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대기업을 위한 꼼수?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0.07 18:28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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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금융업 진출 길 열어주는 셈” 지적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에 출범하게 될 인터넷전문은행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예비인가 접수가 지난 10월1일 마감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이란 별도의 지점을 두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예금·대출·펀드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다. 정부는 2~3개월간의 심사 후 1~2곳 정도를 선정해 예비인가를 내줄 계획이다. 선정된 은행은 6개월 안에 영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3년 만에 은행 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IT(정보기술)와 금융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산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청사진과는 달리, 인터넷전문은행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

는 관련법 개정이 필수인데,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법 국회 통과 불확실해 논란 예상

현재 신청서를 낸 곳은 다음카카오와 인터파크, KT 세 곳이며, 모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회사는 총 46곳으로, IT 전문 기업과 은행, 유통사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컨소시엄 별로 참여 기업들을 보면 카카오 컨소시엄에는 KB국민은행과 이베이, 예스24, 우정사업본부 등이 있고, KT컨소시엄에는 효성과 포스코 ICT, 우리은행, 현대증권, GS리테일 등이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인터파크 컨소시엄은 SK텔레콤과 GS홈쇼핑, 기업은행, NHN엔터테인먼트 등으로 구성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정상적으로 출범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에 명시된 은산(銀産) 분리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은산 분리 규정이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게끔 한 것을 말한다. 인터넷전문은행도 관련법에 따라 은행에 포함되기 때문에 은산 분리 규정이 적용된다. 정부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주도해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은산 분리 완화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각 컨소시엄의 주축이 된 ICT 기업들이 은행 지분을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야당이 은산 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통과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 19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호 인터넷전문은행 타이틀을 손에 쥐더라도 당장 당국이 예상하는 대로 ICT 기업이 중심이 돼 사업을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기존 은행들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이 워낙 잘 갖춰진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얼마만큼의 차별화를 이뤄낼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결국 기존 대기업들이 우회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은산 분리는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하에 만들어놓은 장치인데,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이라는 명목 아래 이러한 견제 장치를 없애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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