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존엄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5.11.26 20:33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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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1991년 2월,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자리 잡은 한 도시의 작은 마을이 술렁였습니다. 거리의 담벼락에는 ‘전쟁 반대 모임’에 주민들이 참여해줄것을 요청하는 벽보가 여기저기 붙었습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동네의 집들을 돌며 모임을 가졌습니다. 전쟁이 왜 나쁜지,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왜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등을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겨울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는 그렇게 풀뿌리 ‘반전(反戰) 인권 연대’가 탄생했습니다.

그 시절 인권 연대로 뭉쳤던 프랑스인들이 지금은 ‘슬픔과 위로의 연대’로 다시 뭉치고 있습니다. IS(이슬람국가)에 의해 극장에서 식당에서 무차별 테러를 당한 이웃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무려 120명 이상이 총격을 당해 사망하는 참혹한 일이 자신들의 바로 곁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깊은 충격에 빠진 파리는 이제 ‘반(反)테러’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IS의 테러가 반인륜적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야만적이고 비열한 공격을 가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파리 테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들은 양민들을 이유도 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IS 본거지에 대한 프랑스군의 공습이 전개되고 미국과 러시아도 IS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벼르고 있지만, 이 테러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설령 그들이 패퇴해 IS라는 국가 아닌 국가가 사라진다 해도 그것으로 마감될 전쟁이 아님은 이제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입니다. 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또다시 테러를 감행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의 공격 대상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국회가 테러방지법 처리를 위해 대화를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테러 방지를 새로운 공안 정국 조성의 빌미로 삼아서도 안 되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어선 곤란합니다.

IS의 테러는 가뜩이나 어려운 유럽의 난민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벌써부터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난민 유입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는 누구에게나 참혹한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대상은 난민과 같은 비무장 양민들입니다. 무고한 시민이 자신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질 일입니다.

이번 IS 사태는 우리에게 천인공노할 테러의 잔혹성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의 소중함 또한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고귀한 가치입니다. 생명의 존엄 앞에서는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 새누리당 의원의 “미국에서는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이 죽어도 10건 중 8~9건은 정당하다고 나온다”라는 발언이나, 11월14일 광화문광장에서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일은 우리의 현재를 다시 한 번 부끄러운 눈으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가볍게 혹은 하찮게 여긴다면 그런 행위 자체도 폭력일 수 있습니다. 생명이 곧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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