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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잡겠다던 ‘물수능’ 반수·재수생만 늘렸다

오락가락 입시 정책이 사교육 의존도 더 높여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5.10.14(Wed) 16:46:23 | 13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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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공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이제 애한테 (학원비로) 돈이 얼마 들어가는지 계산도 안 해요. 그냥 마이너스 찍는 거죠.”

한 시간여의 전화통화로 뜨거워진 수화기 너머로 연신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수능까지 앞으로 한 달, 고3 학부모 이정연씨(가명·54)는 “한 달 교육비가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이과생인 딸은 치열한 성적 경쟁 속에서도 늘 전교 5위 안에 들던 ‘모범생’이었다. 그런 딸이 지난 9월 치러진 모의평가에서 전교 30등을 찍었다.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진 9월 모의평가는 난이도 하락으로 과목별 만점자가 속출하고,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는 한 문제만 틀려도 1등급이 안 나왔다. 좌절한 아이에게 이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했다. “괜찮아, 반수하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실적으로 돈 계산을 해보면 답이 안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 부부가 고3 자녀에게 들이는 학원비는 한 달에 200만원 선이다. 수능 대비 인터넷 실전모의고사가 과목별로 회당 2만5000원, 학원 시험장에서 보는 모의고사는 회당 3만원이다. 수능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일주일에 과목당 한 번씩은 모의고사 문제를 푸니까 이 비용만 벌써 110만원이다. 학원 강사의 문제 풀이까지 들으면 비용은 두 배로 뛴다. 여기에 변별력 강화를 위한 과학탐구 영역 학원비용으로 60만~80만원이 추가된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과외까지 하면 한 달 사교육비는 3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고3 수능 모의평가가 시행된 9월2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금옥여고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에 자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무원인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지출이지만 어쩔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은 혼자 공부하려 해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정부가 EBS 교재의 수능 연계율을 70%로 높이면서 문제집 시장이 EBS로 ‘천하통일’ 됐어요. 이젠 학원에 가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를 접할 길이 없어요.”

쉬워도 너무 쉬워

다가오는 11월,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번의 ‘물수능 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9월 모의평가에서처럼 ‘쉬운 수능’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교육 당국의 발표가 나오면서 수험생과 학부모, 일선 학교 교사들은 대입 전략을 두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위권 학생은 상위권 학생대로, 중·하위권은 중·하위권대로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한 자사고 진로진학부 상담교사는 “상위권 학생은 한두 문제로 등급이 밀리고, 중·하위권 학생도 웬만한 노력으로는 높은 등급을 받기 힘들어졌다”며 “도대체 누굴 위한 수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장관 황우여)가 2013년 8월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을 공표한 이래 2번의 수능이 치러졌지만, ‘물수능’ 논란은 매해 되풀이됐다. 수능 난이도 조절로 사교육비용을 절감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던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정부의 대입 정책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신만 쌓여가는 모양새다. 문제는 쉬운 수능 정책이 ‘사교육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란 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다.

올 초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의식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초·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2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 감소했다. 정부는 “(사교육비 총액이)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물가 상승분과 학생 수 감소분을 반영하더라도 전년 대비 감소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교육부 내부에선 정부의 대입  정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2015년, 수험생 교육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취재기자가 만난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한목소리로 “수능 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의 성격만 변했지 전체 파이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쉬운 수능 도입 이후 대입 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실전모의고사’ 학원의 증가다. 자녀가 서울의 외국어고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부모는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 수능이 사실상 ‘실수 안 하기’ 경쟁이 되면서 과거의 문제 풀이 능력 향상 위주의 수업 대신 실전 연습 위주의 실전모의고사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대형 입시학원에서 모의고사에 소속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끼워 팔면서 회당 3만~5만원 정도 받기 때문에 과목별로 꾸준히 문제 풀이를 하는 학생으로선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반수·재수생 시장 키웠다

쉬운 수능 이후 또 하나 달라진 사교육 풍속도는 반수·재수생의 증가다. 2016 수능시험 원서 접수 결과, 재학생은 전년에 비해 1만2976명 정도 감소한 반면, 반수·재수생은 4551명 늘어났다. 전체 응시생 가운데 21.6%를 차지한다.

반수·재수생의 증가가 모두 쉬운 수능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수·재수의 기회비용이 줄어든 부분이 있다. 상위권 수험생들이 고득점을 받기 위해 투자해야 할 시간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지방 의대에 합격한 후 현재 휴학 중인 대학생 박상희씨(19)는 “수능이 워낙 쉬워져서 6월부터 준비해도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3 학생들은 재학생에게 유리한 수시전형으로 몰리고 있다. 수시는 수능 점수만으로 합격자를 뽑는 정시와 달리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등 서류 위주로 평가된다.

사교육 시장은 여기에도 파고들었다. 높은 교과 점수를 내기 위해 내신성적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을 대신해 ‘임팩트 있는’ 자기소개서를 써주거나, 고1 때부터 스토리 있는 ‘스펙’을 만들어주는 입시 대행업체들이 등장했다. 이들 업체는 ‘관리’를 의뢰하는 학부모·학생들의 비밀을 철저히 유지하며 대개 알음알음으로 운영되고 있어,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입시 대행 알바를 하는 A씨(42)는 “이쪽 일은 정해진 기준이라는 게 없어 선생님이 부르는 게 값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유명 고교생 대상 학술지에 실을 논문을 대필해주는 대가로 성공수당을 포함해 8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상대로 하는 ‘입시 컨설팅’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유명 강사나 대형 학원의 입시실장들이 진행하는 입시 컨설팅에 한 번 참가하는 데 드는 비용이 3만~5만원이다. 일대일 상담이라도 받으려면 금액은 훌쩍 뛴다. 무료 입시설명회가 열리는 날이면 해당 학원 앞엔 순서를 기다리는 학부모들로 길게 줄이 늘어선다. 학부모들은 “대입 정책이 자주 변화하고 대학별로 다양해져서 비싸도 (컨설팅을) 안 받을 수가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사교육 시장은 수험생·학부모들의 불안감 속에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능 난이도 낮다고 학원 끊는 건 아냐

물론 쉬운 수능이 많은 학생에게 사교육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측면도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없는세상의 안상진 부소장은 “쉬운 수능의 긍정적 효과가 분명 있지만, 사교육비 절감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서열문화가 존재하고 대입에서 상대평가로 매겨지는 성적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한 사교육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입 정책이 바뀐다고 가계당 사교육비 지출 비중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교육개발원 관계자는 “한 가정에서 지출하는 사교육비 비중은 대체로 일정하다”며 사교육비가 수능 난이도 여부보다는 가계 소득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현실에서 수능 난이도와 사교육 시장은 별개라는 건 누구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잘 느끼고 있다. 2014년도 교육부의 ‘사교육비·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부모가 가장 많이 지목한 사교육 증가의 원인은 ‘경쟁 위주의 사회 구조’(75%)였다. 정부는 수능 난이도를 대폭 낮춰 과도한 학업 경쟁을 식히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대입 위주의 교육과정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 없인 그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과)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고려한 좀 더 안정적인 입시 대책이 필요하다”며 “사교육이 성적 경쟁이라는 교과 구조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 자체를 줄이려 하기보다는 대입 코스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불필요한 혼란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발생을 줄이는 게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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