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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는 좌우명으로 로마 번영기 열다

안정기 글로벌 제국의 ‘팍스로마나’ 운영체제 확립한 아우구스투스

김경준 |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ㅣ . | 승인 2015.10.14(Wed) 16:32:26 | 13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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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후계 구도는 예수에서 베드로,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 가는 것입니다. 성격상 상반되는 인물이 전임자의 혁명을 완수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시골마을에서 출발해 600년간의 축적 과정을 거쳐 글로벌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에 걸맞은 지배 구조를 구축하려 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4년 3월15일, 56세에 원로원에서 살해되었다. 하늘은 카이사르에게 새로운 체제의 그랜드 비전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으나, 상반되는 성향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충실한 후계자를 보내주는 운(Fortuna)을 내렸다.

아우구스투스는 32세에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77세에 사망하기까지 45년간 최고 권력자로 카이사르의 구상을 착실히 추진해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일컬어지는 200여 년간의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좌우명에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치밀한 체제 건축가였던 그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1863년 로마의 북쪽 프리마 포르타에서 발굴된 아우구스투스상. ⓒ REUTER

아들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죽은 이후에 공개된 그의 유언장에는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입양해 후계자로 삼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제2 계급인 기사 계급 출신의 18세 젊은이였다. 어머니가 카이사르 누이의 딸로서 외가 쪽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카이사르를 따라 스페인 전투에 참전한 경력이 고작이었다. 카이사르가 지명한 후계자라는 명분 외에 실질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풋내기가 상대했던 이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그는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의 부하로서 명성을 높인 장군으로, 강력한 정치·군사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40대 초반으로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절정의 시기였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명분 하나를 기반으로 14년간 차근차근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고 군사적 기반을 강화해 악티움 해전(BC 30년)에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한 안토니우스에게 대승을 거두고 로마의 최고 권력자로 올라섰다.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을 외견상 예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약화시키는 치밀한 전술을 구사했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 후속 처리가 완전히 종료된 BC 27년 1월13일, 공화정 체제의 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해 원로원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 원로원은 사흘 후인 1월16일,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신성한 자)라는 존칭을 부여하기로 결의했다. 외견상으론 과두정(寡頭政)인 원로원 체제의 복귀를 선언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행정 최고위직인 집정관(콘술)과 군사통수권(임페라토르)의 권한을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1인자(프린켑스)의 칭호에 아우구스투스까지 부여된 그는 원로원 체제 존중이라는 대외적 명분 아래 1인 통치의 실질적 권력을 확립해 안정적 체제의 기반을 확보하는 절묘한 정치적 균형점을 찾았다.

카이사르가 기획하고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로마제국 운영체제는 행정·세무·군사와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에 이르는 전반적 개혁이었다. 원로원 재편성 직후 상시 조직으로 제1인자 보좌위원회(콘실리움 프린케피움)를 창설했다. 이전 원로원 체제에서는 주요 사안이 발생하면 회의가 소집되어 토의와 의결을 거치면서 시간이 지연되고 효율성이 떨어졌으나, 일종의 내각인 상시 조직은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외견상 원로원 체제를 존중해 추첨을 통해 원로원 의원을 참여시켜 정치적 불만의 소지를 줄이는 무마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아가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로 확대된 로마의 치안을 확보하기 위한 경찰 조직과 화재에 대비하는 소방 조직도 신설해 거대 도시에 상응하는 행정 지원 체제를 확립했다.

체제 안정의 핵심은 세금제도였다. 로마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했던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이 평화에 이르는 길은 무거운 과세를 통한 약탈 행위가 아니라 가볍고 공정한 과세에 있다고 믿었다.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도 ‘넓고 얕게 세금을 걷는 것’이 공명정대한 세제라고 생각했다. 먼저 BC 28년에 세금 징수를 위한 호구조사(켄수스)를 실시해 세원을 파악하고 세제를 확립했다. 로마 시민에게는 직접세인 ‘노예해방세’와 상속세 5%, 간접세인 관세와 소비세 각각 5% 미만이 부과되었다. 로마 시민이 아닌 속주민은 직접세인 속주세가 수입의 10%로 부과됐고, 기타 직접세인 노예해방세와 상속세는 면제됐다. 로마 시민은 일상생활에서 관세와 소비세를 합쳐 2.5~6% 수준의 간접세만 부담했고, 사유가 있을 때 노예해방세와 상속세를 부담하면 충분했기에 납세자 입장에서 굳이 탈세와 절세에 애쓰기보다는 당당하게 내는 것이 유리했다.

또한 국세청을 신설해 세금 징수 방식도 개선했다. 이전 공화정 시절에는 민간이 세금 징수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써 과잉 징수에 대한 갈등이 반복되었으나, 이를 황제가 임명하는 국가공무원이 직접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무엇보다 로마는 이후 200년이 넘도록 일정한 세율을 유지하면서 체제 안정을 이루었다.

이탈리아 역사의 도시 로마, 옛 황제들의 공회장이 이어져 있는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 ⓒ 연합뉴스

낮은 세율의 작은 정부 지향

전통적으로 로마가 중시해온 도로·상하수도·공공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의 대대적 확충은 시민 생활 향상과 제대 군인의 취업대책이라는 일석이조의 정책이었다. 제정 시대의 로마군 명장 코르불로의 “로마 군대는 곡괭이로 싸운다”는 명언처럼 로마 군단병 전원이 토목기사이자 인부였고, 작전에 필요한 교량·도로 등의 건설을 모두 군대 자체에서 수행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군대를 감축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제대 군인들을 다양한 사회간접자본과 공공 건축물 건설에 투입해 판테온, 아그리파 목욕탕, 비르고 수도, 마르스 광장을 비롯해 제국 전역의 도로·상하수도·교량 등 다양한 기반시설을 건축했다. 낮은 세율의 작은 정부를 지향했기에 부족한 자금을 개인 재산과 황제 속주(屬州)의 수입을 투입해 “벽돌의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의 로마를 후세에 물려준다”는 평을 얻었을 정도로 로마의 면모를 일신했다.

위대한 기획자 카이사르에 뒤이은 위대한 실행자 아우구스투스는 확장기가 지나고 안정기에 들어선 거대 제국 로마를 운영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와 시스템을 주도면밀하게 구축했다. 그 자신 카이사르보다 군사적 재능과 외교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인정했지만, 이를 아그리파와 마이케나스라는 2인의 조력자로 보완했고, 정책의 기본은 사후에도 충실히 계승되어 로마는 명실상부한 보편 제국 번영의 시기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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