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카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 윤희웅 |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
  • 승인 2015.10.14 15:53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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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친박의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 반기문 총장의 대선 경쟁력

‘친박’엔 카드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워낙 오랫동안 친박계의 유일한 대중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으로 인해 세력이 형성된 것이어서 박 대통령 이외의 인물이 부각될 기회가 없었다. 또 박 대통령은 후계자 또는 2인자를 두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나오기 힘들었다.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친박계는 매우 견고한 결집력을 보여왔지만,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 이외의 대중 정치인을 남기지 못함으로써 현재 차기 대권 구도에서 ‘비박계’에 밀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 세력의 위상은 미래 권력의 가능성에 비례하는데, 친박계가 미래 권력 대안을 갖지 못해 여당 내에서 비박계와의 맞대결에서 번번이 패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내에서 선출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대표 모두 친박계에 승리한 비박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2009년 8월17일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을 방문, 선친 성묘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비박계의 구심인 김무성 대표가 당·청 간 대립에서 매번 후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박계가 당의 헤게모니를 잡았다고 평하진 않는다. 또 친박계의 미래가 밝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차기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 주자가 없으면 일시적인 전투에선 승리할 수 있지만 계파의 세 확대는 어렵다.

국정 수행 능력 평가 문턱은 넘어서

그런 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 입장에선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다. ‘정치적 양자(養子)’를 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야당엔 차기 주자가 많아 반 총장의 진입 공간이 좁다. 반 총장으로서도 대선에 마음이 있다면 출입문을 여당 쪽으로 내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은 이미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으니, 마땅한 대안이 없는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하다.

반 총장의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추석 직전 SBS-TNS의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차기 대통령감으로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꼽혔다. 응답자의 21.1%가 반 총장을 선택했다. 김무성 대표는 14.1%,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11.2%, 박원순 서울시장은 10.1%,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6.3%였다.

통상의 조사에서 선두권을 형성하는 김 대표, 문 대표, 박 시장을 10% 초반대로 주저앉혔다. 20%를 넘은 인물은 반 총장이 유일했다. 반 총장은 현재로서 정치적 이념을 드러낸 바 없다. 어느 정당에도 몸담은 바 없다. 여권 성향층과 야권 성향층 모두에게 거부감이 적다. 대한민국 역사상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등극했고,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현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기 때문에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도 어필하는 요소다. 그래서 진보층과 보수층이 아닌, 정치적 관심도가 낮은 중도층에서도 호감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과제를 실현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머니투데이-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최근 1위에 올랐다. 단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물은 조사다. 향후 시대정신에 맞는지, 또 그러한 과제를 실현할 역량이 있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이 조사에서 반 총장은 28.5%였다. 2위는 김무성 대표로 16.6%, 3위는 박원순 서울시장 15.1%, 4위는 문재인 대표 13.0%, 5위는 안철수 의원 6.0%, 6위는 유승민 의원 5.1%였다.

세부 분야별 국가과제 실현을 위한 적합 인물 조사에서도 남북 평화와 통일, 국민 통합 분야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국가과제를 실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반 총장이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반 총장 지지율이 정치 불신에 따른 반사 효과에 의한 것만이 아님을 의미한다. 최근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이라 하더라도 국정을 수행할 역량이 있는지를 중시하는데, 일단 반 총장이 이 문턱은 넘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향후 시대정신이 통일로 모이면 반 총장은 더 주목받을 수도 있다.

‘독립변수’ 아닌 ‘종속변수’라는 한계도

물론 명시적으로 반기문 총장을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가 차기 주자로 내세울 것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다른 인물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대중 정치인은 인위적 부양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대통령 후보는 민심이 반응해야 가능하다. 권력이 낙점한다고 해서 대중이 반응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친박계 인물로 차기 주자를 만든다는 시나리오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반 총장 카드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대개 현재 정당 소속의 인물이 아닌 경우 정치적 시련이 오면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고정자산 즉 지지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이념이든, 세대든, 지역이든 말이다. 그런데 반 총장은 충청 출신이다. 이완구 카드를 잃은 충청권에서 새롭게 나타난 대안을 단단히 부여잡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반기문 카드가 독립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스로 대선 주자로 나설 순 없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내년 12월31일에 마치는데 그때는 대선이 1년도 남지 않게 된다. 스스로 제3 후보로 나서면 양당 중심으로 지지층이 결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지율은 정체될 수 있다. 정당을 만들 시간도 부족하다. 또 가령 새누리당에 들어가 당내 경선을 거칠 경우 불확실성이 크다. 이미 다른 대선 주자들이 당원들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 국민의 지지율만 믿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다가는 불쏘시개 역할만 할 수도 있다.

스스로는 못한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서 만들어야 한다.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인 것이다. 박 대통령 측에서 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김 대표가 차기 주자로서 반 총장이 퇴임하기 전까지 입지를 더 강화하느냐 여부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친박계에서 다른 카드를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층을 김 대표가 흡수한다면 반 총장이 들어올 틈은 없어진다. 또 내년 총선 전후에 친박계가 탐낼 수 있는 새로운 주자가 잠룡들 중에서 경쟁력을 증명해 보이며 나타나느냐 여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실 정치에서 검증된 인물이 조기에 나와준다면 친박계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현실 정치의 장에서도 그의 별명인 ‘기름장어’처럼 장애물을 피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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