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 김무성·문재인 “나쁘지 않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11.05 14:08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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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룰’ 등으로 수세 몰렸던 두 사람 다 정치적 이득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10월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예정고시를 강행한 후 정치권은 보름 넘게 국정 교과서 문제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국정 교과서 정국’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역사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야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하는 11월5일까진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여야 간 극한 대치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여야는 ‘역사 전쟁’을 사실상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전초전 성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지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정 교과서 예정고시 발표를 앞두고 여야가 날 선 공방을 주고받던 10월10일 “청와대는 이미 총·대선 준비를 마쳤다. 이념 논쟁, 친박(친박근혜) 강화, 비박(비박근혜) 무력화가 동시 진행된다. 노무현·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해)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을, 친일 독재 국정 역사교과서로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어대는 보수 집결책”이라며 “싸우지 않으면 영원한 죄인이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선지 여야는 “이번 싸움에서 밀려선 안 된다”는 판단하에 대대적인 여론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여야의 홍보전은 총·대선을 방불케 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10월23일 대구에서 ‘국정 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 연합뉴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0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역사 바로 세우기’ 토론회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여야 간 극한 대치가 여야 각각의 내부를 결집하게 만들면서 그동안 ‘공천 룰’ 등을 두고 보여왔던 각 당의 분열상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간 분위기다. 이런 여건 속에서 그간 ‘공천 룰’ 등을 놓고 수세에 몰려 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리더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역사교과서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역사 전쟁’으로 두 사람만 정치적 이득을 얻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정 교과서 둘러싼 여야 전략과 셈법

하지만 각자의 전통적 지지층 결집 효과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고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다루는 여야의 전략과 셈법은 달라 보인다. 우선 새누리당은 ‘올바른 역사 세우기’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라는 구호를 내걸고 보수층 결집을 유도하는 동시에 경제활성화법 및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것은 물론 민생 행보를 보이면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보수층의 결집을 통해 내년 총선에 대한 기반을 닦고, 민생 행보 등을 통해 ‘국정 교과서 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야당과 대비시켜 중도층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11월5일 정부가 확정고시를 하게 되면 경제 활성화 및 민생 챙기기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11월5일 정부가 확정고시를 하게 되면 사실상 마무리된다”며 “이후엔 4대 개혁 완수 및 청년 일자리 창출, 경제활성화법 등을 중심으로 한 ‘민생 프레임’으로 빠르게 전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기반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여야 간 예결위에서 제대로 (예산안을) 심의 못하고 기한을 넘겨버리면 정부안대로 본회의에 상정돼버리기 때문에 야당도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야당도 나름의 투쟁을 하더라도 예산국회를 포기하지 않는 투 트랙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울러 경제활성화법 등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오히려 ‘발목 잡기’라는 공세를 펴는 데 좋은 소재라는 점이 새누리당에 전략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김철근 동국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향후 예산안 정국에서 여권이 뚜렷하게 주도할 의제가 없는 상황에서 야당이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거부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공세를 피해가기 좋은 소재”라며 “새누리당으로선 밑질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 전초전…여야, 지지층 결집 효과

반면, 새정치연합은 ‘국정 교과서 저지’를 앞세워 여권에 강하게 맞서면서 야권 지지층을 하나로 묶는 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그간 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던 신당론을 차단하고 새정치연합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일단 정부의 확정고시 전까진 ‘국정 교과서 반대’ 여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올인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10월27일 1년 2개월 만에 옥외집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10월28일부터 ‘국정 교과서 반대 홍보버스’를 타고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전에 돌입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핵심 당직자는 “지금으로선 최대한 국정 교과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여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극대화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정부의 확정고시 이후엔 국정 교과서 투쟁에 대한 불씨를 살려가면서 여권의 ‘정쟁 프레임’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민생 행보에도 주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문 대표가 10월2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의 개선 방안을 백지 상태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도 확정고시 이후의 싸움을 대비한 포석으로 읽힌다. 문 대표는 정부의 확정고시 강행 시의 대응책과 관련해선 “확정고시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서명운동, 역사교과서 체험관 운영, 버스투어 지속 △헌법소원, 교과서 집필 거부 운동, 대안 교과서 만들기 운동 등도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다. 문 대표는 나아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좀 더 비상한 각오와 결단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여권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민생 행보에도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걸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10월29일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한 경제5단체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초 이날 간담회에 불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 원내대표가 관련 보고를 받고 “민생을 챙기는 데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며 참석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난 10·28 재·보궐 선거 결과가 향후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당장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선 승리를 발판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민생 활동을 함께 하는 투 트랙 행보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반면, 새정치연합 내에선 문 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이 국회의원 및 광역단체장 선거가 없어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진 탓에 큰 의미를 둘 것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변수에도 영향을 받는 정치권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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