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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야심 ‘左 박근혜, 右 푸틴’

일본 누르고 아시아 주도권 쥔 중국, 미국과의 패권 경쟁 선언···‘전승절 후폭풍’ 동북아 새 역학구도

감명국 기자 ·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ㅣ kham@sisapress.com | 승인 2015.09.07(Mon) 23: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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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 함께 9월3일 오전 9시(한국 시각 오전10시) 톈안먼(天安門) 뒤편에 있는 단문(端門) 앞에서 외국 국가원수들을 맞이했다. 시 주석은 이른바 ‘인민복’이라고 알려진 중산복 차림이었고, 펑리위안은 ‘차이나 레드(China Red)’로 널리 알려진 붉은 색깔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각국의 정상과 대표사절단이 차례로 들어섰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노란색 재킷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이날 제일 먼저 단문 광장에 입장해 시진핑과 악수한 사람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고,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박 대통령보다 먼저 걸어나와 시 주석과 악수했다. 박 대통령은 보좌진들이 사전에 의전 프로토콜을 알려주지 않은 탓인지, 시 주석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자’는 뜻으로 자신의 오른쪽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자, 시 주석의 뒤편으로 걸어가려고 해서 시 주석을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안내로 톈안먼 서쪽 계단을 통해 성루에 오를 때도 시 주석을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시진핑이 자신의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에는 박 대통령과 함께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고 한 듯 보였으나, 박 대통령은 톈안먼 서쪽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조금씩 뒤처졌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시 주석은 걸음을 늦추고 왼쪽 뒤를 돌아보며 박 대통령을 찾았다.

하지만 톈안먼 성루에 도달했을 때 시 주석은 오른편에 푸틴, 왼편에 박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선 모습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외국 국가원수들이 성루 앞 난간으로 다가가서 가로 일렬로 설 때도 시 주석은 푸틴을 안내해 자신의 오른편에 서도록 배려했다. 푸틴의 바로 다음 자리는 박 대통령의 자리로 사전에 마련된 듯했으나 박 대통령은 뒤편에서 머뭇거리다가 잠시 후에야 푸틴과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사이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섰다.

9월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쪽 왼쪽 네번째)과 그의 좌우로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 연합

‘G2’ 미·중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 외교’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및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의 시작을 선포하고 중국인민해방군 퍼레이드가 시작됐을 때는 자리 정돈이 마무리됐다. 톈안먼 성루 한가운데에는 시진핑 주석, 그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 그다음에 박근혜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순서가 완성됐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 오른편 두 번째 자리에 서서 인민해방군 육·해·공군의 열병과 분열을 사열했다. 조선노동당 비서 자격으로 톈안먼에 오른 최룡해 비서는 오른쪽 맨 끝자리에 가서 섰다. 그런 자리 배치가 불만스러웠는지 최룡해는 시 주석과 면담 한번 하지 않고 그날 오후 고려항공 일반 여객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오전 10시6분 시 주석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연설이 시작됐다. “70년 전 오늘 중국 인민들은 14년간의 길고 긴 투쟁 끝에 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거두고 반(反)파시스트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선포했습니다. 평화의 햇빛이 다시 대지 위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중략) 중국인민해방군은 인민의 자제병(子弟兵)입니다. 전군 장사병들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근본 종지(宗旨)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종지는 조국의 안전과 인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위하고, 세계 평화를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중국군이 앞으로 30만명을 감축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오전 10시20분 중국군의 퍼레이드가 시작됐을 때, 중국 전역의 중국인들이 소지한 스마트폰에는 “퍼레이드에 동원된 500여 기의 무기들 가운데 84%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신형”이라는 뉴스가 떴다. 퍼레이드 현장에서는 미국도 긴장해야 할 신형 전략폭격기 훙(轟)-6K와, ‘미 항모 킬러’로 알려진 둥펑(東風)-31D 대함 탄도미사일, 최대 사거리 3500㎞로 중국 북동부에서 발사하면 괌 미군기지 타격이 충분히 가능한 둥펑-26이 등장했다. 최대 사거리 1만2000㎞로 워싱턴과 뉴욕을 공격할 수 있는 둥펑-31A는 6년 전 열병 때 공개된 것을 다시 끌고 나왔다.

미국 오바마, 소외된 일본 두둔하기에 급급

70년 전인 1945년 9월2일 일본 도쿄 만에 정박한 미군 전함 미주리 호 함상에서 굴욕적인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던 일본은 즉각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전승절 당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행사가 이른바 ‘반일’(反日)적인 것이 아니라 중·일 간의 화해 요소를 포함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중국 측에 전했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에서 그런 요소는 보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열병식 참관에 대해서도 “유엔은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190개 이상의 국가가 가입한 유엔은 특정 과거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전날 합의했다고 발표한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한국·중국과 의사소통을 거듭하며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를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월2일(미국 시각) 성명을 발표해 “태평양전쟁의 종전은 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며 “이후 70년을 거쳐 온 미·일 관계는 화해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과거의 적이 견고한 동맹이 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 무대에서 공통의 이해와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고, 여기에 70년 전 함께 ‘항일투쟁’을 한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하자, 미국으로서는 의식적으로 일본의 등을 두드리며 두둔하는 제스처를 취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이날 톈안먼 광장의 퍼레이드를 통해 중국은 러시아를 국제정치 최대의 파트너로 판단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중·러 양국은 열병식 개최를 앞둔 8월 말 동해상에서 양국 해군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하며 군사적 유대관계를 강화했다.

박 대통령을 굳이 톈안먼 성루 자신의 바로 옆에 세운 시 주석의 구상은 동북아를 중ㆍ한ㆍ러와 미ㆍ일이 대립하는 새로운 구도로 짜보겠다는 야심을 잘 보여준 이벤트였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어떻게든 아시아에 대한 재균형 전략을 통해 중국 포위 전략을 추진 중인 미국이 구축해놓은 미-일-필리핀-태국-호주로 연결되는 커다란 고리에서 한국을 떼어내겠다는 의도를 전승절 행사를 통해 보여주었다. 좀 더 구체적인 시진핑의 동북아 구상은 9월 말로 예정된 시진핑의 워싱턴 방문 때 오바마와 회담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그리고 10월에는 박 대통령의 방미로 한·미 정상회담이 이어진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11월 초로 조율 중이다. 동북아를 둘러싼 주요 정상들이 연이어 만나는 일정이 이어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2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

“김정은, 바로 남한에 손 내밀 가능성 커”

한반도 및 통일 문제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외교 일정을 들어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가를 대체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한·미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있는 미·중 정상회담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 관계가 삐걱거릴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정 전 장관은 “우리가 지나치게 미국의 눈치를 볼 상황은 아니다. 지금의 미국에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동맹 대상이다. 그에 맞게 우리도 미국의 주요 무기 수입국이지 않나. 절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미국을 몸 달게 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한·미·일 공조가 삐걱거릴 가능성은 없다”며 “외교 관계란 감성적인 게 아니고 냉철한 국가 이익으로 가는 것이며, 각각의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좀 긴장은 될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중·러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는데, 러시아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미·러 관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중·러가 밀착하고, 여기에 한국까지 중·러 정상들과 나란히 서 있으니까 미국으로서는 내심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박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그야말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그것을 굳이 그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정서를 표출하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전승국은 미국인데, 중국이 요란하게 전승절 행사를 치르는 건 미국 입장에서는 좀 못마땅할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어야 할 시점에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가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등 한·중 관계에서 일본이 참여하는 구도를 바라는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미국은 그 점을 다행스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승절 행사 후폭풍으로 향후 북·중 관계 등 김정은 정권의 행보에 대해서도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 북한 대표로 온 최룡해 비서가 특사 자격이 아니었다는 점과 시 주석과 면담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 것을 두고 시진핑과 김정은의 냉전 관계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장관은 “최룡해가 항일 빨치산 2세대이기 때문에 대표 자격이 충분하고 김정은도 그런 급에 맞춰 최룡해를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 역시 “시진핑 정부로서는 오히려 최룡해에게 나름대로 예우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입장에서도 무작정 중국에 손을 내밀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중국의 내정 간섭을 경계하면서 독자적으로 러시아·일본 등과 관계 개선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큰 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한에 바로 손을 내밀 가능성이 커졌다. 집권 5년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적극적인 대남 관계 개선으로 나올 것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실세 3인방’의 전격 방문과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도 그런 연장선상일 것”이라고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승절 둘러싼 뜨거운 논란

‘전승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전승절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각 나라마다 전승절 기념일이 제각각인 데 따른 혼란과 함께 일각에서는 그 성격에 대한 논란도 뒤따른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적대국이었던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승절 행사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은 매년 7월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부르며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자신의 승리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탓이다. 지난 7월27일 북한은 전승절 62주년 행사를 자체적으로 가졌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전승절일 뿐이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러시아 등에서 기념하는 전승절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당시 승전국이었던 연합국의 일원이었다. 중국의 전승절은 정확히 말하면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이다. 2차 대전은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사실상 종결됐다. 하지만 공식적인 종결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인 9월2일로 보고 있다.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은 이날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반면 중국은 하루 뒤인 9월3일을 전승절로 보고 있다. 일본의 항복문서가 하루 뒤에 접수되었기 때문이다. 타이완도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9월3일 전승절 70주년 행사를 위해 국력을 총집결했다.

영국은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15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한국은 연합국의 일원이 아닌 탓에 따로 전승절을 기념하지는 않고 대신 8월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한다. 2차 대전 당시 한국은 1941년 광복군이 창설됐지만, 그 규모가 미미했던 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한국과 더불어 대륙의 주요 지역이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던 중국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군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인민해방군이 각각 일본군을 상대로 중국 땅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때문에 중국과 타이완은 각각 인민해방군과 국민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라며 전승절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완의 마잉주 총통은 9월3일 “실제 항일투쟁의 승리자는 인민해방군이 아닌 국민군이며, 따라서 진정한 전승절은 타이완의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미국·영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러시아는 5월9일을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독일이 항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러시아의 주적은 유럽의 독일이었다. 러시아는 지난 5월9일 모스크바에서 푸틴의 지휘로 전승절 7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당시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했고, 한국과 북한에서는 윤상현 특사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각각 참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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