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간첩 인정하고 징역 살라 회유했다”
  • 유지만·박준용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4:27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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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조작 사건’ 대법원 무죄 판결 받은 유우성씨

“위 사건의 상고를 기각한다.”

3년이 걸린 ‘간첩 조작 사건’이 마무리됐다. 대법원은 10월29일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유우성씨의 무죄를, 국정원의 증거 조작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확정했다. 이로써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한 편의 조작극으로 결론 내려졌다.

유우성씨는 이날 오전 10시15분쯤 옅은 갈색 체크무늬 셔츠에 정장 차림으로 아내 김자연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늘 가지고 다니는 검은색 가방을 등에 멘 채 팔짱을 끼고 법정 뒤편에 서서 판결을 지켜봤다. 무죄 판결이 확정되는 순간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후 법정을 나섰다.

법정에서 나온 유씨는 한동안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후 일어섰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에는 간첩 혐의를 받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 듯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월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카페에서 이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은 유우성씨를 만났다. ⓒ 시사저널 최준필

“검찰과 국정원이 회유…주변 도움으로 싸워”

시사저널은 대법원 판결이 끝난 후 서초동 법원 인근의 커피숍에서 유씨와 인터뷰했다. 유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웠던 사법기관의 횡포가 밝혀져 다행”이라면서도 “아직까지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처음 체포된 후 검찰과 국정원 측에서 ‘간첩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징역을 사는 게 더 낫다’고 회유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더 이상 이런 조작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국정원의 환골탈태가 말로만 끝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는데 심경이 어떤가.

떨려서 판결이 난 다음에 앉아서 생각했다. 3년 가까이 이 사건이 나를 괴롭혔는데 법정에서 ‘기각’이라는 (대법관의) 한마디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수사기관이 괴롭히던 게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인데 하고, 욕이 나오더라. 하지만 기자회견 앞두고 있으니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흥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항소심이 동생의 불법구금 등 위법 증거 수집을 인정했고, 대법원이 확정한 것은 역사적인 판단이다. 대법원이 수사기관의 불법을 감싸주는 판결을 할까 봐 걱정했다. 사실 그대로 판단해주시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2013년 1월 체포되던 당시는 어땠나.

당시 수사 당국이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나를 체포했다. 그때도 내용은 몰랐다. 얼마 지나고 나서는 언론에 나온 대로 수사받고 있었다. 내가 탈북자 명단을 수집해서 북쪽에 넘겼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활동하는 탈북자 봉사단체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넘겼다는 건데,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 가지고 있는 자료였다. 어이가 없었다. 또 체포된 직후 약 열흘간 변호사 조력 없이 혼자 조사를 받았다.

구속되고 조사받을 때 부당한 대우가 있었나.

구속된 후 변호사를 선임하고 불러달라고 했는데 무시당했다. 변호사가 안 왔다. 그런 상태에서 조사가 됐다. 동생(유가려씨)이 나를 간첩이라고 한 부분에 대해 이건 거짓말이라고 밝히고 대질신문을 수백 번 요구했는데도 무시했다. 한 번이라도 대질조사가 이뤄졌으면 더 빨리 진실이 밝혀졌을 것이다.

“가혹행위로 동생에게 거짓 진술 하도록 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 당국의 회유는 없었나.

조사받을 때 검찰이 나에게 “간첩 혐의를 인정하면 1년 6개월이나 3년이면 끝나는데 왜 부인하느냐”고 얘기했다. 검찰은 대법원에서 무죄 나려면 3년 이상 걸릴 테니 간첩 혐의를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설득했다. (혐의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1년 6개월에서 2년, 3년 정도 징역 살고 나오는 게 앞날을 위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끝까지 부인하면 재판만 길어지고 나만 고생한다고 회유했다. 그때 검찰과 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안 해준 결과로 지금도 보복 수사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동생 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우성씨와 다른 진술(간첩 혐의가 있다는)을 했다.

확신컨대 어느 누구도 독방에 6개월 동안 갇혀 있는 상황에 처하고, 나간다는 보장이 없으면 상대방이 원하는 진술을 하게 돼 있다. 안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국정원은 가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진술을 해주면 오빠를 만날 수 있고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보장해준다고 했다. 또 간첩이라 인정한 탈북자 사례를 들며 그들이 잘살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얘기했다. 게다가 가려를 폭행했고, 몸에 ‘회령 화교 유가려’라는 종이를 붙여서 사람들 앞에서 끌고 다니며 수치를 줬다. 21세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믿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동생은 그렇게 불법적으로 구금된 상황에서 그런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려씨가 오빠를 가리켜 간첩이라고 진술했다고 들었을 땐 어땠나.

나는 동생이 그렇게 진술한 것을 안 믿었다. 진술서를 보는 순간 이건 잘못됐다고 확신했다. 진술을 읽어보면 동생이 수도 없이 번복한 흔적이 있다. 진술서에 동생이 편지를 쓴 게 있는데 얼마나 울면서 썼으면 종이가 우그러져 있더라. 동생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거다. 동생은 합신센터를 나오자마자 오빠는 간첩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합신센터 안에서 있었던 위법 수사도 말했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유우성씨가 10월29일 대법원에서 선고를 받고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1, 2심에서 검찰과 국정원이 조작된 증거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1심 때는 처음으로 내가 간첩이라고 증언한 사람이 국정원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고 증언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를 해달라고 했는데 1년 넘게 안 한 상황이다. 특히 항소심 때 검찰 측이 제출한 (북한과 중국) 출입경기록 서류 9개가 조작됐다. 항소심에서 검찰이 제출한 서류가 거의 다 조작된 것이다. 분명 아닌데 정부 이름을 건 출입경 서류가 나올 때 황당하더라. 당시 그쪽에서는 내가 조작했다고 했다. 조작에 대한 것들에 대해 죄를 묻겠다고 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증거 조작을) 관행적으로 해온 게 있기에 쉽게 하지 않았겠는가. 어떻게 한 사람 인생을 수사기관 입맛에 따라 주무를 수 있나. 너무 공포스럽다.

항소심 끝나고 검찰이 다른 혐의로 기소했다.

외환거래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다. 외환거래법 위반에 대해서는 2007년도부터 국정원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내가 통장을 빌려줬고 이를 통해 탈북자가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낸 것이 위법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해마다 3만명이 넘어오는데 북한에 돈 안 보내주는 사람 없다. 나는 통장 빌려준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고, 그때는 기소유예됐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서울시에 계약 공무원으로 취직한 것에 대해서다. 탈북자가 아닌데 왜 탈북자로 취직했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문제 됐으면 간첩 사건과 같이 기소했어야지, 불리하게 나온 간첩 사건 항소심이 끝나고 다시 기소하나?

간첩 혐의를 벗기까지 3년여 동안 어떻게 버텼나.

어렵고 힘들 때 변호사님들이 가족 이상으로 돌봐줬다. 변호사님들이 사비로 밥도 사주고 나를 데리고 다녔다. 지금 변호사님들 덕에 이 자리에 있는 거고 변호사님 없으면 내가 옛날 조작된 사건처럼 간첩이라고 돼 있을 것 같다. 대학과 대학원 선배도 검찰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기자들한테 제보해주고 교수님도 탄원서를 쓰는 등 후원을 해줬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제가 다닌 성당 신부님이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일주일에 두 번씩 와줬다. 힘들어서 ‘가족 없으니 자살할까’ 하는 나쁜 생각도 했다. 조사받으며 심장 쇼크 받아서 입원한 적도 있다. 죽는다고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거 같아서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진실을 밝히려 했다. 그때 그분들이 옆을 지켜줬다.

간첩 혐의 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쪽에서는 징계로 끝났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한 사람 인생을 그렇게 해놓고 사죄 한마디 없다. 동생까지 추가로 괴롭힌다. 법을 통해서라도 그분들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 사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지는 변호사님하고 상의하겠다.

이 사건 이후 국정원의 간첩 조작 행태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나.

국정원장이 그때 환골탈태를 한다고 했는데, 보위부 간첩 조작 홍 아무개씨 사건이 또 나왔다. 홍씨는 자식을 한국에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간첩 혐의를 인정했다가 사실과 다르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은 개선할 거라고만 하지 말고 수사 과정을 변호사, 인권단체에 투명하게 공개한다거나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올해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다. 하고 싶은 사회복지 쪽에서 일하면서 내가 받은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를 환원하고 싶다. 취직이 될지는 모르겠다. 항소심 끝나고 면접을 여러 곳 봤는데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들은 내가 사건을 겪었기에 같이하고 싶지만 아쉽다고 했다. 전공을 살려서 작은 곳에서라도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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