙겨도 된다. 이른바 ‘배달사고’로 불리는 돈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참조하면 된다. 2002년 대선 9개월 뒤, 야당 후보에게 전해진 모 대기업의 10억원 수표가 한 젊은 여성의 아파트 구입대금에서 나왔다. 검찰의 추적 조사 결과 대선본부의 핵심 실세가 헌금명부에 기재 않고 내연녀에게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런 유형의 배달사고는 흔하다. 야당이라고 돈벌이 부분에선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내며 교묘한 수법으로 이재를 하는 축도 있다. ‘여의도 돈 거래’가 활발한 것은 돈을 주고받는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되고 특수 신분이기에 노출 가능성이 작은 탓이다. 물론 이 역시 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전직 의원 가운데는 생계비 보조를 받아야 하는 이도 다수 있고, 3선 의원이었음에도 30평 아파트 살림도 벅차 하는 이협 전 의원 같은 이도 여럿이다. 그러나 어렵게 지내는 전직 의원들이 이 의원처럼 청렴한 의정 활동 때문에 오늘의 힘든 생활을 하는 게 아님 또한 틀림없다. 자식 사업자금 대줬다가, 빚보증 섰다가 혹은 무모한 투자 실패와 체면치레 때문에 허덕이는 이도 있다.

요즘 몇몇 의원이 자식 취업 건으로 갑질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음을 의미하는 징표다. 6선 관록의 김 아무개 전 의원은 3선을 할 즈음 자신이 취업시킨 지역구민(연고자 포함)이 1만명 된다는 말로 조직의 탄탄함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비단 김 의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웬만한 의원이면 수천 명은 보통이었다. 과거 의원들이 주장하는 취업 알선 숫자에는 순입사뿐 아니라 승진, 병역 면제나 배치, 전학 혜택 등 인사 민원이 망라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때는 공기업 산하 일선 직원들까지도 ‘아무개 의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던 적이 있었는데 이는 마당발 의원들이 남긴 족적이다. 이런 꼬리표 직원들은 추천 의원이 현직에 있는 한 해고·정리 등에서 일단 열외였고 조직 내 불화와 기강 해이에도 ‘일조’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다고 최근 몇몇 의원들의 자녀 취업이 합리화되진 않는다. 자기 자식을 특정 자리에 끼워넣는 것은 특권의식에서 나온 전형적 갑질일 뿐이다. 지역구민에 대한 취업 알선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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