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수천억 원대 주식 편취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1.26 20:36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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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으로 취득한 부영 주식 240만주, 반납 약속 안 지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그룹 계열사인 광영토건에 귀속돼야 할 부영 주식을 편취한 의혹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과거 검찰 수사로 인한 재판 과정에서 비자금을 통해 취득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반환키로 한 주식을 은근슬쩍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렇게 편취한 주식의 가치는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간은 200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회장과 매제 이남형 전 부영 대표는 비자금 조성과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가욋돈 조성에 앞장선 이는 이 전 대표였다. 그는 비자금 조성 창구로 광영토건을 이용했다. 이 회사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파트 건설공사의 시공을 맡으면서 자사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위장 협력업체들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공사비를 과다 계상해 지급한 후 차액을 되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돈 270억원은 150여 개의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됐다. 이 가운데 150억원은 국민주택채권 매입 자금으로 사용됐다. 나머지 120억원은 부영의 유상증자 비용으로 투입됐다. 이를 통해 이 전 대표는 1998년과 1999년 사이 부영 주식 240만주(액면가 5000원)를 취득했다. 당시 전체 발행주식 1400만주의 17.14%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 전 대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더해 총 315만9320주(22.56%)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4월 안전실태 점검에 나선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오른쪽)과 성남 위례신도시 부영 아파트 신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뉴시스

부영 주식 양도 약속하고 형량 참작

이후 재판 과정에서 이 전 대표는 형량을 낮추기 위해 광영토건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했다. 먼저 비자금으로 매입한 국민주택채권을 광영토건에 양도했다. 부영의 주식 240만주도 광영토건에 넘기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를 위해 이 전 대표는 주주 명의 변경 신청서를 작성해 2004년 6월 재판부에 제출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해당 서류에는 ‘주식 소유자 이남형은 광영토건에게 횡령 피의 사건에 관한 피해 회복으로 부영에 출자한 주식을 액면가액으로 변제하기로 약정한다. 다만 금액 산정 기준은 이남형이 광영토건으로부터 인출한 금액을 부영에 출자한 금액으로 하며, 주식은 평가하지 않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횡령한 돈으로 취득한 부영 주식 전부를 양도해 광영토건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양형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2004년 12월 1심 판결에서 “이 전 대표가 비자금의 조성 및 횡령, 조세 포탈 등의 범행을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행한 점은 인정되지만, 공소 제기 후 이 전 대표 명의로 된 부영의 보통주식 240만주 및 국민주택채권을 광영토건에 양도했다는 점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후 부영 주식 240만주의 명의개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광영토건 감사보고서에서 부영의 주식 240만주가 넘어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또 부영의 감사보고서에서도 주식 이동은 발견되지 않았다. 2007년 말까지도 해당 주식은 이 전 대표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명의개서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소유권은 사실상 광영토건에 있다는 게 법조계의 견해다. 과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비상장사의 주식 양도는 지명 채권 양도의 일반 원칙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의사 표시만으로 성립된다. 이 전 대표가 주주 명의 변경 신청서를 작성함으로써 ‘양도 의사’를 밝힌 만큼 주식 양도의 효력이 발생해 부영 주식이 사실상 광영토건 소유가 됐다는 설명이다.

비자금을 통해 취득한 부영 주식 240만주를 광영토건에 양도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주주 명의 변경 신청서와 해당 주식이 이중근 회장에게 건네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각종 문건들.

그러나 해당 주식은 2007년 12월29일 돌연 이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다. 이 회장은 당시 부영 주식 494만3478주(35.31%)와 대화도시가스 주식 8만2600주(45.8%)가 자신의 차명 주식이라고 주장하며 명의 이전을 받았다. 이 회장은 주식의 명의를 변경하면서 주식 물납 형태로 830억여 원의 증여세를 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보유하던 주식 315만주 전부가 이 회장에게 넘어갔다. 여기에는 광영토건에 귀속시키겠다던 부영 주식 240만주도 포함돼 있다. 이런 사실은 이 회장이 2010년 자신이 납부한 증여세 830억원을 돌려달라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관련 소송 자료를 보면, 이 회장은 2007년 무렵 이 전 대표에게 자신의 차명 주식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전 대표가 2007년 12월29일 자신이 보유하던 부영 주식 315만9320주 가운데 226만4698주를 이 회장에게, 나머지 89만4662주를 이 회장의 사돈인 이 아무개씨에게 증여했다고 명시돼 있다. 재판 과정에서 광영토건에 양도하겠다고 약속한 부영 주식을 자신의 차명 주식이라고 주장하며 챙겨간 것이다.

문제는 이 시기가 재판이 진행 중이던 때라는 데 있다. 이 회장과 이 전 대표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온 건 2008년 6월이다. 이 당시에도 재판부는 이 회장이 부영 주식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일 재판부가 이런 사실을 인지했다면 재판 결과에 상당한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주식 명의를 변경하는 무리수를 둔 까닭은 무엇일까. 세정 당국에서는 당시 있었던 세제 개편과 연관 짓는 시선이 많다. 2008년부터 비상장 주식으로는 증여세 물납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제가 개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회장이 새로운 세제를 적용받는 상황에서 부영 주식을 가져오게 되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고스란히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세제 개편 하루 전인 12월29일 서둘러 명의를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챙긴 부영 주식 240만주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부영은 비상장사여서 시세가 형성돼 있지 않다. 다만 부영에서 2009년 12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물적 분할한 부영주택의 2010년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주당 가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물적 분할을 진행하면서 자산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계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부영주택의 순자산 가치는 적게 잡아도 3조8082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부영의 발행 주식이 모두 1400만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0년의 1주당 가치는 27만2015원인 셈이다. 여기에 물가상승률(30%)을 차감하는 방법으로 2008년 1주당 평가액을 환산하면 19만411원이 된다. 따라서 부영 주식 240만주의 2008년 가치는 4569억8640만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이 회장이 부영 주식을 가져가면서 광영토건은 해당 액수만큼의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영토건이 자신 소유의 주식을 회사의 수익으로 잡지 않는 바람에 탈세도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도 법인세율 25%를 적용하면 1142억4660만원이 광영토건이 납부하지 않은 법인세다. 여기에 무신고 가산세와 납부 불이행 가산세를 더하면 체납된 세금 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

“유상 양도, 광영토건이 매입 자금 마련 못해”

이에 대해 부영그룹 관계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어서 당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직원을 찾을 수 없다”면서도 “내부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광영토건에서 120억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주식 양도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앞서 전직 회사 직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이 회장을 고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며 “주주 명의 변경신청서가 유상 양도였고, 광영토건이 매입 대금 12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주식 양도가 무산됐다는 이 회장과 장 아무개 전 광영토건 대표의 증언이 일치했다는 점이 감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 회장이 차명 주식을 명의 이전하는 과정에서도 국세청으로부터 해당 주식이 명의신탁됐다는 점을 인정받았고, 탈세도 없었다는 판단도 내려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영그룹의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일 광영토건이 이 전 대표에게 120억원을 주고 부영 주식 240만주를 양도받게 되면, 이 전 대표가 120억원의 부당 수익을 보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부영의 주장대로 유상 양도일 경우라도 광영토건이 120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이득을 포기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시사저널은 11월19일과 20일 양일에 걸쳐 부영그룹 관계자와 수차례 통화를 하며 관련 의혹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부영 측에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사실을 확인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반복하다 20일 늦은 시간에 “과거 서류들을 뒤져보고 있지만 당시 사건에 대해 아는 직원이 없어 당장 확인은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부영그룹 본사. ⓒ 시사저널 포토
앞서 밝혔듯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2007년 12월 가족과 직원들 명의의 부영과 대화도시가스 주식이 자신의 차명 주식임을 주장하며 명의를 이전하면서 830억원의 증여세를 냈다. 이후 이 회장은 국세청을 상대로 증여세를 되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오랜 기간 법정 다툼을 벌여왔다. 도화선이 된 건 2009년 차명 재산을 탈세 수단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실명 전환 시 증여세를 부과하던 국세청 규정이 폐지되면서다.

이 회장은 그 직후인 2010년 2월 국세청을 상대로 부당 청구된 증여세를 돌려달라는 경정청구를 했다. 이 회장은 부영과 대화도시가스 주식이 동생인 이신근 동광종합토건 회장과 매제 이남형 전 부영 대표, 동서 이영권씨, 계열사 직원 조 아무개씨 등에게 명의신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배경에 대해 이 회장은 1978년까지 운영해오던 우진건설산업의 부도로 금융 거래가 정지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세청은 경정청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법무법인을 내세워 용산세무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실명 전환으로 인해 증여세를 냈던 주식은 사실 자신의 재산이었으므로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법정 공방 끝에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320억원 상당의 주식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회장은 추가 소송에 나섰고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571억원 상당의 주식을 돌려주라고 판시했다. 이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전액 반환을 취지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2013년 7월 기각됐다. 결국 나머지 260억원가량이 이 회장의 증여세로 확정된 셈이다.

국세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회장이 자신의 주식을 광범위하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보고 부영의 주식 변동 내역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국세청은 2013년 11월 부영그룹 일가를 상대로 부당무신고 가산세와 납부 불성실 가산세를 포함한 증여세 260억원을 통보했다. 증여세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가산세를 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부영은 국세청의 가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또다시 법무법인을 내세워 심판청구를 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최근 국세청 과세에 문제가 없다며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조세심판원은 10월2일 “이 회장이 차명으로 주식을 관리하면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부영의 주주 변동 상황을 숨겨왔다”며 “명의신탁 주식에 대한 증여세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기 때문에 가산세 부과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부영그룹 관계자는 “과거 국세청의 추징세금은 전부 납부했지만 이 회장 개인의 절세 차원에서 심판청구를 낸 것”이라며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지 여부에 대해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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