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1’로는 불가항력 ‘2 대 1’이면 승산?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10.22 13:39
  • 호수 13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反박근혜 연대설’

“‘무대’(김무성 대표)하고 ‘유대’(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손을 잡는다고? 글쎄.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공통분모가 있긴 해도 두 사람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다만, 혹시라도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그때는 정두언·진영 같은 사람들이 같이한다는 확신이 섰을 때일 텐데, 그리되면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굉장히 껄끄러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이 몇몇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공천 룰 논란의 와중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SOS(긴급 구조 요청)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다.

6월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靑ㆍ親朴의 일방통행이 ‘金-劉 연대론’ 불러”

그는 두 사람이 이른바 ‘반(反)박근혜 연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같은 움직임이 구체화할 경우 정치적 파괴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염두에 둔 ‘반박(反朴) 연대’ 가능성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김 대표가 친박계와의 ‘공천 전쟁 1라운드’에서 줄곧 밀리는 와중이었다. 그는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이후 줄곧 내년 총선 공천을 오픈프라이머리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 차단 의도로 간주해 강력 반발했고, 야당도 공천 혁신안을 통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외면했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자신의 말이 부메랑이 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선거법 개정을 통한 오픈프라이머리 실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공개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친박계는 집단적으로 김 대표를 압박했다. 김 대표 측은 이때를 전후해 유 전 원내대표 측에 직간접적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친박계가 TK(대구·경북) 의원들을 대거 물갈이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유 전 원내대표 측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 전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그와 가까운 의원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소문이 매일같이 쏟아졌다.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대구 지역 의원은 “지난 9월7일 박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하면서 현역의원들을 단 한 명도 동행시키지 않은 이후 우리는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깊은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김무성·유승민 연대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 역설적이게도 청와대·친박계의 일방통행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친박계가 김 대표를 향해선 오픈프라이머리를 포기하게 만들고,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해선 TK 물갈이의 대상으로 만들자 이들 두 사람의 연대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 실제로 손을 잡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실 유 전 원내대표 측에선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보인다. 한 측근 의원은 “청와대가 김 대표에 대해 신뢰가 없다고들 하는데, 전혀 다른 이유이겠지만 우리도 비슷하게 본다”며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도 그렇고 ‘우선추천제’ 논란도 그렇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접은 뒤의 행보를 보면 결코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 주장을 접은 이후 가능한 선거구 모두에서 100% 여론조사 공천을 실시하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호기롭게 꺼내들었지만 금방 물러섰다. 게다가 ‘변형된 전략 공천’으로 평가받는 우선추천제를 먼저 언급함으로써 “내가 대표로 있는 한 전략 공천은 절대 없다”던 배수진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월29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측근인 이혜훈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김무성 대표 지원을 요청받고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한 건 이 같은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영남권 비박계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김 대표가 최소한 공천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의기투합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고 했다.

“두 사람 성향 달라 총선 후엔 다시 경쟁할 것”

물론 총선이 다가올수록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가 전략적으로 손을 맞잡을 개연성은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이번 공천을 통해 박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 기반 마련과 함께 퇴임 이후의 안전판까지 도모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한 만큼, 김 대표나 유 전 원내대표는 싫든 좋든 주류 그룹과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 공천 과정이 격해질수록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 모두 사실상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선 이미 박 대통령 주변에서 “김 대표로는 대선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거나 ‘반기문 대망론’이 나오는 터라 내년 총선을 ‘김무성 선거’로 만들어 승리하지 못하면 이후를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유 전 원내대표 역시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정치적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 시점에선 친박·주류 그룹이 순순히 그의 정치적 위상을 인정해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유 전 원내대표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TK 지역 유권자들에게 ‘미래 권력’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활로가 열릴 수 있는 것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김무성·유승민 두 사람이 손을 잡더라도 ‘플러스알파’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두언·진영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합리적·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진영으로서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총선 공천만을 염두에 둔 연대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경우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가 길게 한배를 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경제·사회 분야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김 대표와 달리 유 전 원내대표는 중도·개혁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당장 여권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만 해도 김 대표와 달리 유 전 원내대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정치적 지향과 노선이 다른 김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가 하나로 뭉치기는 쉽지 않고, 더구나 그 대상이 박 대통령이라면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설령 청와대와 맞서 단일대오를 형성하더라도 총선 이후엔 곧바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