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 김현│뉴스1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09 23:53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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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최경환 복귀로 ‘비박’ 김무성과 공천 전쟁 본격화할 듯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2월1일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 관련 긴급당정회의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해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한 여권이 20대 총선, 나아가 19대 대선을 둘러싼 권력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각에 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장관,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장관 등 친박(親박근혜)계 핵심들이 속속 당으로 복귀하거나 복귀가 임박해지면서 당 내에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당 안팎에선 12월 중순부터 공천룰을 둘러싼 ‘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이었던 지난 12월2일까지 새해 예산안은 물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관광진흥법 및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주요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당력을 집중했다. 이로 인해 당내 친박계와 비박계 간 힘겨루기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예산전쟁’이 끝나자 당내 시선은 다시금 내년 총선 공천 룰로 돌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이번 12월에, 공천룰에서부터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친박계와 비박계 간 치킨게임식 혈투가 벌어지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친박계, ‘TK 물갈이론’ 등 비박계 압박

친박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유기준 전 장관이 8개월여 만에 장관직을 내려놓고 최근 당으로 복귀하면서 양측의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 전 장관이 당 복귀 직후 곧바로 당내 의원들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세 결집에 시동을 거는 것은 물론 김무성대표를 향해 각을 세우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유 전 장관은 12월2일 보도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이 내년 4·13 총선에서 많이 당선돼야 여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국민의 상식일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권 공천과 관련해선 “현역 의원을 비롯해 ‘상대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는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다”며 이른바 ‘TK(대구·경북) 물갈이론’에 힘을 실었다. 유 전 장관은 또 우선추천제도를 좀 더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당헌·당규대로 한정해 적용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주장을 반박했다. 유 전 장관은 최근 일부 사석에서 김 대표의 대권 주자 가능성에 대해 “여당의 후보는 개인 지지율로당을 견인해야 하는데, 지금 김 대표의 지지율은 당 지지율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유 전 장관이 해수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이끌었던 국가경쟁력 강화포럼은 유 전 장관의 복귀와 함께 친박계의 ‘진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다른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국가경쟁력 강화포럼은 12월 중순께 최 부총리를 초청하는 등 대규모 세미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예산안 처리로 사실상 마지막 과제를 마무리한 최 부총리가 조만간 단행될 개각으로 당에 복귀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최 부총리의 복귀로 뚜렷한 구심점 없이 산발적으로 김 대표와 대립하고 있는 친박계가 결집력을 강화한 다음 김 대표 측과 맞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이른바 ‘12월 거사설’도 재차 회자되고 있다. 다만, 최부총리 측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당은 내부 갈등이 있어선 안 된다”며 “총선까진 김 대표 체제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여기에 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참석차 해외 순방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김태호 최고위원이 대통령 특사 자격(조문 사절)으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국장에 다녀온 것이 뒤늦게 언론에 재조명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간 박 대통령의 특사는 친박을 넘어 이른바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을 인정받는 절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당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김 최고위원을 특사로 선택한 것은 그동안 김 대표 체제를 견제해온 김 최고위원에 대한 배려차원이거나 뚜렷한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계의 후보군으로 지목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맞서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非박근혜)계는 현재까지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친박계의 대대적 공세가 시작될 것을 대비해 그에 맞설 채비를 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김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내에서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히 소수”라며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공천하는 게 선거에서 이기는 길”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 대표는 사실상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가 무산된 이후 국민 참여 비율
을 70%까지 끌어올려 오픈프라이머리에 버금가는 상향식 공천제를 실시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예산 전쟁에 밀려 공천 룰을 결정할 당 특별기구 구성이 늦춰진 가운데, 김 대표는 황진하 사무총장이 특별기구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친박계와 대치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11월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선거구 획정이 지연된 데 따른 정치 신인 배려책의 하나로 공천관리위원회를 조기에 출범시키는 방안을 놓고 한차례 충돌한 이후 “특별기구 구성이 먼저” 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최근 김 대표의 주변에선 총선 일정 등을 들어 특별기구와 공천관리위를 동시에 출범시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에 더해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당의 공천 룰을 정하는 작업 또한 당연히 순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김 대표에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공천 룰을 논의하기 위해선 먼저 선거구 획정 문제가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12월 거사설’ 다시 회자

최근 비박계 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재차 불거지고 있는 것도 앞으로 개시될 주도권 싸움에서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비박계 중진인 정병국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야당은 야당대로 분열하고 갈등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갈등하는 이유는 공천권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약속대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의원 등 비박계가 박근혜 정부의 내각 및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진박’을 앞세워 TK 등 여권강세 지역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을 겨냥해 ‘험지 출마론’을 강조하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김 대표가 공천과 관련한 친박계의 공세를 무난하게 버텨내고 내년 총선을 대승으로 이끈다면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굳히겠지만, 반대로 총선에서 압도적 성적표를 받지 못한다면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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