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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가, ‘1부 리그’의 가치를

기업구단(부산) 잡고 1부 리그 올라선 시민구단(수원 FC)의 반란, K리그의 진정한 승강제 완성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15(Tue) 17:55:14 | 13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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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FC(흰색 유니폼)와 부산 아이파크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수원 FC가 승리를 거두면서 부산 아이파크는 기업구단으로는 처음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 연합뉴스

유럽에서 명문 클럽을 지칭할 때 최우선 기준은 역시 우승 트로피다. 동시에 또 다른 기준도 있다. 1부 리그에 얼마나 오래 잔류하고 있느냐 여부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아틀레틱 빌바오,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는 근래 돋보이는 성과를 남기지 못했지만, 창단 이후 줄곧 1부 리그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명문 클럽으로 인정받는다.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정도가 같은 기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팀들이다. 2부, 3부는 물론 지역 리그를 아우르는 5부, 6부 리그까지 구축돼 있는 유럽에서는 그만큼 1부 리그 개근상을 가치 있는 결과로 인정하는 것이다.

K리그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1부 리그와 2부 리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까지 운영된 기존의 16개팀 단일 리그 체제에다 새로 창단한 팀과 프로로 전환한 실업팀 등을 묶어 2013년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 14개 팀,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 8개 팀으로 구성된 상·하위 리그제를 도입했다. 2015년 현재는 K리그 클래식 12개 팀, 챌린지 11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1·2부 리그를 합쳐 총 23개 팀이 있어 팀 숫자 면에서는 프로야구(KBO)·프로농구(KBL)·프로배구(V리그)를 압도한다.


이 상·하위 리그제의 핵심은 승강제(昇降制)다. 승강제는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1부 리그와 2부 리그 사이로 팀을 오르내리게 한다. K리그는 클래식 최하위인 12위 팀이 챌린지로, 챌린지 우승팀이 클래식으로 향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정규 리그 종료 후 클래식 11위 팀과 챌린지 2~4위 팀 간 플레이오프의 승자가 홈앤드어웨이 방식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유럽·일본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방식을 참고해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완성했다.

승강 플레이오프, ‘승강제의 백미’ 호평

올해는 부산 아이파크(클래식 11위)와 수원FC(챌린지 3위)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4위 서울이랜드 FC와 2위 대구 FC를 연파하고 올라온 수원 FC는 기세를 몰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을 모두 승리하며 승격의 기쁨을 누렸다. 대한축구협회장인 정몽규 회장이 구단주인 현대산업개발을 모기업으로 하는 부산은 기업구단 최초의 2부 리그행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강등됐다.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이라는 대조적 성격의 팀이 치르는 승부는 엇갈리는 희비와 함께 화제를 모았다. 승강 플레이오프에는 ‘승강제의 백미’라는 호평이 따라붙었다.

승강제는 K리그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팀 운영에서 목표와 동기부여를 세분화했기 때문이다. 단일 리그 체제 당시 K리그는 모든 팀이 우승을 노리는 ‘이상한 리그’였다. 전 시즌 1위 팀 감독부터 최하위 팀 감독까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하나같이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순위표 가장 높은 곳 외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단일 리그의 맹점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각 팀들은 우승을 위한 선수 영입에 무리한 비용을 쏟아부어 적자 누적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2009년을 기점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출전권이 주어지는 2위와 3위에 대한 가치가 올라갔다. 6강 플레이오프제 실시로 6강 진입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잡는 팀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일찌감치 6강 경쟁에서 밀려난 하위권 팀들에는 여전히 마땅한 동기부여가 없었다. 그 와중에 터진 재앙이 프로축구 승부 조작이었다. 2011년 드러난 이 사건에 가담한 선수들은 대부분 언론의 주목도가 높지 않은 하위권 팀 소속이었고, 브로커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승부 조작으로 인한 신뢰도 하락을 만회하고 리그 시스템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지금의 스플릿 제도와 승강제 도입이었다. 스플릿 제도는 일정 라운드까지 치른 후에 중간 성적을 기준으로 상·하위로 나눠 그들끼리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다. 상위 6개 팀은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경쟁을, 하위 6개 팀은 1부 리그 잔류를 위한 긴장감 넘치는 경쟁에 돌입한다. 특히 강등권으로 불리는 최하위권 팀들은 2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2부 강등 부산, 사장·구단주 잇달아 사과문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하위권 팀들의 목표도 세분화됐다. 1부 리그 잔류다. K리그 클래식에서 재정 규모가 가장 떨어지는 팀인 인천 유나이티드, 광주 FC, 대전 시티즌은 과거와 달리 1부 리그 잔류를 올 시즌 목표로 외치는 현실 감각을 보였다. 우승을 노리는 팀,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는 팀, 상위 스플릿 진출을 노리는 팀, 1부 리그 잔류를 목표로 하는 팀으로 각 그룹 간의 목표가 형성된 것이다. 그 목표에 맞춰 예산을 잡고, 선수 영입을 이성적으로 진행하면서 각 팀의 운영과 경영에도 차별화가 이뤄졌다.

승강제가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평가와 검증에 있다. 단일 리그 시절에는 최하위를 기록해도 팬들의 실망과 비판 외에는 감수해야 할 핸디캡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비판을 견딘 뒤, 다음 시즌에 만회하면 되는 상황이 안이한 팀 운영의 원인이 됐다. 하지만 2부 리그로 떨어지는 것은 수치와 불명예 외에도 관중과 수익 감소, 모기업의 재정 지원 축소라는 직접적인 타격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결과다. 팀을 운영하는 수뇌부가 방만하게 경영하고, 감독 선임과 선수 영입에서 실패할 경우 이제는 강등이라는 참사를 피할 수 없다. 강등을 당한 팀은 경영진과 감독이 옷을 벗는 일까지 각오해야 한다.

승강제를 일찌감치 시행해온 유럽에서는 이런 상황이 나름의 시장을 만들었다. 시즌중반까지 팀이 강등권을 맴돌면 감독 교체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때 선호되는 감독은 일명 ‘잔류 청부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샘 앨러다이스, 해리 레드냅, 앨런 파듀 등이 여기에 특화된 감독이다. 잔류시킨 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위기의 팀들이 SOS를 치며 수시로 선임하는 지도자들이다. 역동적인 인적 변화는 새로운 스토리와 흥미를 낳고 팬들은 우승 경쟁 이상으로 잔류 싸움에 주목한다.

올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 끝에 강등되는 비운을 맛본 부산도 현재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냉담한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IMF사태로 위기에 몰린 부산 대우를 현대산업개발이 전격 인수하며 부산 아이파크로 명칭을 변경한 지 16년 만에 맞은 참담한 결과다. 모기업 현대산업개발로부터 10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으며 운영해왔지만, 과거 부산 대우가 4차례나 리그 정상에 올랐던 것과 달리 부산 아이파크는 매년 중·하위권을 전전했다. 김주성·하석주·안정환같이 부산 팬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전국구스타도 없었다.

올해에는 구단 경영과 조직 관리 실패로 완전히 몰락했다. 스쿼드를 대대적으로 교체하며 리빌딩을 단행했지만, 중심축이 없어 경기마다 무너졌다. 7월에 윤성효 감독을 사실상 경질하며 전환점을 마련하려 했지만, 지도자로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데니스 분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삼았다. 3개월 동안 1승을 거두는데 그치며 강등권에서 탈출하지 못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산은 리그 종료까지 5경기를 남겨놓고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였던 최영준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팀을 회생시키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고, 최감독은 리그 5경기와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2부 리그 강등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선수들의 동기부여 부재와 기업구단치고는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규모도 강등의 이유로 지적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의 실패는 구단 수뇌부의 거듭된 실책과 판단 미스 부분이 더 컸다. 부산은 1·2부 팀 통틀어 유일하게 시즌 중 두 차례나 감독을 교체했다.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부산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구덕운동장을 무료 개방하며 홈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6000여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변명기 대표이사가 강등 직후 사과문을 게재했고, 사흘 후에는 구단주인 정몽규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통해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하며 1년 만에 승격하겠다고 다짐했지만, 2부 리그로 떨어진 구도(球都)의 자존심은 상처받은 채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반면 프로 전환 3년 만에 승격이라는 성공을 맛본 수원 FC는 장밋빛 희망에 차 있다.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의 수원시청에서 출발해 K리그 챌린지 창설과 함께 프로화를 선택하고 2부 리그로 뛰어든 수원 FC는 조덕제 감독의 공격 축구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킨 끝에 1부 리그까지 올라갔다. 수원 FC의 올 시즌 운영비는 50억원으로,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했던 팀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재능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한 조 감독은 우수한 조직력의 팀을 만들며 1부 리그의 부산마저 제압하고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1부 승격 수원 FC, 내년 예산 2배로 증액

강등과 반대로 승격은 많은 기대와 지원을 낳는다. 올해 50억원의 예산 중 30억원가량을 지원했던 수원시는 1부 리그 승격에 맞춰 증액을 해 내년에 100억원가량의 예산을 쓸 수 있도록 돕겠다고 선언했다. 구단주인 염태영 수원시장은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응원을 위해 직접 부산까지 내려와 1000여 명의 팬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미 시의회에서도 지원 확대에 공감의 뜻을 나타낼 정도로 수원 FC의 1부 리그승격은 지역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이 후원하는 같은 지역 내의 수원 삼성과 펼칠 더비매치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95년 창단돼 수원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으며 큰 인기를 모은 ‘명문 구단’ 수원 삼성과, 시청팀에서 출발해 3년 만에 1부 리그 승격을 이루며 시의 지원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생 수원 FC의 대결은 대조적인 승부다. 양팀의 홈구장 간 거리는 2.5㎞.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시 단위 지역 내 더비가 다음 시즌 리그에서만 최소 세 번은 이뤄지게 된다. 승강제 도입 3년 만에 이뤄진 ‘수원더비’는 K리그에 새로운 스토리와 문화를 안겨다줄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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